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6.

하루키, 몸


하루키의 몸에 관한 묘사를 좋아한다. 그는 정말 거기에 공을 들인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 섹스할 때는 무엇을 느끼는지, 어떻게 몸을 구석구석 씻어내는지, 어떤 은밀한 상상 선을 그리는지, 어느 순서로 근육을 단련하고 다시금 차근히 풀어 나가는지. 방대하고 켜켜한 그의 세계에서 유독 나는 그런 것들을 볼 때 진한 흥미를 느낀다. 패턴이 늘 비슷한데도 그렇다. 흡사 내 몸에 비슷한 자극이 스멀스멀 들어오는 듯한 그런 착각. 동네를 걷다 불현듯 하루키의 문장들을 떠올렸다. 구체적인 문장이 아니라, 문장들이 모아진 느낌을 떠올렸다. 바람은 알싸했고 길엔 사람도, 사물도 드물었다. 노래가 꺼진 이어폰은 귀마개가 되었고, 그덕에 내 심박과 발걸음, 호흡 소리만이 또렷이, 온전하게 들렸다. 그 리듬에 깊이 빠져들며 나는 하루키가 무엇보다 몸에 관한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묘사들 덕에 지난 생활 간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안정을 기여받았다는 점을 생각해냈다. 밥을 먹을 때, 샤워를 할 때, 섹스를 할 때, 산책을 할 때, 부지간 나는 지상의 많은 와타나베, 카프카, 덴고, 아오마메들과 근원적 고독, 생의 작은 기적 따위를 나눠온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