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11.

페이스 오브 러브



1. 공무원 시험을 봤다. 공무원이 됐다. 누군가는 목숨을 거는 일이라던데. 이리 쉽게 얻는 건 아무래도 떳떳지 않은 일이다싶다. 우리 긴 생에 분명 독이 될 것이다. 나는 더 치열할 필요가 있다. 더 어렵게, 더 먼길을 돌아 무언갈 쥘 필요가 있다. 

2. 오랜만에 집에 내려왔다. 아내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고, 나는 동네 도서관 창가에 앉았다. 눈을 본다. 눈이 세차게 내린다. 순식간에 지붕과, 산책로와 상점들이 잠겼다. 너무 간단한 일이어서 놀랐다. 이렇게 쉽고 빠르게 이뤄지는 일인 줄 몰랐다. 

3. 점심을 먹으며 채널을 돌리다 [페이스 오브 러브]의 한 장면에서 멈췄다. 아네트 베닝과 애드 해리스가 딸의 절규 앞에 놓였다. 아네트는 사태를 관망하다 결심을 세운다. "너 나가." 딸은 가까스로 멘탈을 부여잡고 되묻는다. 엄마의 대답은 같다. "너 나가. 난 애드 없이 살 수 없어." 하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대신 그들이 나가기로 한다. 멕시코로. 죽은 남편의 기억이 묻힌 곳으로. 히치콕 [현기증]과 꼭 같은 서사. 이런 이야기엔 속수무책 빠져들고 만다. 밥숟갈을 내려놓았다. 체기가 돌았다. 





2017 코타키나발루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