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물건 편)



되도록 많은 것을 버리고 비워내되 
꼭 남겨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내 자신이란 기껏 조각처럼 어떤 지향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고,
더 큰 것은,
그러니까 저 물질과 정신성의 세계에서
누군가 힘으로 쟁취할 수 있는
더 크고 넓은 것은,
아래의 흔적들로 대신 전해주고 싶단 생각을 했다.

 


레이먼드 카버

윌리엄 포크너

폴 오스터

커트 보니것

트루먼 카포티

존 치버

앨리스 먼로

김훈

옌롄커

이언 매큐언

얀 마텔

밀란 쿤데라

이승우

모옌

무라카미 하루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페데리코 펠리니

클린트 이스트우드

다르덴 형제

H.V.카라얀

미야자키 하야오

허우 샤오시엔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콜세지

지나 롤렌즈, 존 카사베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아녜스 바르다

로저 페더러

마이클 조던

리오넬 메시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손흥민

손흥민


2022. 4. 7.

온 식구 코로나 확진

아이까지 온 식구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
 






 

2022. 4. 4.

2022 시즌 마킹

2022 시즌 마킹은
이종성과 오현규로






2022. 3. 31.

시와 첫돌

2022.3.31. 
시와 첫돌











2022. 3. 26.

건선증

레이먼드 카버 시집 번역본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기쁨에, 시를 한편 적어보았다.





건선증
                                                                                     

처음에 그는 그것이 그저 각질인 줄로 알았다
두툼하게 떨어지고
부분에서 부분으로
그러다 부분이라 할 수 없는 너비로 번져가는
피부들을 떼어내며 그는 그곳에 나쁜 생물이 살고 있다고 확신했다
더 이상 손 대기를 멈추고
이 나쁜 생물을 처치해야 했다 그것이 그의 할 일이었다
그는 갑자기
아주 정돈된 삶이 살고 싶어졌다
순서와 절차가 있고
이행과 불이행의 단순한 판정만이 존재하는 멸균의 세계
그는 그의 몸에 기거하는 나쁜 생물들을 그려보며
전류가 흐르는 듯했지만 그 생물이 몸 안에 기거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 하진 않았다
똑바로 보려고 했다
똑바로 보고
똑바로 죽이겠노라고
다짐했다

2021. 12. 16.

2021. 10. 5.

인생픽션 2021

이 일 또한 5년에 한번씩 행해볼까 한다.
(인생영화시리즈처럼)











2021. 10. 2.

레이먼드 카버의 말



대담자:
당신은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얼마큼이나 바라고 계십니까? 당신의 이야기들이 누군가를 변화시킬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카버: 
(상략) 
좋은 픽션은 부분적으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소식을 전달해주는 일종의 매개체와 같으며,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픽션을 통해서 사태를 변화시킨다는 것, 고래나 삼나무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 등은 다 부질없는 소리입니다. 만약 당신이 의미하는 변화가 이런 것들이라면,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나는 픽션이 반드시 이러한 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어야만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픽션은 단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즐거움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 자체로서 아름다운 것이지요. 무언가를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영속적이면서 지속적인 어떤 다른 종류의 즐거움들. 이러한 불꽃들을, 비록 희미하다 할지라도 지속적이고 견실한 이 모든 광채들을 진정 예술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2021. 8. 16.

이수경, 구지윤, 프랑수아 트뤼포


1. 모처럼 외출을 했다. 

2. 아트선재센터서 이수경의 <달빛왕관>을 보았고, 이어 아라리오 갤러리서 구지윤의 <혀와 손톱>을 보았다. 이수경과 구지윤 모두 중진작가로서 제법 업계에 이름이 나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이들의 전시를 처음 보았다. 다소 거칠지만, 두 전시를 '흘러내리는 신체에 관한 작업'이란 한 줄로 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3. 이수경의 <달빛왕관>은 외견상 화려하고 과시적인 설치작업들로 구성된 것 같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오브제의 면면은 모두 분절 난 여성 신체 조각들이다. 그 충돌감이 이상한 감흥으로 이끈다. 3층에 이어지는 영상작업을 통해 이수경의 지향을 감히 가늠해볼 수 있었다. 선명한 메시지를 부러 피하려 한 듯하나, 분명한 사회적 운동성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넘칠듯한 긴장과 균형감에 탄복하고 말았다.  

4. 구지윤의 <혀와 손톱>은 캔버스에 유화작업으로만 구성되었다. 2호 사이즈부터 300호(는 족히 되어 보이는 대형) 사이즈까지 다양한 크기의 작업들이 있었다. 형태를 뭉개는 추상회화의 전형들이었고, 전시 제목과 같이 신체기관 및 분비물을 연상케 하는 색채와 형상의 사용이 있었다. 굉장히 대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수경에게서 느꼈던 긴장감과 같은 것을 얻지는 못했다. 

5. 전시를 보고, 에무시네마에서 프랑수아 트뤼포 <400번의 구타>를 DCP로 보았다. 꼬박 한 두 해마다 한 번씩 트는 영화인데, 절반은 영화에 사용된 음악 때문이고 다른 절반은 앙뜨완 드와넬의 얼굴 때문이다. 에무시네마를 나오면서 이 영화를 스크린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임을 알아챘다. 앙뜨완 드와넬이 발자크를 흠모해 방구석 한켠서 작은 제의를 갖는 장면을 언제나 사랑스러워하는데, 커튼 조각에 옮겨 붙었던 불이 그렇게 컸다는 걸(그래서 하마터면 영화고 뭐고 다 타 죽을 뻔했다는 걸) 이전 감상에서는 이리 실감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