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7.

아날리아 사반, 김유정, 요한한, 김희천 유람. 그리고


1. 머리를 자르고 집으로 돌아와 사진기를 챙겨서 종각역엘 갔다. 하늘엔 박근혜 석방을 기원하는 헬륨공과 현수막이 날고 있었다. 어느 목사님의 열변이, 거대한 앰프의 힘을 빌려 육중히, 또한 되도록 멀리 붉은 피처럼 쏟아지고 있었고, 집회 참가자들은 카니발의  참가자들처럼 들뜨고 광기어린 표정을 교환하며 문재인 타도, 박근혜 석방을 외치고 있었다. 뭔가 살아 꿈틀대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에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다. 정치의 편을 떠나 이 에너지는 과연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인간 존재의 (초월적 힘에 대한) 거대한 항변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신화적인 풍경이었다.

2. 아라리오 갤러리, 갤러리 조선, 아트선재센터 순으로 돌며 네 개의 전시를 관람하였다.

3. 김희천의 <탱크>에 완전히 사로 잡히고 말았다. 들어서기 전까진, 영상 설치 작업 한 점이 전부인데, 입장료 5천원을 받길래, 얼마나 대단한 놈이고 작업인지 한 번 보자는 심산이었다.

4. 가장 좋은 예술이란 가장 면밀히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을 응시함과 동시에, 가장 긴밀히 그가 살아 숨쉬(어야만 하)는 이 세계와 조응-관계맺기를 하고 있는 예술이다, 라는 명제를 다시한 번 깊이 곱씹어 보도록 이끄는 작업이었다.

5. 아라리오에서는 아날리아 사반의 <입자이론>이 전시되고 있었고, 갤러리 조선에서는 김유정의 <교차들의 비>와 요한한의 <공명동작>이 전시되고 있었다.

6. 전시장 입구에 비치된 작가의 말 내지 비평가 글을 관람 전후로 꼼꼼히 읽어보았고, 전시를 집중하여 들여보았고, 관람 후에도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이 내게 있었다. 

7. 그러나 김희천의 <탱크>에서 받은 감흥에 비한다면, 앞선 세 개의 전시는 그냥 (미안하지만) 갖다버려도 아무 상관이 없을 그런 감흥이었다.

8. 김희천에 관해서는 선생님과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9. 집에 돌아와 아까 낮에 신나게 먹(고 제껴둔)은 계란북엇국, 깻순 나물, (홈플러스) 양념닭갈비의 잔여물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핑크 플로이드를 들으며 타이완 맥주를 한캔 들이켜고 있으며, 현재 기분은,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