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2.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2



1.
  십 년전에 썼던 허우 샤오시엔에 관한 글. 당시 감독론이랍시고 감히 몇 편 끄적였던 것들 중 일부 발췌했다. 다시보니 좀 많이 오글거리나 큰 견해엔 변함이 없다.

“허우 샤오시엔은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결코 세계의 이러저러한 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생활을 그려낼 때에조차 그는 결코 서사를 순서정연히 축조해 나가는 법이 없다. 그런 일엔 애당초 관심이 없는 것이다. 쇼트와 쇼트의 연결ㅡ몽타주를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그의 관심과 전통이 아니다. 그는 하나의 쇼트가 이미 하나의 세상을 품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전체를 구석구석 보여주는 것보다 하나의 결을 천천히 그려내는 것이 훨씬 깊고 진실한 방법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바라본다. 그리고 감각한다. 그것은 어찌할 바 없이 한자 문화권에서 나고 자라 온 자신의 뿌리와 궤적을 수긍해내려는 태도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그의 카메라는 사람과 사물, 세계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긴 시간 공들여 느릿느릿 그들을 느껴본다. 마치 거기가 다가갈 수 있는 마지막 자리이며 그 응시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듯. 그의 영화엔 늘 실내가 있고 실내와 연결된 바깥 창이 있다. 인물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 머문다. 열려진 창 밖에선 역사가 벌어지고 그 창을 통해 생의 불가피한 진물들이 하나 둘씩 집 안으로 침윤해 들어온다. 인물들은 묵묵히 세상의 변화를 살아낸다. 그 풍경을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적막하고 준엄한 관조이다. 감히 나는 그것을 동시대의 가장 윤리적인 시선이라 생각한다.“ (2005.12) 




2.
  8월은 허우 샤오시엔의 달이다. 십 년전 8월 낙원아트시네마에서 그를 만난 이래 그냥 내가 그렇게 정했다.😐 매해 이맘때면 허우 샤오시엔을 다시 꺼내 본다. 마침 타이페이에선 14일부터 그의 회고전이 열린다. 그 기간엔 갈 수 없으므로 집 회고전을 열고자 한다. 이름하여 ’허우 샤오시엔 집 회고전 2015’. DVD로 보유한 열한 편의 작품과 도무지 DVD를 구할 수 없었던 (그래서 파일로 보유한) 여덟 편의 작품, 총 열아홉 편으로 이달을 날 것이다. 어느 씨네마테크나 영화제가 부럽지 않다.




3.
  8월 28일 타이페이서 개봉 예정인 8년 만의 신작 [자객섭은낭] 포스터.





4.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믿는다면 수상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상을 받거나 받지 않거나와 상관없이 내 영화들은 전세계에서 상영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에 심사위원들이 [섭은낭]에 상을 주지 않았다면 우린 돌을 던졌을 것이다. 물론 농담이다.”   (올해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소감 중에서)





5.
  2008년 대만 당국의 싼닝마을(三鶯部落) 개발 계획에 맞서 주민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 삭발 투쟁까지 했던 허우 감독. 집회 현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싼닝 공동체는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패주해오기 훨씬 이전부터 주민들이 고유의 생활 문화를 일구며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다. 납득할 수 없는 명분과 졸속 행정으로 하루 아침에 이주 결정을 내려버리는 건 도무지 말이 안될 일이다.” 그러나 무자비한 이주 및 파괴는 결국 당국의 의지대로 집행되고 말았다. 그의 새로운 영화는 타이페이의 수로 시스템 개발자와 강의 여신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나는 이 영화가 일종의 위무의 형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짐작한다. 진심으로 이런 어른으로 늙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