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4.

질근 그저 살아나가는 일


슬픔과 공허에 긴 시간 허우적이는 사람들. 그 시간이 너무나 길어져 우울이 차라리 존재양식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망가진 과거와 재건 불가한 현재를 부단히 호소하며 타인과 자신 스스로를 자기 슬픔의 당위에로 기어이 동참시키고 만다. 그를 위한 사연과 증거들을 참 세심히도 나열해내면서. 대개 남 탓 투성이의, 자기는 오로지 피해자란 식의 취사 선택된 플롯들.(자기 책망과 혐오에 지독히 젖어 있더라도 저 안 깊은 곳엔 나를 그렇게 만든 그 무엇에 대한 탓이 덩어리져 있다.) 살고자 하는 뜻일 것이다. 혹은 살려 달라는 애원일 것이다. 그게 없다면 저토록 질길 수도 없다.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끝내 당신도 죽이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도 죽인다. 우울이 습관이 되어버린 친구들이여, 세상 누구도 당신을 구원해주지 못한다. 오직 당신만이 그 연옥에서 당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우선은 밥부터 한술 뜨자. 상담을 받든 약을 지어먹든 무너진 마음의 잔해를 털어내자. 천천히 한 타래씩. 필요하다면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것들을 가슴 속에서, 현실의 시스템 안에서 벌하자. 그럴 수도 없다면? 그냥 꿀꺽 삼키고 살아가는 수밖에. 슬픔과 공허와 상처에 굴복 당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과 공생을 도모하는 수밖에. 삶을 저버릴 수 없는 바에야 하여간 살아내야 할 것 아닌가. 하나씩 자신을 돌이키며 질근 그저 살아나가는 일. 그 순간 어둔 삶에도 숭고함이 깃들기 시작한다.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은 오직 저 시간들을 지켜봐 줄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