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4.

이동진, 캐롤


그냥 쓰는 포스팅. (with 부라더소다 한 병)

1. ‘캐롤 논란'에 대한 이동진 씨의 대응은 그가 얼마나 영화를 깊고 성실하게 보아내는 직업 평론가이며 또한 그 자신의 생활을 엄정한 준칙 아래 운영해 나가는 사람인가를 함께 보여주었다.

2. 그건 애당초 논란으로 번질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추이를 지켜보며 누가 이 논란을 주도하고 싶어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특정 대목을 떼어와, 특정 단어(부사 ‘하필’)에 지엽적으로 집착하여 논란을 생산하고 거기에 부나비마냥 뛰어든 이들은 그냥 이동진 씨를 ‘싫어하는’ 사람들이었다.

3. 물론 듀나 같은 합리적 비판론자가 와중에 없었던 건 아니다.(나는 그이의 입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4. GV를 무슨 창작에 기여한 이들-감독, 배우 등-만 나와서 해야 하는 신성한 자리쯤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오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특히 듣고 싶어하는 자리라면 누구라도 게스트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5. 이른바 ‘문화 권력'의 자리까지 점하게 된 오늘날 이동진 씨 지위의 배경에는 책, 영화 등을 보고 나서 누군가의 정돈된 생각을 '듣고’ 싶어하는 이들의 존재ㅡ산업적 수요가 있었다.('읽고’ 싶어했던 지난 시절엔 집집마다 [창비 계간지]와 [키노] 한 권씩이 꽂혀 있었듯.) 이동진 씨는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마케팅하는 일에 다만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은 그의 욕망이자 직업윤리였을 뿐 그를 저 권력의 자리에 부러 올려 놓도록 촘촘히 설계된 인과 기제가 아니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주어진 힘을 남용하여 타인의 자유로운 사고를 방해하거나 누군가에 특정 사고를 강제한 일이 없었던 한엔 전혀 문제될만한 일이 아니다. 더이상 이동진 씨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동진 씨의 방송과 GV 행사도 문을 닫을 것이며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6. '나는 그냥 네가 너라서 싫다'는 태도는 이미 너무 만연한데 그 까닭 중 주요한 하나는 그 혐오증을 부추기는 이들이 지난 날 지켰던 심리, 경제, 사회적 자리가 점점 좁아져가고 있는 현상이다.(그리고 그 영역은 만회될 전망이 좀처럼 없다.) 부당한 특권이 아니었다면 그 상실은 위로받아야 마땅한 애잔함이고 표출되어야 마땅할 분노감이다. 하지만 까닭이야 무엇이건, 방향은 언제나 영문없이 멱살잡혀 단두대에 세워질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영역을 애써 좁히고 왜곡함으로써 모종의 편익을 취해내려는 어떤 세력과 구조를 향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 일이 힘들다고 애꿎은 사람을 볼모로 잡아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