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20.

에이프릴의 딸



시사회장을 나서는 사람들의 투는 하나같았다. 허탈한 웃음.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아내와 나도 그랬다.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저마다 말들을 이어갔다. 엘리베이터를 두 차례 그냥 흘려보냈다.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질문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을 무게로 아내가 말했다. 저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나. 나도 알 수 없었기에 아무 대답도 못했다. 며칠이 흘렀다. 이해해줄 필요가 있을까. 이제사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메커니즘으로 저 욕망과 광기가 발현되고 추동되어왔는지, 구태여 헤집을 필요가 있을까. 이해를 구하는 일은 판정을 내리기 위함일 터다. 수용이 가능한지 불가한지 여부를 어서 선 그어내고, 정리해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속히 내 안에 안정이 마련되므로. 그러나 그 일이 내게는 필요치 않은 일임을, 불가한 일임을 알아챘다. 저 삶을 그저 응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저런 광기와 욕망이란 게 있다.’ 정도로. 그런 정도로의 응시. 그 광기와 욕망은, 정도와 내용을 달리한 채 내 안에도 도사리는 것일지 모를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