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15.

양수검사, 클라인펠터, 이상없음, 새로운 영토


1.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아내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울먹이는 거 같았다. 침착하자고, 우선은 그것이 무언지에 대해 알아보자고, 각자 가만히 생각을 해보고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다독였다. 전화를 끊고 숨을 몇 번 길게 내쉬었다 마셨다 했다. 검색을 시작했다. 많은 정보들이 있지는 않았다. 

2. 양수검사 전까지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못했다. 그럴 것이, 너무도 건강했기 때문이다. 수치적으로, 형태적으로 더 없이 안정되어 담당의로부터 줄곧 긍정적인 신호 및 언사를 들어왔다. 아이가 정말 건강하고 활달하고 포토제닉하네요. 물론 그 말들이 부모를 기분좋게 하려는 의도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체감에도 이 아이는 안정화 되어 있었으며, 지난 모든 검사 상 건강을 의심해볼 단서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지난 6개월이 흘러 온 것이다. 그 시간 위에 우리는 부푼 마음들과 여러 계획들을 쌓고 있던 참이었다.

3. 그리고 그날, 양수검사를 한 바로 그날, 1차 결과를 듣게 된 것이다. 양수검사 1차 결과 다운증후군, 파타우증후군, 에드워드증후군에 대한 이상 유무는 정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성염색체의 경우 정확히 확인이 되지 않아 2차 결과 때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내는 되물었다. 성염색체가 확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말 그대로 현재로서는 정확히 확인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배양법을 통해 2~3주의 시간이 지나 정확한 확인을 한 후 이상 유무를 진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성염색체에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산모님 아이의 경우에는 남아이므로 클라인펠터를 의심해보게 될 것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아내도 나도 그날은 꼴딱 밤을 지새웠던 거 같다. 인터넷으로 찾고 찾고 또 찾았다. 클라인펠터. 이름도 낯선 그것에 관해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찾아보려고 했다. 각종 경험 사례들은 물론, 외국 학술논문까지 뒤져 사전을 짚어가며 읽었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하나였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 우선은 두어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기로 했다. 

5. 최종 결과를 받아들기까지 정확하게 19일이라는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 19일이라는 시간은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존재에 대해 이토록 애끓는 심정이 되어본 경험이 없었다. 부모가 아프고, 형제가 곤경을 겪을 때, 혹은 심적으로 가까운 이들이 고통을 겪을 때 함께 아파한 일은 더러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의 고통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어 본 것은 거의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다. 적은 이타심과 많은 이기심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특히나 생경한 일이었고, 그 혼란을 감당해내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위안을 준 것은 이 상황을 똑같은 무게로 또렷이 직면하고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매일 출근해 정신을 쏟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6. 우리는 19일간 그 일에 관해서는 침묵으로 견뎠다. 그렇게 하자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아내도 나도 그 일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다. 가장 거대하게 자리하는 일을 앞에 두고, 마치 그 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연극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도 있었다. 그건 앞서 말했듯,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일에 관해라면 운명이 결국 결정할 일이었다. 끝은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니 우리가 할 일은 견디는 일 뿐이었다. 차분을 유지했던 것은 우리의 인격이 성숙해서라기보다 그게 유용해서였다. 침묵을 깨고 그 일에 관해 언급을 하는 일이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었다. 그 일에 관해서는 그저 서로 응원의 눈빛을 주고 받는 일이면 충분했다. 그 밖은 넷플릭스로 본 드라마 이야기나, 수원삼성의 시즌 마지막 경기 이야기나, 무무와 함께 떠날 제주도 여행 이야기로 채우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자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7. 19일이 지나 최종 결과를 받아 든 날은 영영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날의 감격, 안도, 감사는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직감했다. 우리에게 '모든 염색체 수적 구조적 이상 없음'이라는 최종 진단만큼 중요한 것은 지난 19일간을 견디며 우리가 함께 새로이 들어선 어떤 영역이라는 것을.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더 아플 수 있고 우리 자신보다 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존재, 어떤 사건과 처음 만난 것이다. 예측 불능한 상황과 더 자주 마주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노력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운명과도 더 자주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 불가피한 영토로 들어섰음을 직감하며 무거워진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 하나의 존재를 감당하는 것으로도 버거워했던 게 바로 얼마 전까지였다. 가까운 미래에 이처럼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게 되리라고는 그때엔 미처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