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4.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글


“나는 사물을 보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으므로 이제 무엇인가 자신의 일에 착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물 여덟이다. 그런데도 나의 스물 여덟 해는 거의 텅 비어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카르파치오에 대해서 논문을 썼고 그것은 형편없는 것이었다. <결혼>이라는 희곡을 시도해 보았으나, 그릇된 관념을 애매한 수단으로 증명하려고 한 데 지나지 않았다. 나는 시도 몇 편 썼다. 그러나 어린 나이로 시를 쓰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은 없었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우선 꿀벌처럼 꿀과 의미를 모아야 한다. 그래야만 마침내 마지막에 겨우 열 줄 정도의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갯짓을 느껴야 하고, 아침에 피어나는 작은 풀꽃의 고개 숙인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또 미지의 나라들의 길, 뜻밖의 해후,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보이는 이별, 또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남겨 둔 어린 날의 추억, 모처럼 기쁨을 가져다주었는데도 그것을 잘 몰랐기 때문에 잔혹하게 마음을 슬프게 해드린 양친에 대한 행동, 온갖 중대한 변화를 가지고 이상한 발작을 보이는 소년 시절의 병, 물을 뿌린 듯이 고요한 방에서 보낸 하루, 바닷가의 아침, 바다 그 자체의 모습, 저쪽 바다, 이쪽 바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함께 덧없이 사라진 여로의 밤들, 그런 것들을 시인은 회상할 수가 있어야 한다.
   아니, 그저 모든 것을 회상할 뿐이라면 사실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추억이 많아지면 다음에는 그것을 망각할 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추억이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커다란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어느 시인의 고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