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8.

비시즌에 하는 일


1.
비시즌엔 물론 이적시장의 동향을 살피는 일이 가장 중요해진다. 
어느 선수가 나가려는지(내보내지려는지), 혹은 어느 선수가 들어오려는지(들여지려는지)
선수의 의중과 프런트의 의지가 절묘히 만나거나 어긋나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늘 흥미롭다.

물론 이 긴장들에 즐거움만 자리하지는 못한다. 여느 세계처럼, 이곳 또한 차갑고 냉혹하다.
선수들은 가차없이 내쳐지기도, 혹은 미련없이 팀을 떠나기도 한다.
그 시간 가운데 선수는, 팬은, 그리고 또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배반감을 느끼기도 한다. 
허망을 느끼는 일도 자주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비시즌의 일들이다. 일어나야 하는 일들이다. 
   
2. 
나 스스로는 비시즌에 '소제'를 한다.
한 해 잘 입은 유니폼을 꼼꼼히 점검하고, 내년에 다시 입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고치는 것이다.
스스로의 손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즌 중엔 경기 날이 아니더라도 유니폼을 입는 일이 잦아 세탁 역시 자주 하게 되는데,
유니폼을 모시는 유형의 사람이거나, 단정하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탓에
대충 다른 빨래에 섞어-그러니까 섬유유연제가 풀린 물에 세척 되고, 건조기에 더운 바람으로 말려진 채로-함께 돌린다. 
그 일을 일 년 반복하면 유니폼은 자연히 얼마간의 데미지를 입게 된다. 
   
'비시즌 소제'는 거창한 일은 아니다. 떨어진 마킹 부분을 섬유용 접착제로 다시 붙이고, 
완전히 손상되어 떨어져 나간 프린팅은 업체에 주문을 넣어 새로 붙여주는 일 정도다. 
이렇다 할 지식과 기술 없이, 그러나 스스로 한다는 원칙으로 줄곧 이 일을 해내는 탓에
공들여 작업을 마친 유니폼의 모습이라고 하나 새 것과 같이 멀끔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까이 들여다보면 본드 자국이 비져 나왔거나, 이염이 일어나 부분부분 얼룩덜룩해지는 등 엉성하기 그지 없다. 그래도 이 일은 비시즌에 내가 하는 일 가운데 중요한 일이다.











 

2024. 12. 27.

2024 올해의 책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2024, 문학동네

거의 모든 올해의 리스트에 이 책이 담긴 것으로 안다. 그 점이 의식된다 하더라도 이 책을 포함하지 않는 리스트를 만드는 일은 오만이거나 거짓처럼 생각되었다. 평범한 것들의 평범한 이야기로만 그쳤다면 이만큼의 매혹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평범한 화자로부터 시작해 세태를 경유하여(혹은 그런 척 하면서) '교양', '보편', '옳음', '일반' 같은 곳으로 속도감있게 달려나간다. 그러다 불현듯 이야기를 멈추고 화자 또는 독자를 던져놓은 채 떠나버린다(소설을 끝내버린다). 얼얼하다. 그 던져진 자리는 분명 '교양', '보편', '옳음', '일반' 같은 곳일텐데 또 그렇지가 않다. 이 겨냥된 무책임이 가리키는 바는 무얼까, 거듭 생각하게 한다.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2023, 문학동네

따로 하고 싶은 말이 별로 없다. 추운 겨울날 따스한 난롯가에서 읽는 동화 같은 책이다. 스르르 잠에 들게 하였다가, 문득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느냐'던 앞선 이의 남겨진 문장을 따라 발음하게도 해본다. 읽는 것으로만 충만감을 품게 했던 책.



『불안 세대』, 조나단 하이트, 2024, 웅진지식하우스

『불안 세대』는 아마도 내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탓에 더 선택되었을 것이다. 스마트 기반의 갖은 도구가 우리 삶에 끼치는 여러 영향에 대한 관심을 아무래도 멈출 수가 없다. 관심에는 여러 층위가 포함될 것이나 아무래도 부정적인 전망들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요한 하리의 히트작 『도둑 맞은 집중력』도 동일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였던바 있다. 뛰어난 관찰과 분석을 제공하나, 결말과 제언으로 향하는 대목에서 다소 성급하게 쓰여졌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 책은 그러니까 혁명을 제시하고 있었다. 『불안 세대』는 그 대신 온건하고 현실적인 다음 스텝을 제시한다. 교육과 담론을 통해 인식을 변화하고, 국가와 사회가 제도를 개선할 것을 촉구하는 선에서 타협을 본다. 뻔하고 안일하다고 누군가는 말하겠으나, 나는 지킬 것이 덜컥 생겨버린 사람이자 결국엔 뻔하고 안일한 사람일 것이라 이 결론이 마음에 든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2021, 곰출판

올해 가장 사로잡혔던 책. 우상의 붕괴에 관한 테마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존재의 불안은 근원적인 것이고, 따라서 모두는 각자의 우상을 얼마간 필요로 할 것이다. 책의 저자는 자신의 우상이 자신 안에서 무너지는 고통을 견뎌내면서도 그가 어째서 그렇게 굴절된 세계관을 갖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세계관을 갖지 않게 되었더라면 그가 감당해야 할 존재의 허무는 과연 얼마만 한 것이었을지를 아프지만 정확하게 직시한다. 그 직시에 정말 온 힘을 다 한다. 그 허무는 곧 우리의 것이기도 할 것이므로. 이 길을 걷는 동안 저자가 끝내 얻어내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스스로를 향한 구원이다.  

  

2024.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