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28.

[자객 섭은낭] 짧은 소감




[자객 섭은낭] 짧은 소감





  섭은낭을 보았다. 꼭 10년의 세월이다. 스물 되던 해 이 기획을 처음 들었다. 앞으로 또 무엇을 이렇게 기다릴 수 있을까. 더없이 깊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무협영화지만 어떤 전통에서도 비껴선다. 온 육신이 너절해질 때까지 불사르는 비장한 결투도 없고, 정교한 합 아래 곡예를 펼치듯 빠르고 화려한 무술도 없다. 그 대신 이 영화가 공들여 다루는 건 ‘망설임’, ‘기다림’, ‘비어있음'의 시간이다. 죽여야 하지만 차마 죽일 수 없는 남자를 바라보는 어떤 여인의 이야기. 그녀는 자객이라기보다 흡사 배회하는 유령같다. 그 지연과 공백의 틈을 채워내는 건 무심한 풍경과 그 풍경을 감각하는 시네마틱한 시간이다.(군데군데 무성영화의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섭은낭]의 인물들은 격렬히 쟁투하지 못하고 종종 이상한 리듬으로 멈춰선다. 기량과 법도만으로는 앞지르거나 감당해낼 수 없는 어떤 성정이 그들의 운명을 자유롭게 풀어두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시간의 흔적-옥결, 금가면, 종이인형-이 여전히 남아있고, 그 궤적과 소용돌이 가운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이들 중 아무도 없다. 섭은낭은 끝내 실패한다. 그리고 어디론지 알 수 없을 먼 길을 떠난다. 허우 샤오시엔은 다른 어떤 이보다 ‘무엇'에 ‘얼마만큼 다가가야 하는가'(혹은 '얼마만큼 멀어져야 하는가')를 깊이 고뇌한 작가다. 카메라가 선 자리로, 쇼트의 지속시간으로, 인물 감정과 생활감각에 대한 섬세한 결의 묘사로, 말하자면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온갖 수단으로 그 거리를 표현해왔다. 그 거리만큼이 이 세계에 대한 자신의 방도이며 그곳이 자신이 이를 수 있는 마지막 자리라는 듯. 이 영화 역시 그 거리감을 잊지 않는다. 그 결과 어딘가 기이하면서도 말로 모두 형용할 수 없는 그런 시적인 무협이 탄생한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생활을 살아낸다. 영화는 단지 그 방편일 뿐이다. 지난 기록들이 이 작품에 이르러 한 숭고한 결정을 맺은 느낌이다. 정식으로 수입되어 개봉하면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다. 그리고 밖을 걷고 싶다. 

2015. 8. 28.
Spot Taipei (光點台北)




덧붙임1.

[자객 섭은낭] 대담



  서울아트시네마서 열린 감독님과의 대담행사(16.1.28)에 참석했다. 2005년 낙원동에서 있었던 마스터클래스 이후 10년 만에 뵙는 자리다. 무척 설렜다. 이창동 감독이 특별히 함께 했다. 김영진 평론가가 사회를 진행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 대담이 이어졌다. 허우 감독에 대한 이창동 감독의 애정이 컸다. 10년을 기다려왔다고 입을 떼었다. 이 영화에선 서사의 인과성이나 인물 관계의 명료함이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고. 알 듯 모를 듯한 감정들과 그를 둘러싼 풍경들, 소리들에 감각을 여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동스러운 영화였다고 말했다. 과연 허우 감독님의 작품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영화였다고. 당이라는 시대적 외피, 무협이라는 장르적 외피를 둘렀을 뿐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어떤 마음 관한 영화가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깊이 공감했다.

  Q&A 시간엔 으레 나올 법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으셨습니까.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히 여기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렇게 봤는데 이 감상이 맞는 것입니까. 허우 감독은 그 모든 질문들에 성심껏 답변을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빈틈을 남겨두는 듯한 인상이었다. 과잉 해석과 현학의 분석을 슬며시 경계하고 있었다. 특유의 유머와 익살어린 제스쳐로 대신 그 틈을 채워냈다. 답변은 전작들을 마치고 했던 그간의 인터뷰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자신은 줄곧 사실주의를 강조해왔다는 말. 함께 자주 작업하게 되는 이들은 결국 그이의 품성과 사람됨이 아주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말. 가장 자연스럽고 만족스러운 순간을 필름에 담기 위해 먼저 그런 상황과 환경,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말. 머리로 하는 대화가 있고 가슴, 발바닥으로 하는 대화가 있다. 허우 감독과의 대화는 언제나 명명한 후자였다. 그는 씨네필로서의 자의식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영화로 영화를 배운 사람이 아니다. 삶과 생활이 먼저였고 영화는 언제나 방편이었던 사람. 생활을 감각하고 세계를 살아내는 데 다만 영화가 필요했던 사람. 가신공주는 섭은낭에게 말한다. “너의 검술엔 적수가 없으나 마음은 사람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구나.” 허우 감독의 영화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할 ‘거리감'은 인간의 불가피한 어떤 성정으로부터 빚어진 것이다. 이뤄내야 하지만 이뤄낼 수 없음을 자각하는 일. 전해야 하지만 끝내 전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일. [카페 뤼미에르]의 아버지는 딸 요코에게 ‘어떤 방법으로 네가 아이를 낳아 혼자 기르며 살 것인지'에 대해 끝내 묻지 못한다. 그는 정종을 들이켜거나 뒤돌아 앉아 함께 우동을 먹는 일밖에 할 수가 없다. 그 거리감과 생활묘사는 그저 많은 영화를 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담이 끝났다. 관객들은 로비에서 허우 감독을 기다렸다.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아갔다. 나는 그의 보좌 직원(SPOT 직원이라고 했다)에게 작은 선물을 남긴 후 밖으로 걸어 나왔다. 여자친구가 허기를 호소했다. 종로3가 앞에 늘어선 한 포장마차로 향했다. 막 반죽을 부은 붕어빵과 계란빵이 익기를 기다렸다. 저편에서 허우 감독과 통역사, 스팟 직원이 향해 오고 있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꾸벅 전했다. 허우 감독이 밝게 화답해주었다. 선물에 고마워하신다고 통역사는 전했다. 붕어빵 가게 앞에서, 그들은 후미지고 어두운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역으로 갔다. (2016)






덧붙임2.

허우 샤오시엔 감독에 관한 짧은 생각



“열네 살, 카오슝에 살던 때다. 점심을 먹고 나면 걸어서 높은 관리들이 사는 관저로 갔다. 담을 넘어 망고나무 위로 올라가 열매를 훔쳤다. 우선 배불리 먹고 나서, 열매를 주머니에 넣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오지는 않는지 뒷길로 누가 다니지는 않는지 무척 긴장이 되었다. 이제 바람이 불 것이고 매미가 울 것인데 그 소리는 과연 어떻게 들려올까. 그렇게 주의를 모은다는 게 이미 하나의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영화란 건 하나의 주어진 상황, 분위기, 정서를 확대시키고 응집시키는 일이 아닐까.”                                                                                              
- 허우 샤오시엔, 서울아트시네마 마스터클래스(2005. 8. 27) 중에서


1. 시네필로서의 자의식이 없었던 사람. 생활과 삶, 그로부터 감각되는 세계가 오직 중요했던 사람. 그 안에서 세상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발견하고, 질박한 응시의 예술을 길어 올려온 사람. 더 다가갈 수도 없고,(’내게 그만큼의 권리가 있을까?’) 더 물러날 수도 없었던 자리.(’이들에 혹여 무감해지는 건 아닐까?’) 딱 그만큼의 거리. 그는 그곳에서 무엇보다 바람을, 햇빛을, 소리를, 사람을, 마음을, 지나간 것을 느껴보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오랜 필름을 볼 때도, 가장 근작을 볼 때도,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지난 풍경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그래왔다. 우리도 그래왔다.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다.

2. 평자들은 [남국재견] 이후 그의 세계가 변모했다 지적한다. ‘완벽히’ 달라졌으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정성일)고까지 한다. 일견 사실이다. 정처없는 인물들, 떠다니는 카메라, 불균질의 시점숏 등이 등장했으니. 시네마의 측면이라면 그렇게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형식 비평을 위한 수사일 뿐, 감독 자신의 내적 동기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보인다. 허우 샤오시엔은 (도약을 갈망하는 여타 예술가처럼) 허물기 위해 허문 일이 없다.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단지 그를 따라 함께 흘러 다녔을 뿐이다. ‘해체'니, ‘비인칭 시점'이니 하는 심오한 결단 같은 것이 거기에 자리했을까.(허우 감독의 주관적·정서적 시점숏은 초기 작품부터 일관되어 온 것이다. 영화적 방법론이라기보단 그의 생활감각에서 빚어진 한 태도라 보는 것이 더 근접할 것이다. 그는 늘 자신의 자리서 주변의 사람과 세계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이 세계의 진실을 포착해 낼 수도 있다는 엷은 믿음을 품었다. 그는 자신의 시선이 혹 시네마의 전통이나 혁신 따위서 이탈되든 그렇지 않든 그다지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 그의 눈에, 이미 세계는 여러 굴절 속에 있다. 사람들도 따라 부유하고 있다. 그는 이들-가령 [남국재견], [밀레니엄 맘보], [쓰리 타임즈] ‘청춘몽(靑春夢)‘의 유령 같은 청춘들-에 합류해 다만 자신도 함께 움직여야한다 생각했을 것이다.(허우 감독은 [밀레니엄 맘보] 인터뷰에서  2011년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영화의 나레이션에 대해 “나이를 먹은 내가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위치이자 현대 3부작이 완성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빨간 풍선] 인터뷰에서는 풍선이라는 기호에 대해 "소년의 곁을 따라다니며 세상을 둘러보고 싶은 내 마음의 시선"이라고 말했다. 성장 4부작에 관해서는, "그건 마치 사진과 같은 기억의 풍경이므로, 보다 정적이고 먼 거리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에게는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판단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그렇다고 ‘지금, 이곳’을 외면하지도 못한 채 그저 그들을 따르는 일. 그것 말고는 그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 ‘무력한 이끌림’. ‘판단없는 응시’. 온전히 허우 샤오시엔의 것이라 부를만한 건 혹여 이것들이 아니었을까.

3. 그의 영화에서 쇼트와 쇼트가 붙지 않고 튀는 순간을 특히 좋아한다.([밀레니엄 맘보]에서 비키의 거실을 비출 때, [카페 뤼미에르]에서 요코가 노면전차를 타고 도쿄 시내를 흐를 때, [섭은낭]에서 은낭의 목욕물을 채우기 위해 시중들이 일을 할 때, 그리고 전계안이 그의 아들과 겨루기 비슷한 장난을 칠 때 등.) 여타의 감독들이라면 그런 연결은 당장 폐기해내고 말 것이다. 편집의 가장 기초를 무시한 연결. 영화과 학생들도 저지르지 않을 실수. 그렇다고 고다르, 트뤼포 식의 의도된 소격효과도 아닌 것. 허우가 그걸 모를까. 천만에. 허우는 그걸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그렇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중이다. 자기 영화에 완전무결이란 필요도 없고, 가능할 수도 없다는 일종의 체념-받아들임. 할 수 있는 만큼만을 해내겠다는 태도인 것이다.(“중요한 건 인물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거다. 구조나 스토리는 좀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인물이며, 또 공간이다.”) 그건 예술에서도, 또한 생활에서도 그가 줄곧 견지하려 애써 온 어떤 자세였다. 생활을 지켜냄으로 예술을 빚는 사람. 이런 예술가와 한 시대의 대기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매우 축복한 일이다. 이어질 배움을 기다린다. (2016)





덧붙임3.

허우 샤오시엔에게서 배운 것들



결국 실패하고 마는 일. 인간의 양태를 벗지 않으려 애를 쓰는 일. 머뭇거리는 일. 속수무책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지나간 시간을 돌이키는 일. 불현듯한 무력감. 어찌해볼 수 없는 회한에 젖어드는 일. 다시 그게 삶이라고 고개를 꾸벅이는 일. 매선 눈으로 먼 풍경을 바라보는 일. 응시. 긴 응시. 뛰어들지 못하고, 바꿔내지 못하고 그저 한없이 바라보는 일. 저 긴 호흡, 느린 걸음. 그 속도만이 자신의 것임을 도리없이 수긍하는 일. 허우 샤오시엔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2016)




덧붙임4.

영화는 영화가 아닌 곳에서 길어져야 한다




지난 봄 새해 선물을 보내 오셨다. 올 봄엔 결혼 선물을 보내 오셨다. 이국의 작은 이에게도 그는 구태여 이런 성가신 일을 한다. 그는 늘 현장에 있다. 풍경과 사람 속에 발딛고 있다. 느긋이 바라보다가도, 긴요한 일엔 재지 않고 뛰어든다. 그렇게 문화 공간을 일구고, 긴 시간 후학들과 토론하고, 억울한 이들과 나란히 서 불복종운동을 한다. 창작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두려워 않는 사람처럼, 작품은 짧은 회차에 하나를 찍거나 오래 간격을 두고 공들인 하나를 겨우 내놓는다. 기회 때마다 그는 말한다. "영화는 영화가 아닌 곳에서 길어져야 한다". 칠십 노인의 뜨거움이다. 나도 그때 그럴 수 있을까. 이런 어른으로 늙어가고 싶다. (2017)






2015. 8. 27.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3




  첫 여행은 터키였다. 누리 빌제 세일란의 [우작]을 보고서였다. 흑해, 보스포러스 해협, 아나톨리아 고원. 그 풍경 속에서라면 한없이 많은 계단이 놓여있는 것만 같았던 당시의 막막함을 얼마라도 위안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울림을 준 영화의 촬영지를 찾아 다니는 건 이후 모든 여행에서의 가장 중요한 일정이 되었다. 대만은 언제고 가야 할 나라였다.(허우 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차이밍량, 이안의 나라!😮) 그러나 어쩐지 자꾸 미뤄져 왔다. 올해는 꼭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오직 10주년이라는 저 의식을 치르기 위해. 시간도 돈도 넉넉지 않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떠나게 되었다. 이해심 많은 여자친구가 경비 일부를 돕고 동행까지 한다. 고맙다. 이 시간 역시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오늘은 ‘SPOT TAIPEI'에서 허우 감독의 [섭은낭]이 첫 상영을 하는 날이다. 또한 우연하게도 10년전 서울에서 허우 감독과 처음 만났던 그날이다. 운이 닿는다면 다시 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0년 전 그 한 번 만남의 기억으로 간직되는 편이 실은 내겐 더 좋다.(2007년 부산에 [빨간 풍선]을 들고 오셨을 때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부러 귀찮게 해드리지 않았다.)  타이페이에 내리면 가장 먼저 허우 감독이 실현한 꿈, 'SPOT TAIPEI'를 방문할 것이다. 그곳에서 [섭은낭]을 보고, [연연풍진], [비정성시]와 [남국재견]의 촬영지를 차례로 순례할 것이다.

2015. 8. 20.

허우 샤오시엔 집 회고전 2015 상영 리스트


허우 샤오시엔 집 회고전 2015 상영 리스트
Retrospective Of HHH At Home 2015 Screening Lists
2015. 8. 1 ~ 2015. 8. 20

1. 고향의 푸른 잔디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 (1983)
2. 펑쿠이에서 온 소년 The Boys From Fengkuei (1983)
3. 동동의 여름방학 A Summer At Grandpa’s (1984)
4. 샌드위치 맨 The Sandwich Man (1983, 단편)
5. 동년왕사 The Time to Live and the Time to Die (1985)
6. 연연풍진 Dust In The Wind (1986)
7. 비정성시 A City Of Sadness (1989)
8. 나일의 딸 Daughter Of The Nile (1987)
9. 황금시대 La Belle Epoque (2010, 단편)
10. HHH : 허우 샤오시엔의 초상
      HHH : Un portrait de Hou Hsiao-Hsien (1997, 다큐)
11. 희몽인생 The Puppetmaster (1993)
12. 호남호녀 Good Men, Good Women (1995)
13. 남국재견 Goodbye South, Goodbye (1996)
14. 해상화 Flowers Of Shanghai (1998)
15. 밀레니엄 맘보 Millennium Mambo (2001)
16. 일렉트릭 프린세스 하우스
      The Electric Princess House (2011, 단편)
17. 카페 뤼미에르 Cafe Lumiere (2003)
18. 쓰리 타임즈 The Three Times (2005)
19. 빨간 풍선 Flight Of The Red Balloon (2007)















2015. 8. 16.

적당한 소비는 건강에 이롭다


  오늘은 사랑하는 나의 여자친구님 생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급하지도 않은 대본을 어서 써내라고 채근하는 선배작가 덕에 일찍 사무실로 들어가보아야 했다. 맛있는 걸 사 먹였으면 그나마라도 덜 섭섭했을 텐데 하..음식마저 별로였다.(차이나팩토리, 저주한다.) 이른 시간에 홀로가 되었다. 뭘 할까 하다가, 서두르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호금전의 [협녀]를 볼 수 있겠구나 싶어 얼른 달려갔다. 근데 여자분들 노출에 잠깐 정신이 혼미해진 탓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열차를 잘못 타고 말았다. 영화도 놓쳐버렸다. 하늘도 먹먹한 색깔이어서 오늘은 뭔가 안 되려나 보다 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저기 알라딘 중고서점이 보였다. 꽤 많은 사람이 들락거리기에 한번 들어가보았다. 별천지였다. 많은 책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구경하고 구경했다. 종류도 양도 생각 외로 방대했다. 기가 찰 정도로 값이 저렴한 책들도 있었고, 이 가격이라면 새 책을 사보는 게 낫겠다 싶은 책들도 있었다. 솔직히 그 시간 동안은 대형 서점에서 운영하는 이런 중고책방이 동네 작은 헌책방들에 얼마나 피해를 끼치고 있는지에 대핸 생각하지 못했다. 소설 몇 권을 샀고 디비디 몇 장을 샀다. 그 중 가장 뿌듯한 건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의 수확이다.(그렇게 찾아 다녀도 없더니만!) 폴커 슐렌도르프의 [양철북]과 비스콘티의 [강박관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샀다.(천원대!) 조금 기분이 풀렸다. 적당한 소비는 건강에 이롭다고 생각했다.


2015. 8. 13.

위선


1. 여인의 아름다움은 30대 후반, 40대에 이르러서야 만개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생각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의 생각이다. 남성의 멋스러움도 역시. 싱그럽고 풋풋한 미도 있지만 더 깊은 미는 역시 삶의 두께가 어느정도 쌓인 뒤에라야 배어나는 거 같다.

2. 위선이더라도 친절한 사람이 좋다. 이건 요즘 생각이다. 예전엔 겉이 위악스러워도 속마음만 따뜻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허나 갈수록 아니다. 겉으로 선하려 애쓰는 사람은 속으로도 얼마간 그 선함이 따라온다. 반면 겉이 사나운 사람은 아무리 본성이 따뜻해도 결국 어떤 선이 그어지고 만다. 내가 느끼는 바 그렇다는 것이다.

2015. 8. 10.

여자친구


여자친구가 부쩍 다시 두통을 호소한다. 사고 후유증도 남은 거 같고, 격무의 피로 탓도 있는 거 같고. 두통의 원인이야 워낙 다양한데, 주치의 선생님은 목 뒤 근육뭉침이 뇌로 가는 혈류를 방해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특별한 병변이 있는 건 아니니 안심하라고 하신다. 다행한 말씀이지만 아파하는 걸 계속 지켜보는 마음이 그렇다고 편해지진 않는다. 얼마 전부터 그간 야심차게 준비해 온 모창과 성대모사를 선보이고 있다. 신승훈, 조성모, 전도연, 오광록, 이순재 선생님까지 했다. 그녀는 머리가 더 아파온다고 그만하라고 한다. 그럼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어니.


2015. 8. 8.

자끄 러끌레르끄의 말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옛 이야기꾼들이 전해주는 광야나 숲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며, 여러분의 아이들도 더 이상 원시적인 것을 경험해 보고, 자기들의 기분에 따라 몸을 풀거나 환상적 느낌에 몸을 달려보는 기회를 가지지 못합니다. 문명의 이기에 익숙한 아이들은 저희들 생각대로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고 ‘놀이 프로그램'이란 교육을 통해서 배우며, 시간이 조금 지나면 경기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모든 게 규격화되어 있어서, 달리고 싶은 곳에서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줄지어 놀이터까지 이끌려 가서, 자격증 소지자의 행동에 따라 체계적으로 몸을 단련하게 됩니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졸업장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한 '자리'가 필요하고 이 자리는 졸업장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이를 믿고 있고, 누누히 강조하며 이 생각을 널리 전파하는데, 이래서 졸업장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겨납니다. 
  이 시대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 가운데 하나는 창조적 노력이 없이 교육을 받아들인 졸업장 인생들 자신입니다. 인간이란 자기가 해낸 것만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오늘의 인간은 그저 졸업장 인간일 뿐 그것으로 그가 박식하고 많은 이들이 말한 바를 알고 있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러나 남들이 말한 바를 그가 모두 모아들인다 한들, 그 자신이 무엇을 말할 수 있기를 어떻게 더 바랄 수 있겠습니까? 
  안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지식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좋은 것인데 인간은 지식의 노예, 졸업장의 노예, 혹은 계획의 노예, 방법의 노예가 될 위험을 안고 삽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고, 바로 인간은 무엇보다도 인간성을 의미하고, 이 인간성은 무엇보다도 정신의 생기요 창조력이며, 노력의 의미이며, 그 개성 자체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 자끄 러끌레르끄, [무지의 찬양]중에서

2015. 8. 4.

걷는 듯 천천히




1. [걷는 듯 천천히]를 달리는 듯 빠르게 읽었다. 그렇게 넘길 책이 아닌데. 다시 돌아가 읽어야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짧은 글 모음집이다. 문체가 너무 좋다. 귀엽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중하다. 사유와 통찰이야 이미 그의 영화들이 말했지만 글에서도 역시 멋지게 묻어난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이런 눈과 마음을 닮고 싶다. 쉽게 읽히면서도 사람과 세상을 깊이 존중하는 마음이 담긴 글. 특히 후쿠시마 사태와 그 이후의 일본을 바라보는 그의 글들에선 여러번 감탄했다. 문명사적 사건 앞에 그 책임자들에 대한 분노와 함께, 그 체제를 또한 유지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지 않는다. 역시 멋진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나저나 모 형님이 아니었다면 출간 소식도 몰랐을 것이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에 이어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라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었는데. 조금 민망했다. 그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번역기 돌려가며 봤던 글들을 이렇게 묶인 책으로 만나게 되니 너무 반갑다. 곁에 두고 자주 읽을만한 책이다. 맘 같아선 한 30부쯤 사서 주변에 돌리고 싶다.

2. 수년전 사회단체에 있었을 때, 내가 처음 맡은 일은 레퍼런스 책 구하기였다. 연구와 활동에 도움될만한 책의 목록을 작성하고 저자에 영향 주었거나 관련지어질 법한 책들의 연결고리를 찾은 다음 그 책들 역시 목록으로 작성하는 일이었다. 사무실이 광화문 근처여서 교보문고를 제 집 드나들 듯 했다. 어느 날인가 크게 경악했던 일이 있다. 아동 코너를 지나고 있는데, 내 눈을 의심케하는 장면이 거기 있었다. 모 출판사에서 나온 [2세 국어], [2세 영어], [2세 수학]. 이름하여 ‘2세 시리즈'였다. 한 귀퉁이에 차곡이 진열되어 있었다. 미친 거 아니야? 2세부터 저 짓거리를 해야해? 같이 갔던 동료와 그런 말을 주고 받았다. 수년이 지난 지금, 2세 시리즈는 참 종류도 다양해졌고 숫제 입구부터 비치되어 있을만큼 인기도 좋은 모양이다. 집단적 광기와 불안의 풍경이다. 부모들이라고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게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모르는 부모라면 그야말로 답없는 거고.) 남들이 시키니까, 내 아이만 뒤쳐지면 안되니까, 나처럼 자라선 안되니까, 나중에 원망들어선 안되니까, 그 불안 때문에들 저러는 걸꺼다. 그리고는 마음 한 구석의 불편감(내 아이에게 이런 일을 시켜도 좋은걸까?)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왜곡 치환하고 애써 덮어버리는 중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알자. 학대는 학대다. 사랑이 아니다.

  도대체 이 사회에서, 이 집단적 광기와 불안과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나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 결혼도, 출산도 참 망설여진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현재 자기가 처한 경제사회적 상황에 더해, 이런저런 사회문화적 고민에다 문명사적 고민까지 짊어지느라 참 수고가 많다. 나 역시 그 중 하나다. 이 피로와 불안의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할 지는 철저히 각자의 몫으로 치환되어버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2세부터 수학을 영어를 국어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그렇게 태초부터 합리적으로 기획되고 찍어내듯 생산된 아이들이 세상에, 자연에, 사람에 벌일 일은 과연 어떤 광경일까. 개인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공동체의 문제고 따라서 제도적으로 (해결은 어렵겠지만) 고쳐나가야 할 일이다. 똑똑한 아이들 몇 명이 이 세상을 이끌고 나머지는 기계와 첨단기술로 채워지는 풍경은 끔찍하다. 나머지 아이들은 허드렛일이나 담당하거나 그도 아니면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할 것이고, 그 똑똑한 몇 사람을 위해 굽신거리며 멸시받는 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정말 그런 세상을 바란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건 그 똑똑한 아이들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3. 걷는 듯 천천히 살아가는 아이들이 더 많아질 세상을 꿈꾼다. 허우 감독과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속 아이들처럼.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지아장커의 영화를 가장 우선 챙기려 하는 건 내가 무슨 대단한 영화광 행세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얼마나 내가 나약한지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언제고 금방 부식되고 말아버릴 인간인지 잘 알기 때문에. 나를 붙잡으려고 그러는거다. 이런 책은 반갑다. 아직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니까. 그가 계속 영화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책도 이따금씩 내주었으면 좋겠다.

2015. 8. 2.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2



1.
  십 년전에 썼던 허우 샤오시엔에 관한 글. 당시 감독론이랍시고 감히 몇 편 끄적였던 것들 중 일부 발췌했다. 다시보니 좀 많이 오글거리나 큰 견해엔 변함이 없다.

“허우 샤오시엔은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결코 세계의 이러저러한 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생활을 그려낼 때에조차 그는 결코 서사를 순서정연히 축조해 나가는 법이 없다. 그런 일엔 애당초 관심이 없는 것이다. 쇼트와 쇼트의 연결ㅡ몽타주를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그의 관심과 전통이 아니다. 그는 하나의 쇼트가 이미 하나의 세상을 품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전체를 구석구석 보여주는 것보다 하나의 결을 천천히 그려내는 것이 훨씬 깊고 진실한 방법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바라본다. 그리고 감각한다. 그것은 어찌할 바 없이 한자 문화권에서 나고 자라 온 자신의 뿌리와 궤적을 수긍해내려는 태도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그의 카메라는 사람과 사물, 세계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긴 시간 공들여 느릿느릿 그들을 느껴본다. 마치 거기가 다가갈 수 있는 마지막 자리이며 그 응시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듯. 그의 영화엔 늘 실내가 있고 실내와 연결된 바깥 창이 있다. 인물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 머문다. 열려진 창 밖에선 역사가 벌어지고 그 창을 통해 생의 불가피한 진물들이 하나 둘씩 집 안으로 침윤해 들어온다. 인물들은 묵묵히 세상의 변화를 살아낸다. 그 풍경을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적막하고 준엄한 관조이다. 감히 나는 그것을 동시대의 가장 윤리적인 시선이라 생각한다.“ (2005.12) 




2.
  8월은 허우 샤오시엔의 달이다. 십 년전 8월 낙원아트시네마에서 그를 만난 이래 그냥 내가 그렇게 정했다.😐 매해 이맘때면 허우 샤오시엔을 다시 꺼내 본다. 마침 타이페이에선 14일부터 그의 회고전이 열린다. 그 기간엔 갈 수 없으므로 집 회고전을 열고자 한다. 이름하여 ’허우 샤오시엔 집 회고전 2015’. DVD로 보유한 열한 편의 작품과 도무지 DVD를 구할 수 없었던 (그래서 파일로 보유한) 여덟 편의 작품, 총 열아홉 편으로 이달을 날 것이다. 어느 씨네마테크나 영화제가 부럽지 않다.




3.
  8월 28일 타이페이서 개봉 예정인 8년 만의 신작 [자객섭은낭] 포스터.





4.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믿는다면 수상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상을 받거나 받지 않거나와 상관없이 내 영화들은 전세계에서 상영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에 심사위원들이 [섭은낭]에 상을 주지 않았다면 우린 돌을 던졌을 것이다. 물론 농담이다.”   (올해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소감 중에서)





5.
  2008년 대만 당국의 싼닝마을(三鶯部落) 개발 계획에 맞서 주민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 삭발 투쟁까지 했던 허우 감독. 집회 현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싼닝 공동체는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패주해오기 훨씬 이전부터 주민들이 고유의 생활 문화를 일구며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다. 납득할 수 없는 명분과 졸속 행정으로 하루 아침에 이주 결정을 내려버리는 건 도무지 말이 안될 일이다.” 그러나 무자비한 이주 및 파괴는 결국 당국의 의지대로 집행되고 말았다. 그의 새로운 영화는 타이페이의 수로 시스템 개발자와 강의 여신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나는 이 영화가 일종의 위무의 형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짐작한다. 진심으로 이런 어른으로 늙어가고 싶다.


2015. 8. 1.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1





  10년 전 8월 27일, 허우 샤오시엔 감독을 만났다.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서 열린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에서였다. 이날은 영화 상영 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예정되어 있었다.(상영작은 [펑쿠이에서 온 소년]이었다.) 나는 상영시간 보다 좀 늦게 도착했다. 입장이 불가한 시간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극장 밖 공터로 나와야 했다. 쭈뼛쭈뼛 맴돌고 있는데 저 편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향해 왔다. 허우 감독과 차이밍량 감독이었다.((지금은 고인이 되신) 에드워드 양 감독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어찌나 가슴이 쿵쾅거리던지. 손과 발까지 다 부르르 떨었던 거 같다. 그들은 저쪽 구석진 곳으로 가 담배를 나눠 물었다. 지는 해를 등진 채로 무슨 이야기인가를 한참 서로 주고 받았다. 역광을 받은 그들은 신비로운 느낌마저 자아냈다. 기자들은 그 장면을 더 잘 담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나는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저만치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날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내겐 유독 이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조조는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리게 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내가 세상에 지겠다. 세상에 내가 복종하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나에게 복종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실 그때 나는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어렸고, 뜨거웠다. 세상에 맞서고 사람에 맞설 때였다. 나이 든 어른의 다소 비겁한 변명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조금씩 저 말의 속뜻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건 결국 사람과 세상에 예의를 지키겠다는 말이었다. 세상을 바꾸거나, 나서서 누군가를 가르치지 않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뜨겁게 응시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스스로만을 훈계하겠다는 다짐 같은 거였다. 그의 모든 영화들이 이미 그걸 소리없이 웅변하고 있었다.

  마스터클래스가 끝나고 관객들이 다 빠져나간 뒤에,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마침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있었다.(단편 연출부 촬영 헌팅 중이었다.) 어렵사리 사진 촬영을 부탁드렸다. 그는 빙긋 웃었다. 뽑힌 인화지에 사인을 해준 뒤 내 두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내 모습이 아무래도 가여웠던 모양이었다. 뭉툭하고 작았지만 매우 따뜻하고 단단한 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저 사진을 보고 또 들여 보았다. 그리고 아직 내 손에 남은 온기를 되짚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그때까지도 얼얼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