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9.

Carved&Flow_1



Carved&Flow_1. 캔버스에 오일. 2020


2020. 2. 25.

무무, 코로나 휴관


1. 나는 우리 무무를 너무나 사랑한다. 이 작고 여린 것이 세상에 바라는 것이라고는 오직 산책과 간식, 주인의 애정 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문득 눈물이 핑 돈다. 이 작은 생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한없이 추잡하고 간교하고 제멋대로인 채라는 생각이 든다.

2. 한국영상자료원,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씨알콜렉티브, 대안공간루프, 서울아트시네마, 아트선재센터, 송은아트큐브 등등과 같은 민의 영역에 있는 전시장들마저 코로나 탓에 모두 휴관이라고 하니, 이게 무슨 기이한 풍경인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전례없고 초현실적인 상황들의 연쇄가 퍽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일종의 길티플레져) 

3. 주말+당직휴무 뒤에 오랜만에 출근했더니, 이게 웬일인가. 일이 재밌다.(응?) 허허.

4. 다시 저 작은 생명체를 바라본다. 가진 것도 없지만, 약간 분이라도 있다면 그마저도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정말 없어서 그럴거야.)  



2020. 2. 23.

코로나19, 강박x강박(강박²)



1. 3년째 다니는 미용실인데 오늘 같은 한산함은 처음이었다. 두 명의 종업원과 한 명의 디자이너 겸 매니저 그리고 나의 머리를 만져주시는 원장님 사이에서, 침묵의 30여분을 보냈다. 코로나의 여파임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 이는 도구 트레이를 정리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스마트폰을 까딱이고 있었다. 모두 적당히 불안하고 적당히 무료한 얼굴들이었다. 원장님만이 특유의 힘 있는 가위질을 이어갔다. 가위날 부딪히는 쇳소리가 찹찹찹 유난히 크게 들렸고, 노르스름 익은 오후 두시 반의 햇살은 통유리를 통과하며 더 깊고 넓게 퍼져 실내를 적시고 있었다. 

2.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엘 갔다. 대한문 앞에도 사람이 없었고, 인근 상가엔 숫제 영업을 쉬는 점포들이 몇 군데 보였다. 손에는 마끼아또 한 잔이 들려 있었다. 우유 냄새가 너무 진했고, 결국 나는 다 마시지 못한 채로 그것을 휴지통에 던졌다.

3. [강박x강박(강박²)] 전을 보았다. 뉴 미네랄 콜렉티브, 우정수, 오메르 파스트, 차재민, 정연두, 김용관, 이재이, 김인배, 에밀리아 스카눌리터의 순으로 그들의 작업을 둘러보았다.

4. 가장 오래 발길을 머문 곳은 오메르 파스트의 영상 작업 [5,000 피트가 최적이다]에서 였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나는 이 작가가 미디어를 다루는 방식에 사로 잡히고 말았다. 여기에도 여느 미디어아트처럼 인터뷰가 있고, 작가의 언어가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달랐(다고 느꼈)던 것은, 이것이 철저하게 '극영화'의 논리와 문법을 따르고 있었던 부분이다.

5. 그러니까 사건이 있고, 인물이 있었다. 인물의 감정이 있었고, 그 감정을 (우리로 하여금) 살피도록 돕는 부수의 캐릭터들이 있었다. 쇼트를 잘게 나누었고(인터뷰이가 중간중간 휴식차 복도로 나와 담배를 태우는 장면은 정면-리버스-정면-리버스 쇼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운드의 활용도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데 복무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필름라이크'한 화면의 톤으로 찍혔다. 아마도 레드원 같은 기종으로 디지털 촬영을 하였을 테지만, 몇몇 장면은 필름으로 촬영하였다고 해도 전혀 의심하지 않을 만큼 어떤 특유의 물성과 질감이 보유되고 있었다.

6. 그래서 이것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라는 질문이 나 스스로에게 들었지만, (허무하게도) 이렇다 할 뾰족한 대답을 찾아내진 못했다.   

7. 다만 하나의 얇은 발견이라면, 근래의 미디어아트들에서 내가 줄곧 느꼈던 피로감을 이 작업에서는 거의 느낄 새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들어간 전시실에서 나는 30분짜리 극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온 기분이 들었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선명히 수용할 수 있었으며, 한동안은 그 질문을 받아들고 나름의 생각을 하느라 다른 작품, 작업들에는 건성의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8. 미디어아트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미디어아트 고유의 논리, 그러니까 (극적 구성을 뒤로 두고) 감각과 감정의 원체험으로 단도직입해 들어가는 그 방식이야말로 곧 순수 미술적이며 그것이 미디어아트의 본령과 같다는 생각에는 그다지 흔들림이 없다.

9. 내 안에는 줄곧 (나름의 논리와 근거로) 미디어아트와 시네마 사이의 어떤 구분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다만 이제 그것을 수호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이 작업에 발길을 두는 동안 무겁게 찾아들었다. 

10. 돌담길을 따라 시청역으로 되돌아 나왔다. 담벽에 묻은 햇살을 2g폰카로 찍었다. 요즘 카메라를 따로 들고 다니지 않고 2g폰카로 찍어두는 일이 늘었는데, 생각보다 이 느낌이 괜찮기 때문이다. 선예도가 떨어지고, 빛도 살짝 바랜듯한 화상이, 어쩐지 똑딱이 필름의 느낌을 닮은 것도 같다. 









2020. 2. 5.

부서 이동, 김하나 개인전, 19회 송은미술대상전



1. 부서 이동을 했다. 옮겨 온 부서와, 떠나 온 부서의 송환영식을 모두 마쳤다. 이젠 정말 친정집을 나선 기분이다. 

2. 이전 부서에서는 야근이 전무했다. 새로 옮긴 부서에서는 칼퇴가 전무하다. 그러나 그런대로 이 조건과 환경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3. 주말 숙직을 서고 당직 휴무를 얻었다. 월요일에는 갤러리들이 대개 문을 닫는다. 송은아트스페이스와 송은아트큐브는 월요일에도 나직한 꾸준함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19회 송은미술대상전을 아직 보지 못했던 터라, 다소 무거운 몸이긴 했으되 그곳으로 향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2호선을 잡아타고 삼성역으로 갔다.

4. 송은아트큐브에서 김하나의 개인전을 먼저 보았다. [Beau Travail]라는 제목이 붙은 전시회인데, 아마도 클레르 드니의 [아름다운 직업]에서 가져온 것일 터이나, 그 영화와 김하나의 작업 사이에 별 상관성은 없어 보였다. 

5. 하지만 김하나의 작업은 너무도 좋았다.

6. 구식 인간이라 그런가, 나는 스마트폰도 어지럽고, 전광판의 현란함도 어지럽다. 2g폰을 쓰고, 수첩을 들고 다니는 건 내가 대단한 탈스마트 철학의 수행자라서가 아니다. 그저 어지럽기 때문이다. 단순히, 나는 그냥 어지럽다.

7. 그래서, 작금의 범람하는 미디어아트 작업들을 둘러보다 보면, (나 스스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피로감 같은 것이 몰려드는 것이다. 차이밍량의 [서유]같은 작업이나, 위라세타쿤 아피찻퐁의 실험영화 같은 것들은 동시대 미디어아트임에도 (도리어!) 일종의 안정과 고요를 준다. 하지만 그런 작업은 드물다. 근래 만난 작가들 대다수의 작업들에서 나는 (종류도 다양한) 여러 피로감과 마주해야만 했는데(이상하게도 김희천 [탱크]는 예외다), 바로 이런 사정들 탓에 나는 다시금 평면회화의 자리로 이끌리는 것만 같다. 

8. 김하나의 작업은 평면회화의 원점과 미래를 동시에 탐구하려는 작가 자신의 고유한 투쟁으로 보였다. 총 열한 점의 작업들 사이를 천천히 오고 가며 나는 풍요의 시간을 만끽했다. 그리고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 같은 걸 얻었다.

9. 그 여운을 품고 송은아트스페이스로 걸음을 옮겨 19회 송은미술대상전을 보았는데, 미안하지만 하나도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수백 점의 포트폴리오 가운데서 엄정히 선별된 네 개의 작업들"이라는데, 전시장을 도는 내가 다 그 문구에 무안을 느낄 지경이었다. 

10. 다만 차지량의 솔직한 고백에는 약간 마음이 움직였다.

11.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하나의 전시장에서 받은 도록을 다시 펴 보았다.









아래는 차지량의 설치(고백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