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3.

한국이 싫어서


  2년 반여의 제주 생활을 마감했다. 좀 된 이야기다. 그간 느낀 단 한가지는, 내가 자연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도시 또한 무척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일층 지하 일층] 단편집에 김중혁 작가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 속된 도시가 좋다. 계속 이곳에서 살아갈 것이다.’ 내 심정이 딱 그랬다. 도시가 주는 어떤 소란스러움, 모종의 흥분을 나는 떨쳐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깨우침은 귀중했다. 지금 나는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살고 있다. 서울을 떠나와 이곳에 정착한지도 5년이 넘어간다. 나는 우리 동네를 무척 사랑한다. 틈날 때면 동네 구석구석을 산책하고 다큐를 위한 클립을 모은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이상적으로 도시와 자연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필요하면 큰 서점에 가 책을 보고, 답답하면 조금 나가 텐트를 친다. 그러나 그 균형이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 이 역시 좀 된 이야기다. 브랜드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대형 마트가 상상 못할 크기로 땅을 집어 삼키고 있다. 각종 편의시설들, 문화시설들, 체육시설들이 그야말로 날이 멀다하고 세워지고 있다. 그래서 괴롭기만 하냐고? 아니. 나도 얼마간 속물이다. 영화관이 코앞에 닿아 좋고 대형마트가 자정 영업을 해서 편할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좋기만 하냐면 물론 그건 역시 아니다. 맘 비우고 걸을 숲과 아름드리 익어가는 노란 들녘이 누군가들에게 꾸준히 팔아 넘겨지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제 살던 자리서 원치 않는 밀려남을 당하고 있다. 그걸 지켜보는 건 유쾌한 일이 못 된다. 그렇게 늘 양가의 마음을 품고 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카메라를 드는 일이다. 무엇이 부서지고 그 위에 무엇이 세워지는지 지켜 보는 일. 그것으로 나는 일말의 속죄를 대신하려 한다. 비겁한 일이다.

낙담한 청년들이 이민 행렬을 줄잇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새꿈을 품고 혹은 또다른 불안을 안고 떠나는 것이다. 응원을 보낸다. 여행을 다니며, 저마다의 사연과 꿈으로 한국을 떠나 온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도 내 자신이 그 중 하나이기도 했거니와 제주 이민족(이라 스스로 칭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들과 복닥이며 한철을 살았다.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할 것이다. 어디에도 낙원은 없었으며 어디라고 지옥이란 법도 없었다. 사는 곳이 어디건 자신의 내면에 먼저 평화가 깃들어야 함을 나는 뒤늦게 배웠다. 부디 그러기를 소망한다. 다만 기사의 한 대목에서는 참 가슴이 저릿했다. 한 청년의 말이다. “한국 밖으로 나가서도 차별받을 거란 걸 알아요. 그치만 이곳에서 겪는 멸시보단 그게 그나마 나을 거 같아요.” 아찔했다. 어쩌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