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8.

장 르누아르의 말



“영화는 예술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러하다. “무슨 상관인가?” 여러분은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정원을 가꿀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베를렌느의 시나 들라크루아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예술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만약 여러분의 영화나 여러분의 정원이 훌륭하다면, 영화나 원예의 종사자로서 여러분 또한 예술가로 자처할 자격이 있다. 훌륭한 케이크를 만드는 제과요리사도 예술가이다. 낡은 쟁기를 든 농부가 이랑을 파는 순간에도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술은 그 자체로서는 직업이 아니다. 사람들이 직업을 실행하는 방법,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그 어떤 인간 활동을 수행하는 방법, 바로 그것이 예술이다. 나는 예술을 이렇게 정의한다. 즉 예술은 만드는 활동이다. 시 예술은 시를 만드는 예술이다. 사랑의 예술은 사랑을 만드는 예술이다.

- 장 르누아르, [나의 인생 나의 영화]중에서






2019. 1. 19.

밤의 해변에서 혼자



1. 지나친 식사를 했다. 빠르게 반응이 찾아 들었다. 식은 땀이 흐르고 호흡이 불편해졌다. 환을 마흔 알 삼켰고, 매실 원액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셨다. 문득 내가 이 상황을 초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기가 부쩍 자주 찾아 드는데, 게중 얼마간을 장염으로 치러내다보니 덜컥 겁부터 먹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장염이면 안돼. 하지만 체기나 장염 따위가 진원은 아닐 것이다. 어쩐지 자꾸 서둘게 되는, 정량을 지나치게 되는, 급히 사태를 진화하려 드는 이 모든 성급한 생활 습들. 이것을 먼저 점검할 일이다. 그래야 할 게 아닌가. 어지러움을 부여잡으며 그런 반성을 했다.


2.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다시 보았다. 감독과 여배우의 숨은 연애(가 전부인 건 아니지만)에 관한 이야기이고, 실제 감독과 여배우는 이 영화 이후 숨은 사랑을 세상에 들키고 말았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많은 말들이 만들어졌다. 그 일에 내 입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구태여 사람들 사이에 내 말 하나 더 보탤 필요도 마음도 없어 그간 끼어든 일이 없다. 다만 오늘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매우 서글픈 감정에 사로 잡히고 말았다. 영화 속 육신을 빌려, 저들은 처절히 울부짖고 온몸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더 이상은 힘들다 싶을 정도의 진심을 토로하고 있었다. 이것은 '감독 어머니 재산', '칸 영화제 맞담배' 같은 검색어와는 무관한 것이다. 혹시나 계속될 개인사의 사법적 쟁투와도 무관한 것이다. 오직 두 사람 각자가 감당해야 할 감정의 충만과 공허에 관한 것이고, 그것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견뎌가고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 나는 한 여인의 노래를 들었고, 그 여인의 기도와 뒷모습을 보았다. 모두 너무나 서글픈 것이었다. 여기에 도덕이 어쩌고 같은 말을 들이대는 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