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10.

2018. 2. 11.

페이스 오브 러브



1. 공무원 시험을 봤다. 공무원이 됐다. 누군가는 목숨을 거는 일이라던데. 이리 쉽게 얻는 건 아무래도 떳떳지 않은 일이다싶다. 우리 긴 생에 분명 독이 될 것이다. 나는 더 치열할 필요가 있다. 더 어렵게, 더 먼길을 돌아 무언갈 쥘 필요가 있다. 

2. 오랜만에 집에 내려왔다. 아내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고, 나는 동네 도서관 창가에 앉았다. 눈을 본다. 눈이 세차게 내린다. 순식간에 지붕과, 산책로와 상점들이 잠겼다. 너무 간단한 일이어서 놀랐다. 이렇게 쉽고 빠르게 이뤄지는 일인 줄 몰랐다. 

3. 점심을 먹으며 채널을 돌리다 [페이스 오브 러브]의 한 장면에서 멈췄다. 아네트 베닝과 애드 해리스가 딸의 절규 앞에 놓였다. 아네트는 사태를 관망하다 결심을 세운다. "너 나가." 딸은 가까스로 멘탈을 부여잡고 되묻는다. 엄마의 대답은 같다. "너 나가. 난 애드 없이 살 수 없어." 하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대신 그들이 나가기로 한다. 멕시코로. 죽은 남편의 기억이 묻힌 곳으로. 히치콕 [현기증]과 꼭 같은 서사. 이런 이야기엔 속수무책 빠져들고 만다. 밥숟갈을 내려놓았다. 체기가 돌았다. 





2017 코타키나발루 여행


































2017. 12. 7.

2017. 10. 2.

추석


1. 아내가 꼬지에 계란을 입히고, 나는 그걸 받아 후라이팬에 구웠다. 어머니는 낙지를 손질했고, 아버지는 횟감을 떠오셨다. 제 시간에 친지들이 모였다. 음식을 나누고 술잔을 주고 받았다. 못 온 사람들을 떠올렸다. 각자의 생활들을 짧게 나누었다.

2. 존경을 바쳐온 여러 사람들이 있다. 그들 덕에 나란 존재는 덜 치졸한 모습으로, 더디 부식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장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며 문득 뭉클한 기분이 되었다. 이 분을 내가 깊이 존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2017. 9. 28.

꿈의 제인


1. 열흘간 아내가 없다. 장인어른, 장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갔다. 십년 만에 우리 처음 만난 그 나라 그 장소를 다시 찾는 것이다. 어떤 느낌일까.

2. 꿈의 제인을 봤다. 슬프고 아름다웠다. 조영각님 사회로 조현훈 감독과의 만남도 있었다. 망설이다 결국 손을 들었다. 마지막 질문이 됐다. 앞으로도 우리 불행하게 잘 살자, 정말. 소주와 라면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3. 올해도 부산에 가지 못하게 됐다. 내년엔 어떻게든 수를 써볼 것이다. 이모 할머님과 명일이 삼촌도 찾아 봬야 한다. 삼촌과 드라이브를 하고 광안리서 소주한잔 하고 싶다. (불현듯 그리운 2005년의 부산. 이때가 낭만은 절정 아니었나. )


2017. 9. 25.

서성거리기


1. [쓰리 타임즈] 틀어 놓고 빨래를 개다 불현듯 든 생각. '연애몽'을 무성영화로 처리한 까닭을 묻는 질문에 허우 샤오시엔은 이렇게 대답했다. 청대의 고어를 재현해낼만한 여러 여건들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꼭 십년 뒤 [자객 섭은낭]을 만들었다. 숫제 열 세기도 더 전인 당을 배경으로 해야했다. (대사수는 극히 적었으나) 똑 당대 언어로 발화되었고 그 점이 중화권 관객들에 (움직임 없는 무협영화라는 듯도보도 못한 형식만큼이나) 각별한 인상을 남겼다.

3.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다가서야 하는 일과 다가서지 말아야 하는 일(혹은 그럴 수 없는 일). 그들 틈 간에 허우 샤오시엔은 늘 서성인 채이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17. 9. 4.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말



  
  헤밍웨이처럼 짧은 문장을 쓰는 작가도 있고, 제임스 조이스처럼 몇 페이지에 걸쳐 독백을 적어내리는 작가도 있다. 영화 역시 여러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파졸리니는 시적 영화와 서사적 영화를 구분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영화는 시적 현상이 될 때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종류의 영화이건, 그건 내게 상관없다.

                                                         - 테오 앙겔로풀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