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31.

2019. 12. 29.

무무, 실밥 제거, 전화기 교체, 반이정 송년회



1. 무무가 우리 삶에 들어왔다. 그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나는 생명을 안을 자격이 한참 모자란다고 줄곧 생각해왔다. 출산을 미뤄왔던 것도 나의 두려움 탓이다. 그것에 대한 결론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내년까지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무무는, 솔직히 말한다면, 저 유예와 지연의 시간 동안, 과연 내가 더 큰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의 의미였다. 집으로 들이고 그 아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죄스러운 일이다.

2. 가벼운 수술을 했다. 2주가 지나 실밥을 풀었다. 올해 두번째 꿰맴이다.

3. 전화기를 바꿨다. 2g 폰은 더이상 생산되지 않고, 통신망도 올해 안으로 철거될 예정이므로, 그것을 구할 수는 없었다. 비스마트폰 가운데 합리적인 가격이면서 디자인도 웬만한 물건을 서칭 끝에 찾아내었다. 기존 사용하던 스마트폰은 사무실 책상 위에 세워 두었다. 업무상 카톡에 사진올리기, 메시지 주고 받기는 불가피한 일이므로, 완전히 탈스마트를 실행할 수는 없었다. 업무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시간(퇴근 후, 공휴일, 주말 등)엔 이 전화기만 사용할 것이다. 

4. 반이정 평론가 및 그의 공지를 듣고 온 사람들과 송년회를 가졌다. 반이정은 내가 오랜 시간 흠모해왔던 사람 가운데 하나다. 평론가라기보다 아티스트, 퍼포머로 내게는 여겨진다. 그의 글뿐만아니라 생활감각, 예술과 일상을 대하는 태도 등에 영향 입은 바 적지 않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시간을 가졌고, 앞으로의 시간들도 기대하고 있다.











2019. 12. 23.

'칸 퍼레이드 2019' [칸쇼네 : 타고난 버라이어티]를 보고, 드로잉.



1. 이태원 약속을 가다가 광흥창에서 내려 탈영역 우정국 '칸 퍼레이드 2019' [칸쇼네 : 타고난 버라이어티]를 보았다.

2. 전시 마지막 날이었고, 포근한 겨울날이라 관람객들이 제법 드나들고 있었다.

3. 공간에 비해 참여한 작가 수가 많다고 느껴졌다. 권민호, 람한, 박광수, 박순찬, 브이씨알워크스, 심규태, 심대섭, 옴씩 코믹스, 우연식, 우정수, 유창창, 윤상윤, 이우성, 이우인, 이윤희, 이은새, 이일주, 이재옥, 장파, 전현선, 조문기, 최지욱, 하민석 등. 자그마치 스물 세 명이다.

4. 가장 눈길을 사로 잡았던 건 권민호의 작업이었다. 설치작업이었고, 가로세로 약 2미터 크기였는데, 마치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건 이 작품밖에 없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노트 한 권, 그리고 그것을 도면용 복사기로 대형 인쇄해 빨래처럼 널어놓은 설치물 한 채. 노트엔 무엇이 적혀 있었을까. 똥, 오줌, 2시간 같은 단어들이었는데, 무언가 하고 보니 갓난 아이를 돌보며 엄마가 그때그때 남긴 기록이었다. 낮에 남긴 기록들은 노트에, 밤에 남긴 기록들은 흐느적한 설치물에 남아있었는데, 아래서 비추는 형광등 조명을 받아 고요하고 몽환적인 느낌, 한없이 고단하면서 또 한없이 포근하고 안온한 느낌이 뒤섞여 다가왔다. 

5. 전시 서문에 따르면 '칸 퍼레이드'는 2015년부터 시작된, 나름 역사와 연속성을 가진 기획전이었다.(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고, 처음 보았다.) 제출된 작업들에는 이 기획을 겨냥하여 창조된 것도 있어보였지만, 대개는 작가의 기존 작업물 가운데 유사히 들어맞는 것을 가져다 놓은 것으로 보였다.(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6. 내게 만약 의뢰가 들어온다면?, 이라는 쓸 데 없는 공상을 해보았다. 공상에서 그치지 않고 드로잉으로 남겨보았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아래는, 깊은 감흥으로 이끌렸던 권민호의 작업




2019. 12. 17.

허우 샤오시엔, 그와 15년의 시간들


1. 허우 샤오시엔 감독님과의 만남 15주년을 기념하여 감독님께 그림 선물을 보내드리려 한다. 

2. 2005년부터 2020년까지의 시간들.














 





2019. 12. 14.

성수동




1. 아내와 성수동 카페골목을 걸었다. 겨울치고는 푹한 날씨였고, 미세먼지도 거의 없는 날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오감을 볼 수 있었다. 벽난로가 있는 한 카페에 앉았고, 아내는 일기를 쓰며, 나는 드로잉을 하며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그러나 온전한 시간을 갖기가 불가능했다. 각기 커플인 두 남자와 두 여자가 옆 테이블에 앉았는데 성량도 성량이지만, 대화의 주제 - 돈, 부동산, 학군, 승진, 근무지, 발령 등등 - 가 어지러이 날아다니며 쉴새없이 정신을 교란시켰다. 자리를 옮길 수도 있었지만, (18시에 문을 닫는) 임흥순 전시를 보러 어차피 곧 나가야 했기에 그것까진 아무래도 귀찮은 일이었다. 

2.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공무원이라는 사회 경제적 지위, 그것에서 나오는 물적 정서적 안정감에 솔직히 나는 감사를 느끼며 사는 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거대한 패배감을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것은 이젠 내가 전업예술가(를 줄곧 꿈꾸었으나)가 될 수 없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자기 창조성이 메마른 사람들 틈 사이에 살아가야 하며, 그들과 유사한 생활방식, 사고방식을 조금씩 조금씩 체화해가며 살아가야 하는 내 자신에 대한 가여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나도 저 옆 테이블의 저 커플들처럼 학군이나 부동산 따위의 이야기들로 내 삶의 서사를 대신하고 마는 한심한 부류의 인간이, 늦든 빠르든 되고야 말지 않겠냐는 불안이 찾아드는 것이다.

3. 그러나 이건 공정한 대가이다. 전업 작가의 삶을 살아낼 용기가 내게 없음을 나는 결국  받아들였지 않나.(재능은 둘째고.) 그 불확실성, 그 모험, 그 담대함, 도저한 수렁, 자기혐오, 그러나 다시 일어서기, 살아내기, 버티기, 그리다 또 하나 해내기, 작지만 하나씩 해나가기, 저 지난한 불확실성의 연쇄가 언제까지고 이어질지 모르는 그 삶을, 나는 살아낼 용기가 없었다. 그 아슬한 생활의 가운데서 끝없이 도저한 자기 탐구를 이뤄내고, 세계를 스스로의 몸으로 해석해내고, 그리하여 결국 자신과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빚어내고야마는, 그야말로 '작가정신'이라고밖에 달리 부를 길이 없는 저 험난한 노정에 감히 나는 발담그지 못할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4. 그 사실을 생각하니(이미 수없이 생각한 바지만서도) 서글퍼졌다.

5. 그 서글픔을 안고 서울숲 역 인근의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임흥순의 <고스트 가이드>를 보았다.

6. 임흥순의 관심과 에너지의 방향이 한결같음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한 점 한 점 찬찬히 들여보았다.










2019. 12. 13.

2019. 12. 9.

[사이키델릭 네이처] 짧은 소감



1. 지난 일요일 오후 두 시, 통의동 보안여관 지하에서 열린 <사이키델릭 네이처 Psychedelic Nature> 아티스트&큐레이터 토크에 다녀왔다.

2. 작업들을 보지 못한 상태로 대담장에 입장했다. 

3. 니콜라스 펠처, 류성실, 양승원, 정희민, 최하늘, 그룹 '업체' 그룹 전이었지만, 패널로 참석한 이는 류성실, 양승원 작가, 송고은 큐레이터뿐이었다.

4. 작업만 관람하고 이 대담을 듣지 않았다면, 아 참 조악하고 조악하구나, 하며 돌아섰을지도 모를 일이었다.(보안여관 구관이라는 공간의 정서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5. 오늘날 자연을 감각하는 우리의 방식은 소비적이거나 일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하기 어렵다. 미디어를 통해 간접의 형태로 이뤄지거니와, 직접 만나는 경우에도 '상품의 구매'라는 틀을 거친 경우가 상당하다. 거기서 생산되는 감정은 '아름답다', '멋지다', '경탄스럽다'이거나 혹은 반대로, '매섭다', '혹독하다', 잔혹하다' 정도일 것이다. 응당 그 감정은 소중한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억압에 맞서는 '염려'와 '저항' 또한 아주 귀한 것이다.

6. 하지만 부족하다. 일차원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소비자로서의 자족에 머물지 않고, 미디어의 이미지에 즉자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더 다각의 통로로, 더 개별적이면서, 더 깊이 들어간 '자연과의 만남'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사이키델릭 네이처 Psychedelic Nature>는 이 질문에 대한 여섯 개의 응답이었고, 솔직히 말한다면, 전시의 결과물들보다 내 마음을 더 움직인 것은 이 기획 자체였다. 이 기획 자체를 하나의 퍼포먼스이자, 퍽 의미있는 작업으로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9. 12. 8.

오늘자 이유만


촬영은 정선년






2019. 12. 7.

아날리아 사반, 김유정, 요한한, 김희천 유람. 그리고


1. 머리를 자르고 집으로 돌아와 사진기를 챙겨서 종각역엘 갔다. 하늘엔 박근혜 석방을 기원하는 헬륨공과 현수막이 날고 있었다. 어느 목사님의 열변이, 거대한 앰프의 힘을 빌려 육중히, 또한 되도록 멀리 붉은 피처럼 쏟아지고 있었고, 집회 참가자들은 카니발의  참가자들처럼 들뜨고 광기어린 표정을 교환하며 문재인 타도, 박근혜 석방을 외치고 있었다. 뭔가 살아 꿈틀대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에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다. 정치의 편을 떠나 이 에너지는 과연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인간 존재의 (초월적 힘에 대한) 거대한 항변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신화적인 풍경이었다.

2. 아라리오 갤러리, 갤러리 조선, 아트선재센터 순으로 돌며 네 개의 전시를 관람하였다.

3. 김희천의 <탱크>에 완전히 사로 잡히고 말았다. 들어서기 전까진, 영상 설치 작업 한 점이 전부인데, 입장료 5천원을 받길래, 얼마나 대단한 놈이고 작업인지 한 번 보자는 심산이었다.

4. 가장 좋은 예술이란 가장 면밀히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을 응시함과 동시에, 가장 긴밀히 그가 살아 숨쉬(어야만 하)는 이 세계와 조응-관계맺기를 하고 있는 예술이다, 라는 명제를 다시한 번 깊이 곱씹어 보도록 이끄는 작업이었다.

5. 아라리오에서는 아날리아 사반의 <입자이론>이 전시되고 있었고, 갤러리 조선에서는 김유정의 <교차들의 비>와 요한한의 <공명동작>이 전시되고 있었다.

6. 전시장 입구에 비치된 작가의 말 내지 비평가 글을 관람 전후로 꼼꼼히 읽어보았고, 전시를 집중하여 들여보았고, 관람 후에도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이 내게 있었다. 

7. 그러나 김희천의 <탱크>에서 받은 감흥에 비한다면, 앞선 세 개의 전시는 그냥 (미안하지만) 갖다버려도 아무 상관이 없을 그런 감흥이었다.

8. 김희천에 관해서는 선생님과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9. 집에 돌아와 아까 낮에 신나게 먹(고 제껴둔)은 계란북엇국, 깻순 나물, (홈플러스) 양념닭갈비의 잔여물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핑크 플로이드를 들으며 타이완 맥주를 한캔 들이켜고 있으며, 현재 기분은,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