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4.

진보마초란 있을 수 없다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있었다. 그럼에도 회의 시스템은 매우 성실히 유지됐다. 그만큼 우리가 합리적이고 민주적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할 필요 때문이었다. 나는 회색분자였다. 이것도 옳은 것 같았지만 저것도 옳은 것 같았다. 이것도 옳지 않은 것 같았지만 저것도 옳지 않은 것 같았다. 앙칼진 답이란게 있었으면. 나는 간절히 바랐다. 그랬다면 그토록 눈치보며 괴롭지 않아도 좋았을텐데.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정확해야 하고 묵직해야 하고 단호해야 한댔다. 모든 게 실행을 위한 준비이므로. 발을 내딛고, 구호를 외치는 일에 망설임은 최대의 적이었다. 한 번 전선이 세워졌으면 진탕 휩쓸려 싸우고 돌아와야 했다. 그게 우리의 일이었다. 그 시절 써냈던 수많은 성명서, 선언문들. 도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나는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채로 쓰고 썼다. 그게 내 입장이 되었고, 행동의 준칙이 되었고, 삶의 구성이 되었다. 괴로운 일이었다.

  결국 나는 그 단체를 나왔다. 그곳은 나름 신사회운동을 지향하는 곳이었다. 노동가를 부르거나 빨간 조끼를 입지 않아도 되었다. 생태, 여성, 탈핵, 자급자족, 제도교육 거부 등을 지향하는 고상한 곳이었으니. 제3세계 좋은 음악을 들으며 이반 일리치를 읽고, 에른스트 슈마허를 강독했던 곳. 우리는 순수히 현재를 사랑했고 미래를 낙관했다. 그러나 나는 더이상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미련없이 돌아나왔다.

  운동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운동만으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절실히 깨달았다. 그 믿음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 하나 뿐임을, 나는 처절하게 배웠다. 온갖 멸시 속에서, 시선의 폭력 속에서. 운동은 실행이고, 실행은 부득불 힘을 필요로 한다. 그 힘은, 조직적으로 규합될 필요가 있을 때, 결코 다양함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작은 소리는 제 영역을 얻기 위해 투쟁 안의 투쟁을 해야 한다. 운동은 태생적으로 마초다. 여성 운동가들은 늦든 빠르든 남성성을 체현하게 된다. 거기엔 거의 예외가 없었다. 더 강한 옷을 입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힘으로 움직이는 모든 집단의 불가피한 일이었다. 유형의 조직뿐 아니라 가상의 조직에서도.

  나는 이 자매들을 사랑한다. 이 자매들은 멋지다. 누구보다 집단과 사회의 근원적 생리를 간파한 사람들이다. 그랬을 뿐 아니라, 거기에 맞는 오직 자신들의 실천을 한다. 이게 섹시한 진보가 아니라면 무엇이 그런가. 그녀들의 발언에 나는 여러차례 고개를 숙였다. 내 안에 지워내지 못한 가부장성, 쓸데없는 권위 의식을 그녀들은 돌아보게 했다. 많이 털어냈다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한참은 더 털어야 한다. 끝이란 게 있을지 모르겠다.



‘효녀연합’ 홍승희, 홍승은 자매 인터뷰 “진보 마초란 있을 수 없다”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대한민국효녀연합’ 홍승희씨(26)는 최근 ‘여성비하’ 논란으로 시달렸다. ‘사회적 예술가’인 홍씨는 소녀상 시위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일각에서 그의 활동보다 외모와 여성성을 부각시켰다. ‘얼굴 이쁜 개념녀’라는 여성차별적 시선은 물론 ‘효녀연합’을 지켜주겠다는 ‘오빠연합’까지 등장했다. 이에 대해 강원 춘천에서 ‘인문학카페 36.5도’를 운영중인 언니 홍승은씨(28)는 “내 안의 아베나 어버이연합은 보이지 않느냐”고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동생을 들들볶아 페미니스트 만든다’는 따위의 비아냥거림이었다. 그 조롱들 대부분은 진보적 정치 성향의 남성들로부터 나왔다.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홍 자매를 둘러싼 공방전이 진행되고 있다. 경향신문은 11일 홍 자매와 인터뷰를 했다.
홍 자매는 최근 논란에 대해 “차라리 일베같은 사람들이나 커뮤니티로부터 이런 일을 당했다면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을 텐데,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대승적 진보’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을 마녀사냥하고, 벌레 취급하는 것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믿던 진보가 무엇인지 의심하고 회의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진보운동을 보수·진보의 양자구도로 바라보는 ‘편의 논리’가 낳는 폭력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한 “진보마초란 있을수 없는 단어다”라며 “성찰없는 진보는 생각없는 보수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 자매는 “스스로 성찰하는 자세가 가장 필요하다”며 “우선 나부터 내 안의 여성혐오와 자기혐오의 정서를 성찰하고 내 삶을 회복해가려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더 이상 이미지화 되기 싫다”는 인터뷰이들의 요청을 수용해 홍 자매의 얼굴 사진은 게재하지 않았다.
-최근 SNS상에서 자매를 놓고 ‘여성비하’ 논란이 발생했다.
홍승희 “여성혐오 정서가 만연한 분위기에서 일어난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성혐오란 여성들을 대상화·도구화하는 정서를 말한다. 효녀연합을 두고 ‘개념녀’, ‘미소녀’라고 이름붙이고 젠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꼴페미’, ‘메갈충’이라고 이름붙이는 것도 그렇다. 온라인에서는 이것을 마치 놀이문화처럼 즐기고 있다.”
홍승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여성이 남성을 위안해야 한다는 관념에서 온 극단적 성적 대상화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온 효녀연합을 ‘미소녀’, ‘개념녀’로 명명하는 미디어와 일부 여론의 동향은 문제의 본질을 또다시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이를 지적하자 ‘꼴페미’, ‘벌레 같은 페미니스트’라고 조롱당했다.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한국사회 여성혐오의 한 모습이다. ‘오빠가 허락한 사회운동’,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는 말처럼 운동진영 내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이 만연하다. 운동진영 내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표현의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본인들에 대한 비아냥 글들이 게시되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을 때 심정은 어땠나.
홍승은 “글을 쓰고 내 생각을 말하는 게 이렇게까지 위험한 일인 줄 몰랐다. 원색적이고 조롱섞인 말들을 볼 때마다 ‘묻지마 폭행’을 당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아팠다. 온라인상 폭력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인격적 상해를 입힐 수 있는지 체험했다. 차라리 일베같은 사람들이나 커뮤니티로부터 이런 일을 당했다면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을 텐데, 나름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대승적 진보’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을 마녀사냥하고 벌레 취급하는 것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믿던 진보가 무엇인지 의심하고, 회의하게 되었다.”
홍승희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다. 특히 언니와 나의 관계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비상식적이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한 것 같았다. 언니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언니가 아닌 오빠였다면, ‘동생에게 질투심이 있다, 열등감이 있어서 저런다’라고 말했을 것 같지 않다.”
-일부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넘어 ‘표현의 폭력’을 행사하는 심리적 기제는 뭐라고 보나.
홍승은 “온라인의 익명성이 훈련되지 않은 자유의 이름으로 남용될 때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서로 간의 책임이 있어야 하고, 문제가 일어났을 때 시스템상 그것을 제재할 수 있어야 하는데 두 가지 다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도 큰 작용을 했다고 본다. 페미니즘을 휴머니즘과 다른 개념으로 보고, 어떤 이익추구나 편협한 생각 정도로 보는 정서가 만연하다. 우리는 페미니즘을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나 생태운동과 같다고 본다.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것은 선택적 정의가 아닌 모두가 젠더 이전에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기를 원하는 보편적 정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이야기하는 불편함을 ‘예민하다’, ‘꼴페미다’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안타깝다.진보운동을 보수·진보의 양자구도로 바라보는 ‘편의 논리’가 낳는 폭력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편’에 도움이 되는 말은 적극 수용하지만, 모두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젠더에 대한 문제제기는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우리 편에 해가 된다는 것이다.”
-여성혐오란 무엇인가.
홍승은 “여성혐오는 여성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취급하지 않는 모든 문화를 말한다. 보부아르는 ‘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여자니까 무엇을 해야 하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감상적이고 비이성적이다’ 등 ‘만들어지는 여성’을 거부한다. 그러한 시각을 통해 성녀와 창녀를 구분 짓고,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 전에 대상화하는 모든 행위를 여성혐오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이 일부 진보성향 남성들의 여성혐오가 본질이라고 보나.
홍승희 “맞다. 여성혐오는 이념과 진영을 가리지 않고 존재한다. 사회를 바꾼다는 이들조차 여성혐오 발언에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할 만큼, 여성혐오의 정서는 은밀하고 구조적이다. 그래서 진보진영에서조차 젠더문제는 대승적인 정치사안보다 사소하고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진보 내부에서 존재하는 여성혐오 원인은.
홍승희 “진보진영에서 젠더문제는 노동문제, 통일문제, 국제문제 등의 대의보다 사소하고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것이 문제다. 사소해보이는 일상조차 변혁하지 못하는 운동에 아무리 대의명분에 따라 희생하고 헌신한다고 해도 사회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삶을 등진 혁명’보다 ‘삶에서부터 시작하는 문화혁명’이 더 절실한 이유이다.”
-일부 정치적 사안은 진보성향이라고 해도 여성차별적이라고 한다면 그들을 진보라고 불러야 하나.
홍승희 “맞다. 진보마초란 있을 수 없는 단어다. 젠더감각은 인권감수성의 기초다. 모든 인간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느끼는 것이 진보의 기본이다.”
홍승은 “소수자, 다양한 사회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지 않고 진보는 없다. 성찰없는 진보는 생각없는 보수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소녀상 지킴이 활동이나 인문학 카페를 운영하면서 여성혐오적인 체험을 한 적이 있나.
홍승희 “효녀연합 활동을 하면서 언론은 ‘개념녀’, ‘미소녀’ 등의 이름을 붙였다. 국정교과서 1인 시위를 했을 때도 ‘광화문녀’, ‘시위녀’ 등으로 기사화된 적이 있었다. 말하고자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여성성만 부각되어 유통되는 것이 불쾌했다. ‘촛불소녀’도 마찬가지다. 사실 인간으로서 행해왔던 모든 활동에 꼭 ‘녀’의 이름이 붙는다. ‘‘얼굴도 예쁜데 개념도 있네’ 혹은 얼굴은 예쁜데 개념이 없네’ 등으로 사람을 평가할 때 외모를 항상 포함시키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다. 최근 오빠연합 같은 경우에는 ‘효녀연합을 지켜준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여성을 남성에게 지킴을 받는 존재로 바라보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관점이다.”
홍승은 “인문학카페를 운영하면서 특히 여성리더이기 때문에 마주하는 편견이 있다. 여성은 감상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남자 후배들을 종종 목격한다. 실제로 같은 말을 남자 선배가 이야기하면 수긍하면서 내가 이야기하면 여자니까 만만하게 보거나 비이성적이라고 비난하는 경우를 목격한다. 여성은 사회운동 중 발생하는 경제문제를 나중에 결혼하면 해결할 수 있으니 마음 편히 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도 듣는다. 나는 남편에게 기대면 되니까, 이런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일상적으로 카페에 찾아와서 마담취급을 하거나, 외모에 대한 평가를 하는 남성들을 자주 접한다.”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는 왜 뿌리깊은가.
홍승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것이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여성혐오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문제화되지 못한다. 그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꼴페미’가 되거나 ‘개념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혐오는 잘 해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여성혐오는 여성들 스스로에게 자기부정의 감정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도록 교육받아온 여성들은 여성혐오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이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여성혐오를 줄일수 있는 대안이 있을수 있는가.
홍승희 “나부터 각성하는 수밖에 없다. 여성과 남성 모두가 각성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새로운 여성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고민 중이다.”
홍승은 “스스로 성찰하는 자세가 가장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나도 여성으로 교육받으며 가지게 된 코르셋을 벗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다. 그래서 더욱 여성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모든 인간이 성별에 상관없이 동등한 인격체가 되기를 바라는 페미니즘이 보편적 인권과 정의의 관점에서 모두에게 통용되길 바란다. 페미니즘이라는 언어의 편견을 벗고, 제대로 알아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보는 한국사회는 어떤가.
홍승희 “상처가 많은 사회다. 여성혐오 기저에는 열등감과 죄책감이 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너무 많은 폭력을 목격하며 자란다. 이 상처를 이야기할 곳이 없다.”
홍승은 “한국사회 가장 큰 문제는 ‘왜’라는 질문이 사라진 것이라 생각한다. 질문 없이 열심히 삽질하는 보수 세력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진보운동을 하는 우리 역시 언제부턴가 ‘왜’라는 질문 없이, 관성적으로 운동을 해온 건 아니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다. 이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질문과 주저함이 사라지는 순간, 또 다른 폭력을 낳을 수 있다. ‘핵심적인’ 사회문제가 있고, ‘부차적’ 사회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유는 끝나고 파시즘적인 운동방식으로 변질될 수 있다. 끊임없이 성찰하며 활동을 해야만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뭔가
홍승희 “모든 사람이 직업, 나이, 성별, 인종, 종교, 국가, 학력, 연봉, 주거, 지역 등과 같은 조건에 상관없이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고 존중받는 것이다. 이 기본적인 게 무너졌기 때문에 사회가 엉망진창이 됐다고 생각한다.”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란 피켓을 들고 어버이연합 회원들과 맞섰다. 애국이란 무엇인가.
홍승은 “애국, 국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국가를 사랑한다’, ‘민중을 사랑한다’는 말은 매우 모호하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권이 사실은 주류계층의 권리에 한정된 개념일 수도 있다는 말을 접했다. 국가나 민족의 동질성이 강조됨으로써 개개인의 정체성과 각자의 당면문제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애국이 아닌, ‘어떠어떠한 인간에 대한 사랑’, 자신의 위치를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문제제기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본다.”
홍승희 “예전에는 애국, 인류애 등을 쉽게 말해왔다. 이제 애국을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삶을 대한다. 애국이라는 대의와 사명감으로 시작한 애국이 얼마나 자기를 소외시키고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는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이는 보수우파뿐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보여줬던 위험성이다. 아이들을 구하지도 못하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부르짖는 애국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지금 한국사회가 보여주고 있다.”
-홍 자매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인가.
홍승희 “폭력이 없어질 수는 없다. 적어도 이 폭력 한가운데서 더 많은 폭력에 기여하거나 타협하고 싶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누구도 폭력을 고발하는 데에 소외되지 않는 세상, 혼자서 분노하고 울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한다.”
홍승은 “활동을 하며 느끼는 것은 모두가 외롭고 불안하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결핍이 자꾸 개인에게 흐른다. 열등감과 불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문제다. 학벌, 직업, 돈, 성별, 외모, 장애에 상관없이 모두가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세상을 꿈꾼다. 스스로가 당장 무엇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주위부터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관계망을 조금씩 확장해가고 싶다.”
-앞으로 무엇에 집중할 생각인가.
홍승은 “인문학카페 36.5도를 운영하며 지난 2년간 사회적 이슈를 중심으로 활동을 해왔다. 이제는 ‘우리의 이슈’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페미니즘 담론을 확산하고 발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페미니즘이 ‘나’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찰하고 글을 쓰며 계속 사유를 점검하고 다듬을 계획이다. 이러한 글쓰기 문화를 확산하고 독립출판 등을 통해 공론화함으로써, 사적인 목소리가 공적으로 전환되는 통로가 되고 싶다.”
홍승희 “효녀연합 퍼포먼스 이후 이번 사건을 거치면서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까지 해온 운동방식을 성찰하게 됐다. ‘정치혁명’ 이전에 ‘문화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승적인 대의명분 이전에 사소하다고 치부해온 폭력이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이자 해결방법의 시작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해온 젠더문제는 생각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젠더감각을 회복하는 것은 기초적인 인권감수성의 회복 문제다. 모든 사람들이 젠더감감을 회복할 때, 세상의 본질적인 변화가 가능할거라 생각한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삶의 진실을 표현할 수 있는 문화운동, 여성운동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우선, 나부터 내 안의 여성혐오와 자기혐오의 정서를 성찰하고 내 삶을 회복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