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5.

추하고 더럽고 미천한



1. 아인이와 재인이를 만났다. 재인이가 세상에 난 지 한 달쯤 못되었을 때가 마지막이었으니 8개월 만이다. 그 사이 세상은 거대한 전기를 맞아 둘로 나뉘었다. 이 천진한 것들은 몸집이 약간 불고 자기표현을 좀 더 분명한 쪽으로 내뱉을 수 있게 되었으되, 둘로 나뉜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저 예쁘고 티 없는 웃음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사실에 깊은 유감이 들었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밥을 다 먹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나서는 길에 아이들은 제게 어울리는 귀여운 마스크를 착용했다. 밥을 먹으면서, 길을 걸으면서 나는 이 얼굴들을 여러 장 사진에 담았다. 하여간 이 근원적 체제를 생성하고 유지하고 떠받드는 무수한 생활 가운데 있는 한 어른으로서 깊은 죄책감이 들었다.  

2.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기타노 다케시의 [그 여름 조용한 바다]를 스크린으로 보고 싶어서였는데, 아인 재인과의 식사가 일찍 끝나, 그 전회차 상영 시각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하게 되었다. [추하고 더럽고 미천한](에토레 스콜라)이란 (내게는 듣보잡의) 영화가 상영될 참이었다. 볼까 말까 하다가 열감지 카메라를 통과한 김에 그냥 보기로 했다.

3. 에밀 쿠스투리차 [집시의 시간]과 배창호 [꼬방동네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공간의 설정과 등장하는 캐릭터(도시빈민들)의 인상 때문이다. 앞선 두 영화를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그냥 취향에 안 맞아서), 이 영화는 그냥저냥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일단 한정된 공간(도시 중심과 유리된 언덕배기 빈민가)에서 모든 사건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야말로) 혼돈의 가족(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이들)만이 등장하여 이 모든 소란을 이끌어간다.

4. [집시의 시간]에 있는 것이 여기도 있었다. 마술적 리얼리즘 같은 것이랄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정서가 하여간 여기에도 있다. 복잡한 가계도(라 쓰고 개족보라 부른다)도 그것이거니와 예측 불가능한 지점에서 터지는 B코드 유머(분명 죽었어야 마땅한 아버지가 살아났다!)에 더해 반복되는 몽환적인 음악(지나치게 반복적이어서 한동안 귓전에 맴돈다)에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모든 불협화음과 동시에 '사실적'이다. 그래 저럴 수도 있지.

5. 극장을 나서 삼청동으로 걸었다. 학고재 전시를 보고 싶었는데 7시가 넘어 도착해 문을 닫았다. 바로 옆 블루보틀에서 머그잔을 사고 핫초코를 마셨다. 자신들이 생산하는 음료에 자부심이 높은 점원은 나더러 뚜껑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그 까닭으로 우유와 함께 마셔야 제대로 풍미를 느낄 수 있다는 논거를 달았다. 나는 곧바로 수긍했다. 한 잔의 음료일지언정 저 정도의 단호함과 떳떳함이라면 충분히 그 의지를 따라야 하는 게 맞는 처사일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