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6.

기적


한 손엔 채집통을 들고 어깨엔 잠자리채를 걸친 채 설렌 발걸음을 걷는 소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나무 작대기 하나씩을 나눠 들고 힘껏 카페트 먼지를 털어내며 깔깔 거리는 한 가족을 보았다. 서로의 입에 방울 토마토를 넣어주고 볼록해진 볼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장난치는 남매를 보았다. 공사장 한켠에서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며 담배에 불을 붙이는 일꾼들을 보았다. 그들 중 한사람 어깨의 문신이 맘에 들었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이젠 제법 가벼워진 바람을 맞으며 지나가는 연인들, 가족들, 혼자들을 바라봤다. 저마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쳇 베이커의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문승욱의 [망대]라는 영화를 보았다. 신비롭고 슬프고 아름다웠다. 삶은 기적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