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2.

2020 새해 첫 날, 그리고 안규철 [머무르지 않는 사람의 노래]



1. 아내와 송구영신 행사를 했다. 행사라기보다 작은 의식 같은 것이다. 거실 테이블 위에서, 각자 양 끄트머리에 앉아, 그해의 인상적 사건을 뽑고, 새해에 이루고픈 소망 5가지 이상을 적어갔다. 미리 생각해두었던 것도 있지만, 올해 벌어진 일 가운덴 선명한 무게감을 가진 것이 유독 많아, 이 의식을 치르는 데 단 15분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지난 해 마지막 날 적은 새해 소망, 그러니까 2019년 소망을 점검하면서 우리는 웃었다. 이뤄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2020년 소망은 그래서, 냉장고에 붙여두고 수시로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에 합의를 보았다.

2. 새해라고 별 거 있나. 늦잠을 충분히 잤다. 느즈막히 일어나 무무의 흔적을 정리했다. 밥을 주고, 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오후 3시 반을 향해가고 있었다. 무무랑 좀 더 놀까 하다가, 밖으로 나섰다.  

3.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안규철의 작업을 보았다. [머무르지 않는 사람의 노래](2019)전에는 영상 작업하나, 설치 작업 하나 이렇게 두 점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 두 작업은 일견 상관성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동안 머물며 바라보니, 퍽 묘한 구성과 배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13분 남짓의) 영상은 '존재하는 것의 비존재'와 '분리 및 해체'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설치는 그와 반대로 '복원과 재생', '모임과 환생'의 과정을 수행하고 있었다.(마련된 책상에 관람객이 앉아 직접 물감으로 정해진 색을 칠하고 벽에 설치까지 모두 스스로 하는 과정으로 작업이 이루어져 있다.)

4. 안규철의 이 설치작업은 방법론적으로 작가의 이전 작업들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안규철의 지난 전시들 [1000명의 책](2015), [기억의 벽](2015), [64개의 방](2015) 등은 모두 안규철이 '개념'을 던지고 방문한 관람객이 '물리적 수행'을 해내어 완성되는 작업의 방식이었다.(밑그림조차 안규철 본인이 가이드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작가가 한 것이다.)

5. 나도 저 200개의 조각들 중 하나에 참여할 기회를 갖고 싶었지만, 너무 늦은 날에 방문한 탓에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감되었다'는 문구가 적힌 테이블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작위 관람객들이 남기고 간 저 흔적들, 그 흔적의 모임을 고요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6. 집으로 돌아와 무무의 흔적을 정리했다. 남은 국을 데워 먹었고, 밖을 바라보며 맥주 한 캔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