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17.

어떤 불가피함


그게 그 사람이 존재의 불안과 세계와의 불화에 대응하는 방식일테다. 달리 살아왔으므로 내 눈엔 거슬려보이는 게 어쩔 수 없겠으나 그렇다고 함부로 말할 일도 아닌 것이다. 내가 무슨 노자도 아니고 마호메트도 아닌데 화도 나고 욕도 해주고 싶을 때야 물론 있겠지. 그럴 땐 정 참을 수 없을만큼 기다렸다 사이다처럼 쏴주기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큰 품의 연민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저 이도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이 험난한 세계에서 자기를 지키며 살다보니 불가피하게 저리 되어버렸다고. 안그런다면, 일일이 대응하며 소진한다면, 아마도 내 편이 먼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여러모로 살아간다는 건 짙은 피로를 동반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또한 짊어지고 버티어 서야 할 어떤 불가피함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2013. 9. 16.

서머싯 몸의 글



“그때 나는 부인에게 약간 실망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나는 사람의 인격이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훌륭한 여자에게 그토록 깊은 앙심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한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특질로 형성되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한 인간의 마음안에도 좀스러움과 위엄스러움,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
                                                                         
        -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중에서 

2013. 8. 7.

졸라 섹시하다


작지만 지속적인 성취로 자존감을 두터이 해나가는 사람.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느라 삶을 허비하는 대신 자신의 욕망을 발가 벗겨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 자기 성찰에 부단하지만 자아 중심성에 함몰되지는 않는 사람. 타인을 동정할 줄 알지만 결코 시혜적으로 굴지는 못하는 사람. 자신의 문제가 타인, 세계의 문제와 연결 되어있으며 그 반대 역시도 공히 성립됨을 온 감각으로 이해하는 사람. 저 한 몸뚱이가 아무리 기써본들 자연의 일부이며 따라서 아무리 작고 여린 것이라도 함부로 어찌해선 안된다 믿는 사람. 오직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말하고 행동하고 소비하는 사람. 이 지독한 세계에서, 그러나 끝내 살아남음으로써 무언가 지켜내고야 말겠다고 끊임없이 되뇌는 사람. 그런 사람. 졸라 섹시하다.

2013. 4. 23.

긴 호흡 느린 걸음


너무 많은 아름다움, 너무 많은 욕망의 부추김들이 사방 도처에 부비트랩처럼 널려 있다. 가히 자본의 과욕망과 포스트 모던의 오남용이 힘합쳐 만든 비극적 살풍경이다. 두 눈 밝게 뜨지 않으면 저들이 설계한 노름판 안으로 시시각각 포섭 당하게 생겼다. 아름다움을 가려볼 줄 아는 눈이 그 어느 시절보다 긴요해진 것 같다. 긴 호흡 느린 걸음으로, 가깝고 작은 것을 세심하게 자주 살피며 그걸 찾아가고 싶다. 그래야 할 것만 같다.

2013. 3. 29.

산책. 2013년 봄


산책. 2013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