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9.

대리사회


  스스로 해낸 만큼이 결국 자기 자신일텐데 우린 너무 많은 것을 박탈당하고 있다. TV와 스마트폰만 열면 모든 일이 대신 일어난다. 누군가가 대신 여행을 하고, 대신 뷰티를 하고, 대신 연애를 하고, 대신 요리를 하고, 대신 노래를 하고, 대신 농사를 짓고, 대신 군대에 가고, 대신 학교에 가고, 대신 아이를 키운다. 심지어 대신 먹어주기까지 한다. 말하자면 대리 사회. 저 세계로 흡수되면 흡수될수록 우리 손발의 감각은 퇴화하고 꼭 그만큼 각자의 세계들도 축소한다. 존재감이 희미해 갈 밖에. 무력감에 바둥거릴 밖에. 스스로 만지고, 걷고, 느끼고, 보고, 들을 능력도 힘도 한 줌 남지 않게 되어버린 오늘. 우리에겐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능력만 남았다. 전방위적으로, 완전하게. 그저 돈만 있으면, 본래 스스로 만들고 일구고 쌓던 것들을 모두 상품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됐다. 세상 참 편해졌다. 그래서 돈이 필요한데 돈이 잘 벌리지 않는다. 때가 되면 저절로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니 그런 생각조차 없었는데. 누굴 원망해야 하나. 한낱 소비자로 전락한 내 자신이 먼저 부끄럽다. 수치스럽다. 그러나 화도 난다. 이런 삶을 스스로 택한 것만은 아니다. 억울하다. 이제라도 손발의 감각을 다시 회복하고 싶다. 그 감각으로 호흡하고 싶다. 스스로 해내고 싶다. 아마도 브랜드 권력, 공인 권력, 엘리트 권력은 비웃을 것이다. 한낱 아마추어 주제에 쯧쯔. 맞는 말씀이다. 비브랜드, 비공인, 비엘리트 아마추어의 발버둥이다. 그러나 더 이상 소비로만 정체감을 찾는 바보로 남진 않으려 한다. 가깝고 작은 것들을 세심하게 자주 살피며 퇴화된 감각을 하나씩 회복하는 일에 열을 기울이겠다. 그렇게 조용히, 나 자신 하나 생활의 혁명을 일구어 가겠다.

추신. 인천 모백화점에서 일어난 일을 방금 뉴스로 보았다. 안타까운 일이나 드문 사건은 아니다. 이미 여러차례 우리는 목격한 바 있다. 소비자의 정체감 밖에 남지 않은 이들은 오로지 그 수단으로서만 자기존재증명을 할 밖에 모르기에 저렇게 종종 인간의 선을 이탈한다.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괴물은 태어나는 중이다. 서글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