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25.

샤워


여권을 잃어버렸(다가 극적으로 찾았지만 원래 계획이 모조리 어그러졌)고, 전자칩이 담긴 차 키를 잊은 채 씐나게 헤엄치다 170유로를 물었고, 아내가 선물한 (그나마 내게 잘 어울리는) 선글라스를 자리도 모른 채 허망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하루였다. 무력감과 자기 책망에 종일을 시무룩했지만 뜨거운 샤워 물줄기에 몸을 쐬니 기분이 좀 풀리는 듯싶다. 아내는 말없이 밀린 드라마를 보고 있다.

2016. 9. 9.

차이밍량의 말

 

나의 영화에서는 언제나 똑같은 것을 고민합니다. [홀로 잠들고 싶지않아]에서 물의 이미지가 많이 나오는 것은 제 현실 생활에서도 물 새는 집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창작의 원천은 생활이고 누군가를 위해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주변의 이야기들을 만들 뿐입니다.

                                               
                                                                           - 차이밍량, 2006 부산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






2016. 9. 5.

한 소리


결국 한 소릴하고 말았다. "정말 좆같은 체계네요." 그 의사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그도 그저 하나일 뿐이다. 저런 저급한 말은 더구나 용서받을 수 없다. 허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일주일 째, 우리는 각종 불합리에 시달려야 했다. 중복 검사, (건물과 층을 오가야 하는) 외래실과 병동 뺑뺑이, 식사 전달 오류, 과다 비용, 주차 문제 등등. 직원들에게 그곳은 잠시 들렀다가는 정류장인 것처럼 보였다. 무성의, 무신경. 누적된 분노가 터졌다. 어쩌랴. 이미 끝났다. 수술도, 전신 마취에서 깨어나는 일도, 금식도 모두 끝났다. 의사를 찾아 무례를 고백했다. 아버지는 조금씩 걸어본다고 일어나셨다. 그 뒤를 가만히 따랐다.



2016. 9. 4.

잘 자람


잘 자라고 있다. 기쁘다.


2016. 9. 3.

요청한 적 없는 선심


만 이천원 거리를 타고 왔는데 기사님이 만 구천원 짜리 영수증을 끊어 주셨다. 어차피 회사에서 타먹는 돈 아니냐며. 요청한 적 없는 선심에 당황되면서도 와 이런 방법도 있구나 신기하고 기분 좋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