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7.

온 식구 코로나 확진

아이까지 온 식구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
 






 

2022. 4. 4.

2022 시즌 마킹

2022 시즌 마킹은
이종성과 오현규로






2022. 3. 31.

시와 첫돌

2022.3.31. 
시와 첫돌











2022. 3. 26.

건선증

레이먼드 카버 시집 번역본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기쁨에, 시를 한편 적어보았다.





건선증
                                                                                     

처음에 그는 그것이 그저 각질인 줄로 알았다
두툼하게 떨어지고
부분에서 부분으로
그러다 부분이라 할 수 없는 너비로 번져가는
피부들을 떼어내며 그는 그곳에 나쁜 생물이 살고 있다고 확신했다
더 이상 손 대기를 멈추고
이 나쁜 생물을 처치해야 했다 그것이 그의 할 일이었다
그는 갑자기
아주 정돈된 삶이 살고 싶어졌다
순서와 절차가 있고
이행과 불이행의 단순한 판정만이 존재하는 멸균의 세계
그는 그의 몸에 기거하는 나쁜 생물들을 그려보며
전류가 흐르는 듯했지만 그 생물이 몸 안에 기거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 하진 않았다
똑바로 보려고 했다
똑바로 보고
똑바로 죽이겠노라고
다짐했다

2021. 12. 16.

2021. 10. 5.

인생픽션 2021

이 일 또한 5년에 한번씩 행해볼까 한다.
(인생영화시리즈처럼)











2021. 10. 2.

레이먼드 카버의 말



대담자:
당신은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얼마큼이나 바라고 계십니까? 당신의 이야기들이 누군가를 변화시킬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카버: 
(상략) 
좋은 픽션은 부분적으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소식을 전달해주는 일종의 매개체와 같으며,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픽션을 통해서 사태를 변화시킨다는 것, 고래나 삼나무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 등은 다 부질없는 소리입니다. 만약 당신이 의미하는 변화가 이런 것들이라면,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나는 픽션이 반드시 이러한 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어야만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픽션은 단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즐거움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 자체로서 아름다운 것이지요. 무언가를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영속적이면서 지속적인 어떤 다른 종류의 즐거움들. 이러한 불꽃들을, 비록 희미하다 할지라도 지속적이고 견실한 이 모든 광채들을 진정 예술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2021. 8. 16.

이수경, 구지윤, 프랑수아 트뤼포


1. 모처럼 외출을 했다. 

2. 아트선재센터서 이수경의 <달빛왕관>을 보았고, 이어 아라리오 갤러리서 구지윤의 <혀와 손톱>을 보았다. 이수경과 구지윤 모두 중진작가로서 제법 업계에 이름이 나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이들의 전시를 처음 보았다. 다소 거칠지만, 두 전시를 '흘러내리는 신체에 관한 작업'이란 한 줄로 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3. 이수경의 <달빛왕관>은 외견상 화려하고 과시적인 설치작업들로 구성된 것 같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오브제의 면면은 모두 분절 난 여성 신체 조각들이다. 그 충돌감이 이상한 감흥으로 이끈다. 3층에 이어지는 영상작업을 통해 이수경의 지향을 감히 가늠해볼 수 있었다. 선명한 메시지를 부러 피하려 한 듯하나, 분명한 사회적 운동성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넘칠듯한 긴장과 균형감에 탄복하고 말았다.  

4. 구지윤의 <혀와 손톱>은 캔버스에 유화작업으로만 구성되었다. 2호 사이즈부터 300호(는 족히 되어 보이는 대형) 사이즈까지 다양한 크기의 작업들이 있었다. 형태를 뭉개는 추상회화의 전형들이었고, 전시 제목과 같이 신체기관 및 분비물을 연상케 하는 색채와 형상의 사용이 있었다. 굉장히 대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수경에게서 느꼈던 긴장감과 같은 것을 얻지는 못했다. 

5. 전시를 보고, 에무시네마에서 프랑수아 트뤼포 <400번의 구타>를 DCP로 보았다. 꼬박 한 두 해마다 한 번씩 트는 영화인데, 절반은 영화에 사용된 음악 때문이고 다른 절반은 앙뜨완 드와넬의 얼굴 때문이다. 에무시네마를 나오면서 이 영화를 스크린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임을 알아챘다. 앙뜨완 드와넬이 발자크를 흠모해 방구석 한켠서 작은 제의를 갖는 장면을 언제나 사랑스러워하는데, 커튼 조각에 옮겨 붙었던 불이 그렇게 컸다는 걸(그래서 하마터면 영화고 뭐고 다 타 죽을 뻔했다는 걸) 이전 감상에서는 이리 실감하지 못했었다.    






2021. 6. 26.

중력


1. 시와가 태어난 지 90여 일이 흘렀다. 모두가 그러할 것처럼, 우리에게도 여러 변화들이 찾아왔다. 작고 소중한 존재에 대한 '구체적' 감격, 애틋함. 그를 바라보며 샘솟는 '질적으로 새로운' 책임감. 그러나 한편, 현실로부터 10센티 정도 붕 뜬 상태의 생활감으로 줄곧 살아왔던 내게, 출산 및 본격 육아의 지난 90여 일은 현실의 준엄한 중력을 절감케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2. 피로. 우선 육체의 피로. 그로 인한 정신의 아둔함. 마치 '지속-멈춤-다시 지속'이라는 단락과 매듭이 이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 그로 인한 천천한 존재의 균열. 이어지는 시간들. 다시 피로. 육체의 피로. 그로 인한 정신의 아둔함. 존재의 조각들이 하나씩 상실되는 기분. 

3. 말할 필요 없이 내 자식은 아름답다. 나와 아이 사이에 충분한 시간이 축적되지 않았더래도, 이 생명과 마주한 그 최초의 시간부터 우린 흡사 신경망처럼 즉각 연결되어버렸다. 응당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가장 아끼는 것을 당장 내어 놓아야 한대도 전혀 아깝지 않을 존재로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문제와 분리되는 이 존재론적 부스러짐이란, 전에 미처 그 폭과 종류를 감히 예상하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한동안은 이 당혹감과 살아가야 할 것이다.  






2021. 4. 18.

이시와 탄생

 


2021. 3. 31. 이시와 탄생하다.











2021. 3. 6.

하마구치 류스케의 말



"자기와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과 만나, 자신의 가치관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체험, 전 그 가혹한 체험이야말로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가치관이 서로 부딪치고, 상처를 입힙니다. 그것이 퇴행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이 상처와 균열은 또 다른 가치관으로 이어지는 입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 하마구치 류스케





2021. 2. 21.

두 아기, 시와 무무


1. 출산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밖을 향해 밀어내는 아기 힘 자국이 이제는 육안으로 보인다.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아내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출산의 불안 또한 비교할 수 없을 무게로 아내 편이 더 감당해 내고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나는 고작 약간 분의 역할만 하고서는 이런저런 말을 붙여 저 불균형을 무마하려 해왔던 것 같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2. 무무가 슬개골 탈구 판정을 받았다. 일하던 중 아내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아내는 수의사가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동안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곧 눈물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그 반면,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아니 도대체 왜?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산책도 무리하게 시키지 않았고, 줄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음식을 주었고, 미끄러질세라 거실에 카펫도 깔아주었는데 왜 탈구가 온 거야? 

3. 아내는 가슴으로 먼저 받아들였고, 나는 머리로 먼저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에도.

4. 우선은 무무에게 수술을 가하지 않기로 했다. 장삿속을 최대한 덜어내고 오직 강아지의 의학적 상태만 살펴 재활 또는 수술을 권한다-고 세간에 평이 난-는 병원을 아내가 어디서 알아냈다. 6월 중순에나 진료를 볼 수 있는 병원이라고 한다. 그전까지는 무리되지 않는 산책, 생활습관 개선-가령 두발로 일어서기 금지 등-으로 재활과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2021. 2. 20.

정용준의 일기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 둘을 분별할 지혜를 주소서


모든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시되 

어떤 중독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 정용준(소설가), 문예잡지 Axt 34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