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27.

명절, 터미널, 골굴사, 횟집



1. 설 맞이 인사를 다녀왔다. 

2.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탔는데, 오래된 터미널의 풍취가 제법 좋은 느낌을 주었다.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달까. 이곳이 내 생활 터전이거나, 혹은 '언젠가 이곳을 벗어나리라' 하는 이의 입장이었다면 이런 감상은 아니었겠지. 하여간 외롭고 쓸쓸하면서 또한 든든하고 따뜻한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이맘때 이 같은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기분이 귀하게 느껴졌다.

3. 골굴사라는 곳에 다녀왔다. 장모님, 장인어른과의 유람에는 사찰이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나는 사찰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가장 큰 매력은 감히, 자연 그대로의 풍광과 인간이 남긴 오랜 흔적 사이에 발생하는 조화와 긴장이 아닌가 싶다. 골굴사의 구조는 독특했다. 부처의 부조상이 가장 높은 곳 깍아지르듯한 절벽에 새겨 있었고, 그 아래로 크지 않은 규모의 대웅전과, 그보다 더 작은 규모의 관음전이 삼각점을 형성하며 적당히 떨어져 위치하고 있었다. 그 위에 올라서 내려다 보니 하나의 온전한 세계 같은 느낌이 들어서 뭔가 설레는 기분이 되었다.

4. 회를 각별히 좋아하시는 장인 덕에 이번 명절에도 수년치 먹을 분량의 회를 한번에 '마시고' 왔다. 우리는 늘 같은 수산집과 같은 초장집엘 가는데(5년 전 처가 어르신 두 분 첫 대면도 이곳에서 했다), 처음의 낯선 문화와 놀라웠던 스케일에는 이제 확실히 적응한 듯하다. 
















2020. 1. 19.

백석의 시



수라修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디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갓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내가 무서워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백석, [사슴](1936) 중에서



2020. 1. 16.

몸살, 인사 시즌, 넷플릭스와 더 크라이테리온 채널, 손재곤



1. 며칠 몸살을 앓았다. 일 년에 한 번은 거치는 일인 것 같다. 그것도 꼭 이맘때. 사흘 안쪽으로 끊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이 정도 기간, 이 정도 강도라면 일 년에 한 번쯤 아파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 아닌가 싶다. 당연했던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게 되고, 가벼웠던 것을 가벼이 여기지 않게 되는 귀한 돌아봄의 시간을 준다.

2. 인사 시즌이다. 아주 관심이 없을 수야 없지만, 나에게 이 소란스런 연례행사는 솔직히 그러거나 말거나다.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나가는 사람이 있고, 올라가는 사람이 있으면 내려가는 사람이 있겠지. 부서 내엔 설레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아마 우리 시 전체에 불 것이다. 글쎄, 그러거나 말거나.

3. 넷플릭스 오리지널 [두 교황]을, 오늘은 끝까지 볼 수 있을까.

4. '넷플릭스'와 '더 크라이테리온 채널'을 구독한 이후 극장에 갈 동기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른바 시네마틱함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일 '집단 체험성'이란 것도 내 경우엔 진즉부터 그렇게 중요한 덕목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이 현상은 가속화되고 고착화되어가고 있다. '올해 가장 중요한 영화'일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 가운데, 넷플릭스를 경유하지 않거나, 개시되는 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 같은 몇몇의 작품들에만 (어쩌다) 극장을 찾고 있다.

5. 그런 의미에서 올해 첫 극장 유람(이번 주말!)은 손재곤의 [해치지 않아]가 될 것이다. 손재곤, 이 얼마만의 이름인가. 




2020. 1. 13.

미술은 어디에나 있다



1. 아내는 대학 선배와 약속이 있었다. 그곳에 바래다주었다. 원래 그 앞까지만 가려고 했는데, 약속 장소인 그 공간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한바퀴 둘러보았다. '연남장'이라는 곳이었다.

2. 어반플레이라는 스타트업 기업이 운영하는 곳인가 보았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였고, 과거 유리공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반만 리모델링하여(신생공간들의 트렌디한 방도) 역사성을 구태여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힙한 정서를 동시에 전시하는 모양을 취하고 있었다. 통의동 '보안여관'이 견줄만 한 대상일 것이나 내 얄팍한 감상으로는, '연남장'의 공간 정서가 더 유기적인 조화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3. 아내와 스스륵 헤어지고(그녀의 선배와 인사를 나누지 않고 먼저 나왔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씨알 콜렉티브'에 갔다. 윤주희의 [의지의 의지의 의지]가 전시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좋았다. '약한 것'에 대한 관심과 수행이 '연민'이나 '시혜'로 흐르지 않고, 그야말로 '의지'(will 혹은 lean 혹은 limb)로 발하고 있는 현장을 목도했다.

4. 이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말을 찾을 방도도 없다.

5. 하여간 '움직이려는 것', '결함을 수긍하고 일어서보려는 것', 그러다 정히 힘들면 그저 '기대버리는 것'. 이것에 관한 고백이었다. 너무 솔직하다고 느꼈고, 가능하다면 앞으로 있을 작가의 클라이밍 퍼포먼스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2020.1.18.)은 시간이 안될 것 같다.

6. 윤주희라는 작가의 이름을 꼭 기억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7. 길을 걷다가 '예쁘게' 끊어진 체인을 보았고, '전투적'으로 새겨진 생활 경고문을 보았다. 미술은 어디에나 있다,라고 생각했다.








2020. 1. 9.

[도래할 공동체](세종문화회관 미술관)를 보고, 짧은 생각



1. '민주주의자 故 김근태 선생 8주기 추모전' [도래할 공동체]라는 이름이 붙은 전시를 지난 주말 보고 왔다.

2. 백현주, 안규철, 안상수, 양아치, 니콜레타 마르코비치, 이은서, 안드레이 미르체프, 이부록, 임민욱, 임흥순, 정정엽의 작업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추모를 하는 중이었다.

3. 어느 한 작업에 꽃혀 오래 머물거나 가까이 들여다보진 못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각의 작업이 품고 있는 개별적 미적 지향이 아니었다. 이런 방식으로도 가능한 '추모의 형태'에 관한 것이었다.

4. '故 김근태 선생'이라는 표현으로 그 삶과 존재를 칭할만큼 나는 그에 대한 기억과 감정과 이해를 갖고 있지 않다. 전시를 보고 돌아와 인터넷 검색으로 글줄을 몇 개 따라 읽어 보았지만 거기까지가 내 의지가 뻗어 닿을 수 있는 전부였다. 따라서 나는 저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뭉뚱그려진 부채감, 그러니까 나와 내 주변 이들이 누리는 오늘날의 자유와 평화를 얻어내기 위해 피흘려간 이들에 대한 빚진 감정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이 날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5. 그것이 내가 이 전시를 보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일인 것 같았다.












2020. 1. 6.

그 자체로 완전하며 필수불가결인


그 자체로 완전하며 필수불가결인 나의 생활 아이템들.
2g폰, 메모지, 사진기, 카드지갑.


2020. 1. 5.

북악산 트레킹



1. 토스트를 구워 먹고 산행에 나섰다. 종각역 3-1번 출구로 올라와 종로02번 마을 버스를 잡아 탔다. 북악산 트레킹을 시작하기 딱 좋은 정류장-성대후문에 내렸다. 미세먼지가 먼 시야를 막았지만, 포근한 날이었고(이상 기온 탓이겠지.) 바람도 불지 않아 트레킹하기에는 퍽 좋은 컨디션이라고 생각되었다. 한 발 한 발 가벼이 내딛었고,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가 보니 어느 사이 목표로 두었던 팔각정에 도착했다.

2. 중간 중간 셀피를 찍었다. 

3. 부암동 방면으로 걸어내려 오는 길에 수없는 바이크 행렬을 만났다. 홀로 오르는 이, 함께 내리는 이, 집단 군무를 추는 자전거들이 쉴 새 없이 교차했다. 암만 좋아해도 나는 저렇게 탈 수 없을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4. 청운동 한 작은 식당에서 부대찌개를 먹었다. 김치찌개를 시켰다가 황급히 주문을 바꿨다. 밑반찬이 먼저 나왔고, 시장기가 있음을 감안해도 너무 훌륭한 맛이기에 벌써부터 내 마음의 맛집으로 지정해두었는데, 정작 부대찌개는 정말 기대 이하였다. 찌개는 찌개다워야 할 것인데, 이것은 국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컨디션이었으니까 말이다. 마음의 맛집은 곧장 지정 취소하였고, (그럴 일은 드물테지만) 혹여 이곳을 다시 찾는다면 그땐 김치찌개를 먹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치, 마늘쫑 장아찌는 정말 맛있었다.






  



2020. 1. 2.

2020 새해 첫 날, 그리고 안규철 [머무르지 않는 사람의 노래]



1. 아내와 송구영신 행사를 했다. 행사라기보다 작은 의식 같은 것이다. 거실 테이블 위에서, 각자 양 끄트머리에 앉아, 그해의 인상적 사건을 뽑고, 새해에 이루고픈 소망 5가지 이상을 적어갔다. 미리 생각해두었던 것도 있지만, 올해 벌어진 일 가운덴 선명한 무게감을 가진 것이 유독 많아, 이 의식을 치르는 데 단 15분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지난 해 마지막 날 적은 새해 소망, 그러니까 2019년 소망을 점검하면서 우리는 웃었다. 이뤄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2020년 소망은 그래서, 냉장고에 붙여두고 수시로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에 합의를 보았다.

2. 새해라고 별 거 있나. 늦잠을 충분히 잤다. 느즈막히 일어나 무무의 흔적을 정리했다. 밥을 주고, 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오후 3시 반을 향해가고 있었다. 무무랑 좀 더 놀까 하다가, 밖으로 나섰다.  

3.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안규철의 작업을 보았다. [머무르지 않는 사람의 노래](2019)전에는 영상 작업하나, 설치 작업 하나 이렇게 두 점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 두 작업은 일견 상관성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동안 머물며 바라보니, 퍽 묘한 구성과 배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13분 남짓의) 영상은 '존재하는 것의 비존재'와 '분리 및 해체'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설치는 그와 반대로 '복원과 재생', '모임과 환생'의 과정을 수행하고 있었다.(마련된 책상에 관람객이 앉아 직접 물감으로 정해진 색을 칠하고 벽에 설치까지 모두 스스로 하는 과정으로 작업이 이루어져 있다.)

4. 안규철의 이 설치작업은 방법론적으로 작가의 이전 작업들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안규철의 지난 전시들 [1000명의 책](2015), [기억의 벽](2015), [64개의 방](2015) 등은 모두 안규철이 '개념'을 던지고 방문한 관람객이 '물리적 수행'을 해내어 완성되는 작업의 방식이었다.(밑그림조차 안규철 본인이 가이드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작가가 한 것이다.)

5. 나도 저 200개의 조각들 중 하나에 참여할 기회를 갖고 싶었지만, 너무 늦은 날에 방문한 탓에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감되었다'는 문구가 적힌 테이블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작위 관람객들이 남기고 간 저 흔적들, 그 흔적의 모임을 고요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6. 집으로 돌아와 무무의 흔적을 정리했다. 남은 국을 데워 먹었고, 밖을 바라보며 맥주 한 캔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