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4.

차이밍량, 아피찻퐁




1. 저리들 시원하게 한 번 밀어보고 싶다. 태어나 한 번도 저 길이여 본 적이 없다. 군에서 마저도.

2. 저기가 차이밍량이 운영한다는 그 카페인가?

3. 어젯밤엔 [징후와 세기]를 다시 보았다. 여전히 안개같다. 병원 한공간을 자욱이 채우던 그 안개. 겨우 진공관으로 빨려 나가던 안개. 짧지만 강렬한 질식감을 주던 그 안개.

4. 아피찻퐁에게 정글만큼 중요한 공간은 병원인 듯싶다. 그의 인물들은 늘 어딘가 아프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그 둘 모두가 아프거나.

5. 차이밍량과 아피찻퐁은 ‘마술적 리얼리즘'을 공유하지 않나 싶다. 마르케스 문학과는 다른 의미에서. 그들은 매우 사실적으로 인물과 로케와 사물을 그린다. 그런데 결국엔 원시성과 환상성으로 퍼져 나가고 만다. 아피찻퐁이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노는 방식은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르게 한다. 보는 이가 오인하도록 유도한 다음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방향을 확 틀어버린다. 차이밍량은 그의 인물들을 자꾸만 사람이기보다 유령처럼 그리려 한다. 밥을 먹게하고 눈물을 흘리게하고 섹스를 하게 하고 잠을 재우는데도. 그 기이함을 도무지 모르겠다.

6. 어릴적 할머니 손을 붙잡고 동굴로 들어가는 배를 탔던 기억이 난다. 그 어두컴컴한 속에서 조잡한 인형들이 야한 빛을 받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모형 동물들은 녹음된 울음소리를 기묘히 울어댔다. 호랑이의 눈에서 빛이 새나오는 것만 같았다. 밤에 홀로 숲길을 산책할 때면 그때 그 기억으로 붙들려 간다. 아피찻퐁의 정글을 볼 때도 어김없이 그런다.

7. 검열을 피해 더는 태국에서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아피찻퐁은 선언했다. 남미로 갈거라고. 안타까우면서도 한편 다른 차원으로의 도약이 기대된다. 그의 앞날에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