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낙원아트시네마
2015년 봄
“삶의 불가능, 사랑의 불가능, 가치를 건설하는 일의 불가능은 본래 그러한 것처럼 분명했으나, 그 불가능한 삶을 단념할 수 없는 운명 또한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삶은 곧 기갈인 것인데,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거스를 수 없으며 피할 수 없고 붙잡을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그 앞에서 멈칫거릴 수 없는 것이어서, 그 배고픔과 목마름이 돌이킬 수 없는 생로병사의 길이라 하더라도, 문학은 저 불가능들의 편이 아니라 기갈의 편이라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졸작은, 그 성취는 고하간에, 어쨌든 그 기갈의 편에 서는 글일 것입니다.
중생으로 살기 위하여, 생로병사에 밟히기 위하여, 시간이 몰고 오는 온갖 수모를 견디기 위하여, 목마름을 목말라하기 위하여, 그리고 인간에게 허용된 말의 범위 안에 머무르기 위하여 저는 기어이 한 글 한 글의 글을 쓰겠습니다. 그래서 저의 글은 아마도 좁고 가난한 영역 안에 갇히게 될 터인데, 저는 그 부자유를 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훈, 이상문학상 수상소감 중에서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중에서
“부인은 그 사람에게 애당초 마음을 뺴앗기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미사키는 매우 간결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잤죠.”
(중략)
“여자한테는 그런 게 있어요.” 미사키가 덧붙였다.
아무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가후쿠는 침묵을 지켰다.
“그건 병 같은 거에요, 가후쿠 씨. 생각한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죠.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고 간 것도, 엄마가 나를 죽어라 들볶았던 것도, 모두 병이 한 짓이에요.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봤자 별거 안나와요. 혼자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꿀꺽 삼키고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요”
- 무라카미 하루키, [드라이브 마이 카] 중에서
진실이란 본시 손안에 쥐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얼음처럼 사라지기 쉬운 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혹, 그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하는 것만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그녀를 단순하고 정태적인 진술 안에 가둬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만이, 또 그럼으로써 그 옛날 남발안의 계곡을 스쳐가던 바람처럼 가볍게 흩어지도록 놓아주는 것만이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아닐까? 독자 여러분, 이야기는 계속된다.
- 천명관, [고래]중에서
“그때 나는 부인에게 약간 실망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나는 사람의 인격이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훌륭한 여자에게 그토록 깊은 앙심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한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특질로 형성되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한 인간의 마음안에도 좀스러움과 위엄스러움,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