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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 19.

청혼


청혼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에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시절 순결한 비누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중에서




2022. 9. 25.

플로베르의 편지



내가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은 내가 실천에 옮겨보고 싶은 바로 ()에 관  권의 외부 세계와의 접착점이 없는  권의 이다마치  지구가 아무것에도 떠받쳐지지 않고도 공중에  있듯이 오직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혼자 지탱되는  권의 거의 아무런 주제도 없는아니 적어도 주제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권의  말이다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은 최소한의 소재만으로  작품들이다표현이 생각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어휘는 더욱 생각에 밀착되어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리하여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 콜레트에게 보낸 플로베르의 편지중에서



2022. 5. 20.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말



인류는 언제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왔고, 그것에 맞서 싸우면서 지금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의 첫 번째 역할은 ‘즐거움’이다.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닌, 즐거움을 위해 문학을 읽는다. 두 번째, 우리는 문학을 통해 타인의 삶에 다가갈 수 있다. 타인의 삶이 어떤 조건에 놓여있는지, 사람 간의 관계나 행동 방식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문학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줄 뿐더러,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진실된 글쓰기라면, 인간의 양면성을 모두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공정과 잔혹함 같은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 있는 사랑과 따뜻함, 친절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다.

- 압둘라자크 구르나

2021. 10. 2.

레이먼드 카버의 말



대담자:
당신은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얼마큼이나 바라고 계십니까? 당신의 이야기들이 누군가를 변화시킬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카버: 
(상략) 
좋은 픽션은 부분적으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소식을 전달해주는 일종의 매개체와 같으며,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픽션을 통해서 사태를 변화시킨다는 것, 고래나 삼나무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 등은 다 부질없는 소리입니다. 만약 당신이 의미하는 변화가 이런 것들이라면,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나는 픽션이 반드시 이러한 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어야만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픽션은 단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즐거움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 자체로서 아름다운 것이지요. 무언가를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영속적이면서 지속적인 어떤 다른 종류의 즐거움들. 이러한 불꽃들을, 비록 희미하다 할지라도 지속적이고 견실한 이 모든 광채들을 진정 예술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2021. 3. 6.

하마구치 류스케의 말



"자기와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과 만나, 자신의 가치관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체험, 전 그 가혹한 체험이야말로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가치관이 서로 부딪치고, 상처를 입힙니다. 그것이 퇴행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이 상처와 균열은 또 다른 가치관으로 이어지는 입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 하마구치 류스케





2021. 2. 20.

정용준의 일기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 둘을 분별할 지혜를 주소서


모든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시되 

어떤 중독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 정용준(소설가), 문예잡지 Axt 34호 중에서





2020. 9. 7.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말


칠흑같은 어둠속에도 시는 존재한다. 그대들을 위해서.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020. 5. 4.

장 르누아르의 말



"그러므로 우리들은 추억의 마법에서 탈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은, 변해버린 세계의 지옥 속으로 단호하게 뛰어드는 일이다. 그것은 수평적으로 분할된 세계이고 실용적인 세계이며 열정이 사라진 세계임과 동시에 향수도 사라진 세계이다."

- 장 르누아르, [나의 인생, 나의 영화] 중에서



2020. 1. 19.

백석의 시



수라修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디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갓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내가 무서워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백석, [사슴](1936) 중에서



2019. 10. 29.

페드로 코스타의 말



"내 삶의 첫 번째는 내 주변 사람들이다. 영화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공간, 사람들, 나를 둘러싼 진짜 삶이 중요하다. 영화를 만드는 이유를 굳이 꼽으라면 영화를 통해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페드로 코스타



2019. 6. 17.

곰브리치의 글



  우리가 "미술작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어떤 신비스러운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물체라는 사실이다. 그림이 액자에 끼워져서 벽에 걸리면 우리들로부터 멀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박물관에서는 으레 전시된 작품을 만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원래 손으로 만지고 다듬어서 완성된 것이며, 거래의 대상이 되고 논쟁과 물의를 일으킨 대상이었다. 즉 화가는 그 특징들을 곰곰히 생각해보고 그것들을 여러번 고쳤을 것이며, 저 나무를 배경에 남겨둘지 아니면 다시 그릴지 여러 번 생각해 보았을지도 모르고, 우연히 그은 붓획이 햇빛을 받은 구름에 예기치 않은 생동감을 주는 것을 보고 흡족해 하였거나, 또는 고객의 성화에 못이겨 어떤 인물을 더 그려 넣었을지도 모른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벽에 가지런히 걸려 있는 그림과 조각작품들은 원래 미술품으로서 진열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미술가가 작품을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그 작품을 만드는 명확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중에서





2019. 1. 28.

장 르누아르의 말



“영화는 예술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러하다. “무슨 상관인가?” 여러분은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정원을 가꿀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베를렌느의 시나 들라크루아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예술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만약 여러분의 영화나 여러분의 정원이 훌륭하다면, 영화나 원예의 종사자로서 여러분 또한 예술가로 자처할 자격이 있다. 훌륭한 케이크를 만드는 제과요리사도 예술가이다. 낡은 쟁기를 든 농부가 이랑을 파는 순간에도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술은 그 자체로서는 직업이 아니다. 사람들이 직업을 실행하는 방법,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그 어떤 인간 활동을 수행하는 방법, 바로 그것이 예술이다. 나는 예술을 이렇게 정의한다. 즉 예술은 만드는 활동이다. 시 예술은 시를 만드는 예술이다. 사랑의 예술은 사랑을 만드는 예술이다.

- 장 르누아르, [나의 인생 나의 영화]중에서






2017. 9. 4.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말



  
  헤밍웨이처럼 짧은 문장을 쓰는 작가도 있고, 제임스 조이스처럼 몇 페이지에 걸쳐 독백을 적어내리는 작가도 있다. 영화 역시 여러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파졸리니는 시적 영화와 서사적 영화를 구분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영화는 시적 현상이 될 때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종류의 영화이건, 그건 내게 상관없다.

                                                         - 테오 앙겔로풀로스

2017. 3. 20.

로베르 브레송의 말

 
작은 주제일지라도 얼마든지 수많은 심오한 조합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너무 광범위하고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주제들을 피하라. 그런 주제 속에 빠지면 네가 방황할 때 아무것도 네게 경고해 주지 않는다. 아니면 그런 주제에서는 네 삶에 혼합될 수 있을 것만을, 그리고 네 체험에 속한 것만을 취하라.
 
- 로베르 브레송, [시네마토그래프에 관한 단상] 중에서
 
 
 
 
 

2016. 12. 10.

크리스트교 성서의 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은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으며
                                                   
                                                                 - 크리스트교 성서, 전도서 3장 중에서





2016. 11. 18.

손홍규의 글


작가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 증오, 슬픔, 기쁨, 고통 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작가에게서 그가 무얼 확신하는가를 느끼는 대신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에 아파하는지를 느끼게 된다. 
                                       - 손홍규, 경향신문 칼럼 '글 못쓰는 작가' 중에서 


2016. 10. 25.

정유정의 말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인간은 악하게 태어난 것도, 선하게 태어난 것도 아니다. 인간은 생존하도록 태어났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는 지노하과정에 적응해야 했고, 선이나 악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선과 악이 공진화했으며, 그들에게 살인은 진화적 성공, 즉 경쟁자를 제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이 무자비한 '적응구조'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우리의 조상이다.
  그에 따르면, 악은 우리 유전자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다. 그리고 악인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누구나'일 수 있다.

  프로이드 역시 비슷한 맥락의 말을 했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 잔인한욕망과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다. 사악한 인간과 보통 인간의 차이는 음침한 욕망을 행동에 옮기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매번 다른 악인을 소설에 등장시키고 형상화 시켰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목이 마르고 답답했다. 그들이 늘 '그'였기 때문이다. 외부자의 눈으로 그려 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던 탓이다. 결국 '나'여야 했다. 객체가 아닌 주체여야 했다. 우리의 본성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어두운 숲'을 안으로부터 뒤집어 보여줄 수 있으려면. 내 안의 악이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지 그려 보이려면.
  나는 새 노트를 장만하고,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썼다. "나는 마침내 내 인생 최고의 적을 만났다. 그런데 그가 바로 나인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습작을 막 시작하던 시절처럼 막막하고 혼란스러웠다. 아니,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비로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인 '나'가 어린 시절부터 학습해온 도덕과 교육, 윤리적 세계관을 깨버리지 못했다는 걸, 주인공인 '나'는 그런 것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맹수'인데. 더 나쁜 건, 그 틀이 깨지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왜 인간의 '악'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평범한 비둘기라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떄문이다.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이협하는 포식자의 악에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분신 '유진'이 어떤 역할을 해주리라 믿고 싶다.

                                                        - 정유정, [종의 기원] 작가의 말 중에서


2016. 9. 9.

차이밍량의 말

 

나의 영화에서는 언제나 똑같은 것을 고민합니다. [홀로 잠들고 싶지않아]에서 물의 이미지가 많이 나오는 것은 제 현실 생활에서도 물 새는 집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창작의 원천은 생활이고 누군가를 위해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주변의 이야기들을 만들 뿐입니다.

                                               
                                                                           - 차이밍량, 2006 부산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






2016. 5. 13.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말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소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희생] 중에서
 
 나는 예술 그 자체에 관하여 또는 예술의 사명에 관하여 심사숙고하는 것은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제 삶 자체이다. 삶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는 예술가는 정말로 본질적인 작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예술가로서의 과제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더 중요히 여기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문명이 처한 상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역사의 전개 과정에 대한, 거기에 참여하는 개인 각자의 책임에 관한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른바 ‘뛰어난 인물들‘, 통치차들, 종교 재판관들이 설치는 역사적 단계는 우리 시대로 끝나간다는 인상을 나는 지울 수 없다. 그들은 대다수 국민들을 위한 행복을 자신들이 책임질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자신들에 대한 지지로서 우리의 삶을 함께 바꿔내자는 주장을 펴 왔다. 그때마다 우리들은 자신의 생각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망각했으며, 이 개성은 보편적 역동성 속에서 상실되어 버렸다. 인간은 인류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이해는 망각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이는 자신이 진정으로 가치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이 지구상에서의 삶의 구심점을 이루는 고유한 존재라는 인식, ’나‘ 자신에 대한 관심, 그러니까 자기 자신의 영혼을 위한 투쟁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는 대단한 결심과 막대한 노력을 전제로 한다.
 현대인들의 정신세계는 날이 갈수록 메말라 가고 있다. 그에 반해 순전히 물질적인 것들은 제도적으로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고, 우리들 삶의 근거가 되어 버렸다. 우리들의 삶은 경화증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마비 증상의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이에 가담하고 발전시키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인간의 행동과 인간의 운명 사이 상호 연결 관계가 상당히 심각하게 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 비극적 분리가 현대인의 자의식을 불안케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마치 자기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마치 자기 자신은 미래에 대하여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듯 스스로를 여긴다. 그렇게 교육받아왔고, 그렇게 환경의 강제를 받아왔다. 때문에 자기 스스로의 운명에서 결국 완전히 배제되고 말았다는 숙명적인 감정을 가슴 한켠에 품고 사는 것이다.
 인간에게 유일하게 진실로 중요한 과제는 자기 자신의 운명에 대한 책임의식을 복구시키는 일이다. 인간은 반드시 자기 자신의 영혼을 다시 찾아야만 하고, 그 영혼의 고통을 느껴야만 하며,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양심과 조화시키는 시도를 하여야만 한다. 고통, 그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영혼에 대한 고통은 사물의 참된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해주며, 스스로의 죄의식과 책임감을 자극시킨다. 인간이 스스로의 책임에 눈을 돌리게 되면 자신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과 완전히 무관하다는 핑계를 더 이상 댈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태만과 게으름을 더 이상 정당화시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예술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며, 신으로부터 오는 것도, 악마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소유한 힘으로부터 오는 것도 인간의 연약함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인간 공동체를 위한 담보도 아니고 사회적 조화의 현상도 아니다. 예술은 일종의 사랑 고백과 같은 것이다. 예술은 우리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에게 얽매여 있다는 자백과 같은 것이다. 예술은 고백이다. 예술은 삶의 본디 의미를 표출해주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며 사랑이고, 희생이다.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 중에서

2016. 4. 2.

허우 샤오시엔의 말






 작품의 형식, 스타일에만 골몰하지 마세요. 예술엔 정도가 없습니다. 주변의 일상 관찰을 통해, 당신의 목소리와 당신만의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그것이 독창성의 근원입니다. 독창성은 다른 무엇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물을 관찰하고 무엇보다 자기의 힘으로 느껴야 합니다. 통찰을 얻게 되면 내가 본 것과 느껴온 것들을 표현하고 싶어집니다. 독창성은 그때 자연히 생겨나는 것입니다.
  큰 예산은 필요가 없습니다. 뭐든 정해져 있는 것은 없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장비란 아무거나 써도 괜찮습니다. 뭐든지요. 우리 주변의 누구나가 할 수 있어요. 지금의 영화는 과거와는 달라요. 제도권, 비제도권을 나눌 필요도 없어요. 할리우드 같은 거대한 시스템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런 건 정말 괜찮아요.
  영화는 내가 자라고 생활하는 곳에서 나옵니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애착을 갖는 사회, 사람, 사물, 관계, 분위기 같은 것으로부터요. 대만은 특히 생동감이 넘치는 사회잖아요? 대립 세력 간의 마찰 같은 뒤틀린 이야기도 많고,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무궁무진합니다. 그런 모든 것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젊은 세대들 뿐아니라 부모들에게도요. 어떤 이야기든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의심, 분쟁, 패배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극적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극적이어야 할 필요 역시 없습니다. 대만은 굉장히 독특한 곳입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표현하려는 창작자들의 노력이 줄고 있죠.
  세계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려운 일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 허우 샤오시엔, [자객 섭은낭] 칸 영화제 수상 후 귀국 기자회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