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0.

여자친구


그녀는 여행을 갔고 나는 남았다. 창 너머 앉은 그녀를 보지 못했다. 나도 그녀도 먼 거리를 뛰느라 정신이 없었다. 버스는 떠났다. 청소를 하고, 짐을 꾸리고, 투표를 하고, 그리고는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우리 둘 중 우리가 잠들어버렸다는 걸 인지한 이는 없었다. 비행기 시간이 임박해서야 잠을 깨었고 밖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그녀는 연신 어떡해,를 읊어댔다. 나는 우리에게 단 1초라도 줄일 방법이 무언가를 생각했다. 답은 없었다. 무조건 뛰었다. 신호를 무시했고 경적 소리도 무시했다. 저 편에 기적처럼 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버스는 그녀를 날름 삼키고는 문을 닫았다. 저만치 사라졌다. 허리를 굽혀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집으로 향하는 열차를 탔다. 한 시간 쯤 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속을 밟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다. 잘 다녀올게. 사진 많이 찍어와. 전화를 닫았다. 한 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탔다. 그 중엔 중국인 가족이 있었다. 너 댓살 쯤 먹은 막내가 엄마 허리춤을 끌어 당기며 칭얼댔다. 자리를 양보했다. 아이는 스마트폰 게임에 몰두해 들었다. 不出, 可入 따위 글자들이 화면에 큼지막이 떠올랐다. 한동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궤도 소리가 둔중했다. 풍경이랄 것도 없는 어두운 것들이 스쳐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