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6.

이수경, 구지윤, 프랑수아 트뤼포


1. 모처럼 외출을 했다. 

2. 아트선재센터서 이수경의 <달빛왕관>을 보았고, 이어 아라리오 갤러리서 구지윤의 <혀와 손톱>을 보았다. 이수경과 구지윤 모두 중진작가로서 제법 업계에 이름이 나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이들의 전시를 처음 보았다. 다소 거칠지만, 두 전시를 '흘러내리는 신체에 관한 작업'이란 한 줄로 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3. 이수경의 <달빛왕관>은 외견상 화려하고 과시적인 설치작업들로 구성된 것 같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오브제의 면면은 모두 분절 난 여성 신체 조각들이다. 그 충돌감이 이상한 감흥으로 이끈다. 3층에 이어지는 영상작업을 통해 이수경의 지향을 감히 가늠해볼 수 있었다. 선명한 메시지를 부러 피하려 한 듯하나, 분명한 사회적 운동성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넘칠듯한 긴장과 균형감에 탄복하고 말았다.  

4. 구지윤의 <혀와 손톱>은 캔버스에 유화작업으로만 구성되었다. 2호 사이즈부터 300호(는 족히 되어 보이는 대형) 사이즈까지 다양한 크기의 작업들이 있었다. 형태를 뭉개는 추상회화의 전형들이었고, 전시 제목과 같이 신체기관 및 분비물을 연상케 하는 색채와 형상의 사용이 있었다. 굉장히 대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수경에게서 느꼈던 긴장감과 같은 것을 얻지는 못했다. 

5. 전시를 보고, 에무시네마에서 프랑수아 트뤼포 <400번의 구타>를 DCP로 보았다. 꼬박 한 두 해마다 한 번씩 트는 영화인데, 절반은 영화에 사용된 음악 때문이고 다른 절반은 앙뜨완 드와넬의 얼굴 때문이다. 에무시네마를 나오면서 이 영화를 스크린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임을 알아챘다. 앙뜨완 드와넬이 발자크를 흠모해 방구석 한켠서 작은 제의를 갖는 장면을 언제나 사랑스러워하는데, 커튼 조각에 옮겨 붙었던 불이 그렇게 컸다는 걸(그래서 하마터면 영화고 뭐고 다 타 죽을 뻔했다는 걸) 이전 감상에서는 이리 실감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