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1.

촬영지 순례 여행 #2. 허우 샤오시엔 감독 만남 10주년 기념



1. 우리로 치면 명동쯤 될 이곳에서 여자친구는 먹거리 위시리스트를 지워내느라 여념없었고, 나는 대만 최초의 극장(이지만 멀티플렉스로 개축된)을 비롯한 또다른 멀티플렉스들의 분위기를 살피러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정신 없었다. 개봉 사나흘차를 맞은 [섭은낭]은 초반 스코어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대부분은 속아서 온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후에 SPOT의 수잔에게 들은 바로는, [섭은낭]을 보고 뿔난 관객들이 포털 평점 테러를 신나게 하는 중이라고, 적어도 [와호장룡] 정도는 되는 고급지고 신나는 무협영화일 줄 알고 찾아왔다가 기대완 전혀 다른 엉뚱한 영화라 짜증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아마도 곧 내려질 간판들을 돌아다니면서 찍었다. (시먼띵.2015)



2. 처음 타이페이 시내에 당도했을 때,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거리 제례의식이었다. 그날따라 무슨 일이었는지 가게마다, 가정마다 작은 제단을 마련해놓고는, 향초와 지방을 태우며 기도를 외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종교는 없지만 종교인들이 제각기 관례에 따라 의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중동을 여행할 때, 하루 꼬박 다섯번 나라 전역에 울리는 코란 소리에 취해들곤 했었다. 무슬림들은 길을 걷다 말고 등짐에서 작은 카펫을 꺼내 바닥에 깔았다. 메카를 향해 전심으로 기도를 바치는 모습에서 풍기던 그 엄숙함, 정결함을 잊지 못한다. 이따금 제 종교에 교조적으로 빨려들어 타 종교를 억압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무섭다. 하지만 어떤 종교든 진실하게 믿는 사람들은 그러는 법이 없다. 신을 무조건 숭앙하는 대신 신과의 대화 속에 무엇보다 자신을 뒤돌아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비정성시] 첫장면은 임문웅의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아내의 진통과 비명이 시작되자 안절부절못하며 향초를 집어올린다. 양손에 모아 허공에 몇번 휘두른 뒤 기도를 올린다. 나도 그 방법대로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평온을 기도해보았다. (용산사.2015)



3.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잠깐 쉬러 들어간 카페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그녀는 17세의 학생이었다. 싸인, 코싸인, 탄젠트 등의 기호가 복잡히 적힌 문제지를 풀고 있었다. 그 시끄러운 틈에서 괜찮겠냐 물었더니 상관없단다. 그녀는 허우 샤오시엔을 알고 있었다. 반면 장첸과 서기는 모른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 눈이 참 예뻤고 말씨가 고왔다. 그녀도 나도 더듬거리는 영어로 서로의 생활을 물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21살이고 그녀를 많이 예뻐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수줍게 보여준 휴대폰 사진이 그걸 말했다. 그녀는 이곳 딴수이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여행 비지니스 학과에 들어가고 싶단다. 멋진 여행 기획자가 되는 것이 꿈이란다. 그녀의 행복과 꿈이룸을 빌어주었다. 아직 키스를 못해봤다기에 얼른 해보라고 농섞어 충고해줬다. 인생에 진짜 좋은 몇가지 중 하나라고. 수줍게 붉어진 볼이 참 예뻤다. (딴수이.2015)



4.[비정성시]와 [연연풍진]의 촬영지, 지우펀. 저 첫 번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향한 이유는 충분히 채워진 셈이었다. 저 습한 장면은 비정성시에 인서트로 두어차례 삽입된다. 그 무심한 쇼트를 바라볼 때마다 정말 가슴이 아려오곤 했었다. 우리는 한 정자 안으로 들어갔다. 길다란 의자에 걸터 앉아 습기 가득한 바람을 맞았다. 한 쪽 귀에 씩 이어폰을 나눠 꽂고 비정성시 사운드 트랙을 들었다. 그녀가 내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긴 시간 함께 귀기울여 들어주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지우펀.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