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2.

왓챠


1. 왓챠라는 서비스가 있더라. 이제야 알았다. 영화에 별점 주는 이들이 모인, 일종의 SNS인 모양이다. 내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맞춤형 추천 영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곧 드라마, 책, 음악까지 사업을 확장한다고 들었다. 벌써 유저가 많은 모양이다.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었다. 나는 쓸 생각이 없다. 내 취향은 아닌 것 같다. 별점 매기기는 하나의 작은 놀이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좋은 자기 기록도 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나는 내 기억을 남겨 두고 싶지 않다. 차곡이 쌓여가는 DB를 보며 시간을 평균내고 취향을 분석 당하고 내게 최적화가 된 영화가 무언지 알림받고 싶지도 않다. 그런 대차대조표가 필요치 않다. 그냥 길을 잃으면 그만이다. 헤어 나오면 좋고, 아니어도 저 길잃음 속에 또 그런대로의 유희가 있다. 무엇보다 한 번에 별을 내릴 만큼의 능력이 내겐 없다. 몇 번을 보고, 긴 시간 지나 다시 보고, 그렇게 자꾸만 지난 것들을 다시 현재로 끌어 와야 비로소 내 책이 되고 내 영화가 되는 기분이다. 취향과 습관이다. 그렇게 생겨먹은 걸 나도 어쩔 수 없다.

2. 어제 호수 한 바퀴를 돌았다. 오후 네 시쯤의 햇살은 아직 노랗고 따뜻했다. 바람엔 제법 쌀쌀함이 감돌았다. 겉옷을 걸쳤다 벗었다 하며 걸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길이었다. 자연과 인공이 두서없이 뒤섞였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우린 대화에 몰입했고 온몸으로 퍼지는 상쾌함을 즐겼다. 몇 킬로쯤 되었을까? 천천한 걸음으로 대략 한 시간이 좀 넘는 거리였다. 차로 돌아오자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산 뒤로 곧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이런 시간이 더 자주 허락되었으면 좋겠다고 우린 입을 모아 말했다. 걷기는 참 좋은 운동인 거 같다. 혼자면 혼자인대로 함께면 함께인대로. 부담도 덜하고, 무엇보다 몸과 정신이 함께 스르르 맑아지는 느낌이다. 일에 더 집중이 생기고 생활에 활기도 돋는 것 같다. 작년 이맘땐 몸 만들기에 그야말로 열중 했더랬는데.(지금 내 몸이 웃는다.) 스쾃 세 세트, 푸쉬업 세 세트를 하지 않으면 도무지 좀이 쑤셔 하루를 잘 닫지 못했다. 그 나름대로 괜찮은 운동이었다. 그러나 그건 부담을 주었고 갈수록 횟수가 줄어갔다. (부담이 생기는 순간 그 운동은 결코 오래 못가더라.) 매일 지키던 약속이 깨어지니 그 뒤엔 걷잡을 수 없었다. 무엇이 되었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거 같다. 걷기는 부담이 없어 좋다. 하루키는 하루 꼬박 10km를 달려야 한다고 늘 스스로에 주문한단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도 4시간 이상 걷지 않으면 도무지 찜찜해서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경지는 내가 넘볼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 몸과 정신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건가 보다. 순응할 밖에.

3. 역사 교과서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없다. 어떤 재앙을 가져 올 것인지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다 알면서도 기필코 얻어야 할 것이 있기에 끝내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 결기와 간악에 공포를 느끼나 한편으론 거대한 무력감을 느낀다. 마비된 이성과 그를 맘껏 휘두를 힘을 가진 자들을 상대하기란, 힘에 부치는 일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다. 오랜 시간 그래왔다. 불가능의 끝에 남아 서서 저항을 잇는 분들을 다만 응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