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30.

2019. 8. 30.

2019. 8. 21.

얼굴들



1.
퍼붓는 비를 뚫고 전곡항에 다녀왔다.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 갈치조림과 칼국수를 시켰다. 전국해양스포츠제전이 이곳에서 치러지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우리 테이블 주변의 온통 시커멓고 우람한 청년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요트, 수중철인3종경기 등등의 선수들인가 보았다. 나는 내 식탁에 집중하지 못하고 저들의 명료한 수저질과, 저작운동을 자꾸 흘깃거렸다. 다 비운 밥그릇 옆에 척 소리를 내며 저분을 내려놓고는 군더더기 없이 자리를 일어서는 일련의 동작을, 그냥 바라보았다. 저 단순함, 분명함들이 어쩐지 멋지다고 생각했다.  

2.
돌아오는 길에 이케아 광명에 들렀다. 정말 많은 차들, 우글거리는 인파에 아연실색했다. 이미 여러차례 경고를 들었고, 나도 저 인파를 하나 가중하는 존재지만, 이건 실로 괴이한 풍경이라 하지 않기가 어려웠다. 픽사 애니메이션 같다고 생각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계산대로 내려오는 길에 한 가족을 보았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남자가 두살배기 딸에게 역정을 내고 있었다. 한두마디면 그치겠지 했는데, 이 미친 작자는 그것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아이와 엄마의 표정이 나를 두렵게 했는데, 그건 그들이 무표정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의 저 지랄발작은요, 엄마와 나에겐 음, 지나가는 구름이나, 흔들리는 나뭇가지 같은 거 같은 거예요. 저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3.
일상에 복귀해서도 두 여자의 얼굴이 떠나질 않았다. 저들은 얼마나 오래 참아온 걸까. 앞으로 얼마나 더 참아낼 수 있을까. 그 가족은 그날 이케아에서 스쳐지나갔고, 나는 그 가정사에 개입할 까닭도, 명분도, 의지도 없었다. 다만 이 떠나지 않는 얼굴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이 이야기를 미술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선생님은 조용히 다 듣고는 그걸 그림으로 그려보는게 어때요,라고 말씀하셨다.

4.
그 얼굴을 그릴 수는 없었고, 그 얼굴이 남긴 느낌을 그렸다. 이 일을 하고 나니, 맘이 조금은 가라 앉는 듯했다.



2019. 7. 30.

2019. 6. 17.

곰브리치의 글



  우리가 "미술작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어떤 신비스러운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물체라는 사실이다. 그림이 액자에 끼워져서 벽에 걸리면 우리들로부터 멀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박물관에서는 으레 전시된 작품을 만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원래 손으로 만지고 다듬어서 완성된 것이며, 거래의 대상이 되고 논쟁과 물의를 일으킨 대상이었다. 즉 화가는 그 특징들을 곰곰히 생각해보고 그것들을 여러번 고쳤을 것이며, 저 나무를 배경에 남겨둘지 아니면 다시 그릴지 여러 번 생각해 보았을지도 모르고, 우연히 그은 붓획이 햇빛을 받은 구름에 예기치 않은 생동감을 주는 것을 보고 흡족해 하였거나, 또는 고객의 성화에 못이겨 어떤 인물을 더 그려 넣었을지도 모른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벽에 가지런히 걸려 있는 그림과 조각작품들은 원래 미술품으로서 진열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미술가가 작품을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그 작품을 만드는 명확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중에서





2019. 6. 7.

십주년


유만선년십주년
2009 - 2019






2019. 6. 3.

아사코



불이 켜졌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진행자, 대담자가 들어왔다. [아사코]는 두 번째 감상이다. 올해 가장 이상했던 영화. 아직 반 년이 남았지만, 분명 그리 되리라는 확신으로 이끌린 영화다. 비밀을 풀고자 하는 마음으로 감독과의 대화를 예매했다. 그러나 한 번 더 보고 나자, 구태여 그 비밀을 풀려 들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였을까. [아사코]는 매우 사실적인 톤으로 찍혔으면서도, 매우 느닷없고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제시하고 상황을 풀어간다. 바쿠와 아사코가 처음 사랑을 이루는 장면부터 그렇다.(어떻게 저렇게 연애를 시작할 수 있지?) 쿠시하시는 남의 집에 초대받아 잘 얻어먹고서도 느닷없이 마야의 연기가 제대로 형편없다며 호통을 친다.(그리고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빈다. 뭐지?) 마치 거기에서 만날 것이 불가피했던 운명처럼 (억지스레) 아사코와 하루요는 재회한다. 영문도 없이 사라졌던 바쿠는 흡사 유령처럼 (평온한 얼굴로) 아사코 앞에 다시 나타나고, 아사코는 그런 바쿠의 손목을 붙잡고 뭐에 홀린 듯 료헤이와 친구들의 곁을 도망쳐 나온다. 이 모든 비현실성과 비개연성들. 그러나 여기엔 이상한 리듬이 있다. 그것이 만드는 기묘하고 나른한 감각에 점차 설득 당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차라리 이 영화 전체를 ‘관계의 불안’, ‘일상성의 불안’에 관한 하나의 거대한 상징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는 생각에 이끌리는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모티프의 삽입이 (조심스러운 말이나)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문명사적 비극을 이용하려는 얄팍함이 없이, 그 불안의 체험을 관객과 함께 나누려는 조용한 야심이 여기엔 깃들어 있다. 하마구치가 앞서 도호쿠 3부작 다큐를 찍을 때, 재난 지역의 주민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 모든 것이 한바탕 꿈만 같고, 환상 같다”는 것이었다. 그 시간, 도호쿠는 집이 부서지고, 전기가 끊기고, 가족이 죽고, 하수구가 역류하고, 논밭은 헝클어지고, 곳곳에 썩은내가 진동하고, 여기저기서 그치지 않는 울음이 이어졌다. 한복판에 놓였던 피해자들은 그 모든 비극을 다름아닌 ‘육체’로 겪어낸 사람들일 것이었다. 더 없이 실제의 감각으로 그 모든 비극을 통과했던 주민들이, 그러나 결국 전한 말은 그 시간이 '꿈' 같았다는 것, 한바탕 '환상' 같았다는 것이었다. [아사코]를 보는 동안 나는 저 관계의 불안, 일상의 불안에 나란히 동석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이 [아사코]가 택한 이상한 방식 때문에 더 짙어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경력의 상당 부분을 '다큐멘터리'로 채워온 하마구치 류스케에게, 나는 [아사코] 같은 '환상성의 영화'를 찍어냈을 때에도 그가 굳건히 견지했을 중심의 태도에 관해 질문하고 싶었다. 그러나 행사의 시간은 짧았고 결국 나는 묻지 못했다.  





2019. 5. 30.

기생충



그 모든 일들이 지나간 후, 장남 기우가 아버지 기택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는 내레이션 장면이 참 좋았다.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성공하겠다. (악착같이) 돈을 벌고, 어떻게든 이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어코 살아남고야 말겠다. 부자가 되겠다. 그리하여 그 집을 얻고, 당신과 만나겠다.' 우리 시대 청년들은, 80년대처럼 짱돌을 들 수도 없고, 공통의 목적의식으로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연대하기도 힘들다. 자칫 미끄러져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을, 상당한 불안을, 거의 태어남과 동시에 학습받고 체화하면서 성장해왔으니까. 혹자는 너희들 패기가 왜 없느냐, 이제까지 세상을 바꾼 건 언제나 젊은이들이었는데, 너희들은 왜 개인의 분노로만 수렴되거나, 아니면 그것도 못해 자학에 빠지고, 자기연민에 빠지고, 신경증이나 걸리고 앉았느냐, 라고 힐난한다. 알기는 알까.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아니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이들이 의탁케되는 길은 끝내 제도권 경쟁이라는 사실을. 공무원 시험이나 대기업 공채, 수많은 시험들 시험들 시험들. 아니라면, 그것도 아니라면, 제도권 밖의 다른 방도를 통과해 '한탕'을 노리는 수밖에. 비트코인 광풍. 집단 최면의 풍경들. 하여간, 어찌되었든, 그저 '평범한 삶'을 위하여, 생 전체를 송두리째 내던져야 하는 일들이 이들에게는 전혀 심심치 않고, 전혀 과장인 일이 아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구정물에 침수될 뿐인 집. 그런 삶. 그 '엄정한 냉혹'의 세상을 견뎌야하는 청년의 얼굴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최우식의 얼굴로 닫힌다. 그것이 너무나 좋았다. 좋았고, 서글펐다.





2019. 5. 20.

에이프릴의 딸



시사회장을 나서는 사람들의 투는 하나같았다. 허탈한 웃음.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아내와 나도 그랬다.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저마다 말들을 이어갔다. 엘리베이터를 두 차례 그냥 흘려보냈다.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질문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을 무게로 아내가 말했다. 저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나. 나도 알 수 없었기에 아무 대답도 못했다. 며칠이 흘렀다. 이해해줄 필요가 있을까. 이제사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메커니즘으로 저 욕망과 광기가 발현되고 추동되어왔는지, 구태여 헤집을 필요가 있을까. 이해를 구하는 일은 판정을 내리기 위함일 터다. 수용이 가능한지 불가한지 여부를 어서 선 그어내고, 정리해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속히 내 안에 안정이 마련되므로. 그러나 그 일이 내게는 필요치 않은 일임을, 불가한 일임을 알아챘다. 저 삶을 그저 응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저런 광기와 욕망이란 게 있다.’ 정도로. 그런 정도로의 응시. 그 광기와 욕망은, 정도와 내용을 달리한 채 내 안에도 도사리는 것일지 모를 것이었다.





2019.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