2014. 12. 15.

2014. 12. 1.

밀란 쿤데라의 글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중에서

2014. 11. 21.

메르세데스 소사


남미 민중가요의 여신 메르세데스 소사와 맞는 아침. 쿵쾅거리는 타악기음과 힘차면서 또한 부드러운 그녀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매우매우매우 감격적임. 란체라 음반 (정품아님. 남미에서 정품음반을 본 적이 없음)은 역시 내 인생 음반 중 하나. 춤을 절로 추게 한다.


2014. 9. 14.

곳간


어떤 이들 감수성의 큰 줄기는 스무살을 전후로 형성되는가보다. 많이 달라진 것 같았는데, 사실 거의 달라진 게 없음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내 경우만 그런 게 아니라 많이들 그렇더라. 묘하게 안심이 되었더랬다. 그때 들었던 음악, 본 영화들, 읽었던 책, 만났던 사람들, 장소들, 사건들의 인상이 지금도 나를 놓지 않고 있다. 그때 쌓아둔 감수성의 곳간을 조금씩 꺼내 먹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2014. 8. 15.

2014. 8. 3.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



 “부인은 그 사람에게 애당초 마음을 뺴앗기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미사키는 매우 간결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잤죠.”
  (중략)
  “여자한테는 그런 게 있어요.” 미사키가 덧붙였다.
  아무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가후쿠는 침묵을 지켰다.
  “그건 병 같은 거에요, 가후쿠 씨. 생각한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죠.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고 간 것도, 엄마가 나를 죽어라 들볶았던 것도, 모두 병이 한 짓이에요.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봤자 별거 안나와요. 혼자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꿀꺽 삼키고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요”
                                                               
                                           - 무라카미 하루키, [드라이브 마이 카] 중에서

2014. 7. 2.

한마디


땀이 배지 않은 말들은 믿지 않는다. 구체적 삶의 결이 드러나지 않는 말들은 신뢰할 수가 없다. 자기 존재증명을 위해서건, 시장의 간택을 받아 예쁘게 팔리기 위해서건 소위 인문학을 지식을 위한 지식의 도구로만 소비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도 그랬다. 푸코, 데리다, 라캉, 니체를 인용하고 돌아서면 어딘가 뿌듯했다. 그런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저 거장들은 자신들도 알 수 없는 맥락 위에 불시착해야 했고, 나는 갈수록 아리송한 허무감을 맛봐야 했다. 그건 그 말들 속에 내 삶이 비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아는 나이가 됐다. 인용이 잘못이 아니라 자기 삶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게 잘못일 것이다. 이젠 오직 자기 삶에서 길어올린 말들만을 믿는다. 그게 비문이건, 욕설이건, 감정 배설이건 상관없다. 진실을 담은 한마디, 그것들에만 귀기울이게 된다.

2014. 1. 7.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아직도 말하고 다니는 자랑거리는, 2002년 2월 22일 22시 22분 22초에 정확히 시계를 딱 봤다는 거. 학원 자습실(성지)에서 나는 저 기적의 순간을 맞았다. 교재를 하늘에 날리고 혼자 환호성을 쳤더랬는데. 아무도 내 흥분에 동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저 기적 덕에 우리가 4강에 가게 된 거라고 침을 튀길 땐 오뎅꼬치에 복부를 찔리기도 했다. 제발 정신 좀 차리라며. 하…😢 니들이 기적의 맛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