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0.

근조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빈다. 죄스럽다. 내 안의 여성 혐오를, 나는 충분히 들여 보지 못했다. 여자친구를 사랑하고, 여동생과 어머니를 아껴온 것은 오늘의 이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임을, 이번 일로 배웠다. 어리석게도. ‘효녀 연합'의 홍승은 씨는 말했다. “혐오는 여성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으로 취급하지 않는 모든 문화를 말한다.” 뛰어난 여성, 치열한 여성을 나는 흔쾌히 받아 들여왔던가. 예쁜 여자, 착한 여자, 얘기가 잘 통하는 여자, 섹시한 여자, 혹은 삶의 경륜이 쌓인 여자 - 범주 밖의 여성들을 나는 진정으로 애정하거나 존경한 일이 있었던가. 답을 할 수 없었다. 이런 반성은 모래에 쓴 글자와 같아서 쉽게 지워지고 마는 것이다. 이 다짐 뒤로는 말을 멈추어야 한다. 대신 자꾸 스스로를 응시해야 한다. 끝내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수고없이 얻은 것들. 무감하게 취한 편리들. 그들 가운데 나. 남성인 나. 다시 한 번 희생되신 분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