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1.

곡성


1. [곡성]에 완전히 질려 버렸다. 이런 영화는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오래 볼 수 없을 것 같다. 가기 전 막연히 [소서러], [지옥의 묵시록] 류의 괴이한 처절함과 [사이비], [안개마을], [이어도] 류의 폐쇄 공동체적 광기와 음산함이 적당히 뒤섞인 결과물일거라 생각했다. 보기 좋게 희롱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떤 레퍼런스를 쉬 대입하기 어려운 영화다. 강력하고 심오하며 정직한 영화다. 활짝 열린 창과 같은 영화다. 우리 사고와 행위가 추동되는 바탕인 믿음의 실체에 관해 질문하는 영화다. 자기 현시적 테크닉으로 일관하고 언뜻 심오해보이는 주제를 얄팍히 분칠한 어떤 경향의 영화들은 [곡성]을 보고나면 생각할 지점들이 많아질 것이다. 기분좋은 희롱을 경험한 관객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2(추가). 역대급의 해석들과 갑론을박이 쏟아질 작품임은 극장문을 나선 이라면 누구나 직감했을 터다.(물론 이 영화를 더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들에 한 해. 상당히 많은 수가 객석을 퉁명스레 털고 일어났다.) 개봉 첫 날임에도 반응은 역시 뜨겁다. 누가 누구의 편이냐, 누가 누구와 대립했느냐가 주된 논쟁의 양상인 거 같다. 감독이 ‘특정인과 특정인이 한 패'라는 식의 유권해석을 어디선가 흘린 모양인데(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래서인지 누구와 누구가 진짜 악마였어,로 (아직까진) 논쟁이 쉽게 귀결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를 넘어선 매우 다층적인 고민거리를 안긴다. 누가 악마여도 좋고 누가 악마가 아니어도 좋은 지경까지 간다. 모두가 악마가 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바라보고, 무언가를 믿고, 무언가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 그 자체에 관한 징그러운 탐구. 그 끝에 도달한 곳은 거대한 무력감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나올 수 없는, 영문도 없는 불행과 무력감. 영화 전체가 거대한 현혹(환각)이라고 느꼈다. 그 느낌에 관해 언젠가 정리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