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2.

바닷마을 다이어리


거실 한 켠에 작은 제단을 마련해놓고 기도를 올리던 장면이 오래 남았다. 그릇 모양의 놋쇠 종을 댕 한번 쳐 울리고 눈을 지그시 감던 저 얼굴들에 편안함, 정결함이 흘렀다. 속수무책 그 장면에 가슴이 설렜다. 먼저 떠난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만 그녀 자신들을 위한 장소가 되어주기도 했으리라. 불현듯 그 종을 방에 두고 싶어졌다. 가까운 불교 용품점을 검색했다. 여고 바로 맞은 편에 있었다. 산책 중에 여러 번 지나친 길인데 이런 가게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스즈를 닮은 여고생과 마주치길 내심 바랐다. 그러나 겨울 방학이었다. 잔뜩 때가 낀 유리문을 밀었다. 내 또래의 남자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문이 닫히며 풍경 소리가 예쁘게 울렸다. 사람 크기의 플라스틱 불상, 탁상용 청동불상, 목탁, 염주, 승복 따위가 있었다. 천천히 구경하고 싶었지만 남자의 얼굴이 퍽 무기력해 보여 그럴 수 없었다. “저기, 놋쇠 종 있나요?” “흔드는 거요, 치는 거요” “치는 거요. 이렇게 막대기 같은 걸로..” 남자는 손가락으로 저쪽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정말 종들이 있었다. 영화서 보던 거다. 가까이서 보니 엷게 먼지가 앉았다. “이거 얼만가요?” 커피색의 윤기나는 종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남자는 대답대신 클리어 파일을 뒤적였다. “15만원이네요.” 뭐? 저 그릇하나에? “저어. 그럼 저 옆에거는요?” 살 마음은 없었다. 그냥 물어 보았다. “10만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을 해보였다. 거리로 나왔다. 바람이 찼다. 한 무리의 재잘대는 여고생들과 스쳤다. 저 소란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나도, 저 친구들도, 무례한 점원도 각자의 한 시간을 통과하는 중일 것이다. 언젠가 그리거나 미워할. 다시 돌이키고 싶거나 그러고 싶지 않을 어떤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