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14.

성수동




1. 아내와 성수동 카페골목을 걸었다. 겨울치고는 푹한 날씨였고, 미세먼지도 거의 없는 날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오감을 볼 수 있었다. 벽난로가 있는 한 카페에 앉았고, 아내는 일기를 쓰며, 나는 드로잉을 하며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그러나 온전한 시간을 갖기가 불가능했다. 각기 커플인 두 남자와 두 여자가 옆 테이블에 앉았는데 성량도 성량이지만, 대화의 주제 - 돈, 부동산, 학군, 승진, 근무지, 발령 등등 - 가 어지러이 날아다니며 쉴새없이 정신을 교란시켰다. 자리를 옮길 수도 있었지만, (18시에 문을 닫는) 임흥순 전시를 보러 어차피 곧 나가야 했기에 그것까진 아무래도 귀찮은 일이었다. 

2.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공무원이라는 사회 경제적 지위, 그것에서 나오는 물적 정서적 안정감에 솔직히 나는 감사를 느끼며 사는 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거대한 패배감을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것은 이젠 내가 전업예술가(를 줄곧 꿈꾸었으나)가 될 수 없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자기 창조성이 메마른 사람들 틈 사이에 살아가야 하며, 그들과 유사한 생활방식, 사고방식을 조금씩 조금씩 체화해가며 살아가야 하는 내 자신에 대한 가여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나도 저 옆 테이블의 저 커플들처럼 학군이나 부동산 따위의 이야기들로 내 삶의 서사를 대신하고 마는 한심한 부류의 인간이, 늦든 빠르든 되고야 말지 않겠냐는 불안이 찾아드는 것이다.

3. 그러나 이건 공정한 대가이다. 전업 작가의 삶을 살아낼 용기가 내게 없음을 나는 결국  받아들였지 않나.(재능은 둘째고.) 그 불확실성, 그 모험, 그 담대함, 도저한 수렁, 자기혐오, 그러나 다시 일어서기, 살아내기, 버티기, 그리다 또 하나 해내기, 작지만 하나씩 해나가기, 저 지난한 불확실성의 연쇄가 언제까지고 이어질지 모르는 그 삶을, 나는 살아낼 용기가 없었다. 그 아슬한 생활의 가운데서 끝없이 도저한 자기 탐구를 이뤄내고, 세계를 스스로의 몸으로 해석해내고, 그리하여 결국 자신과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빚어내고야마는, 그야말로 '작가정신'이라고밖에 달리 부를 길이 없는 저 험난한 노정에 감히 나는 발담그지 못할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4. 그 사실을 생각하니(이미 수없이 생각한 바지만서도) 서글퍼졌다.

5. 그 서글픔을 안고 서울숲 역 인근의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임흥순의 <고스트 가이드>를 보았다.

6. 임흥순의 관심과 에너지의 방향이 한결같음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한 점 한 점 찬찬히 들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