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17.

허우 샤오시엔, 그와 15년의 시간들


1. 허우 샤오시엔 감독님과의 만남 15주년을 기념하여 감독님께 그림 선물을 보내드리려 한다. 

2. 2005년부터 2020년까지의 시간들.














 





2019. 12. 14.

성수동




1. 아내와 성수동 카페골목을 걸었다. 겨울치고는 푹한 날씨였고, 미세먼지도 거의 없는 날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오감을 볼 수 있었다. 벽난로가 있는 한 카페에 앉았고, 아내는 일기를 쓰며, 나는 드로잉을 하며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그러나 온전한 시간을 갖기가 불가능했다. 각기 커플인 두 남자와 두 여자가 옆 테이블에 앉았는데 성량도 성량이지만, 대화의 주제 - 돈, 부동산, 학군, 승진, 근무지, 발령 등등 - 가 어지러이 날아다니며 쉴새없이 정신을 교란시켰다. 자리를 옮길 수도 있었지만, (18시에 문을 닫는) 임흥순 전시를 보러 어차피 곧 나가야 했기에 그것까진 아무래도 귀찮은 일이었다. 

2.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공무원이라는 사회 경제적 지위, 그것에서 나오는 물적 정서적 안정감에 솔직히 나는 감사를 느끼며 사는 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거대한 패배감을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것은 이젠 내가 전업예술가(를 줄곧 꿈꾸었으나)가 될 수 없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자기 창조성이 메마른 사람들 틈 사이에 살아가야 하며, 그들과 유사한 생활방식, 사고방식을 조금씩 조금씩 체화해가며 살아가야 하는 내 자신에 대한 가여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나도 저 옆 테이블의 저 커플들처럼 학군이나 부동산 따위의 이야기들로 내 삶의 서사를 대신하고 마는 한심한 부류의 인간이, 늦든 빠르든 되고야 말지 않겠냐는 불안이 찾아드는 것이다.

3. 그러나 이건 공정한 대가이다. 전업 작가의 삶을 살아낼 용기가 내게 없음을 나는 결국  받아들였지 않나.(재능은 둘째고.) 그 불확실성, 그 모험, 그 담대함, 도저한 수렁, 자기혐오, 그러나 다시 일어서기, 살아내기, 버티기, 그리다 또 하나 해내기, 작지만 하나씩 해나가기, 저 지난한 불확실성의 연쇄가 언제까지고 이어질지 모르는 그 삶을, 나는 살아낼 용기가 없었다. 그 아슬한 생활의 가운데서 끝없이 도저한 자기 탐구를 이뤄내고, 세계를 스스로의 몸으로 해석해내고, 그리하여 결국 자신과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빚어내고야마는, 그야말로 '작가정신'이라고밖에 달리 부를 길이 없는 저 험난한 노정에 감히 나는 발담그지 못할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4. 그 사실을 생각하니(이미 수없이 생각한 바지만서도) 서글퍼졌다.

5. 그 서글픔을 안고 서울숲 역 인근의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임흥순의 <고스트 가이드>를 보았다.

6. 임흥순의 관심과 에너지의 방향이 한결같음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한 점 한 점 찬찬히 들여보았다.










2019. 12. 13.

2019. 12. 9.

[사이키델릭 네이처] 짧은 소감



1. 지난 일요일 오후 두 시, 통의동 보안여관 지하에서 열린 <사이키델릭 네이처 Psychedelic Nature> 아티스트&큐레이터 토크에 다녀왔다.

2. 작업들을 보지 못한 상태로 대담장에 입장했다. 

3. 니콜라스 펠처, 류성실, 양승원, 정희민, 최하늘, 그룹 '업체' 그룹 전이었지만, 패널로 참석한 이는 류성실, 양승원 작가, 송고은 큐레이터뿐이었다.

4. 작업만 관람하고 이 대담을 듣지 않았다면, 아 참 조악하고 조악하구나, 하며 돌아섰을지도 모를 일이었다.(보안여관 구관이라는 공간의 정서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5. 오늘날 자연을 감각하는 우리의 방식은 소비적이거나 일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하기 어렵다. 미디어를 통해 간접의 형태로 이뤄지거니와, 직접 만나는 경우에도 '상품의 구매'라는 틀을 거친 경우가 상당하다. 거기서 생산되는 감정은 '아름답다', '멋지다', '경탄스럽다'이거나 혹은 반대로, '매섭다', '혹독하다', 잔혹하다' 정도일 것이다. 응당 그 감정은 소중한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억압에 맞서는 '염려'와 '저항' 또한 아주 귀한 것이다.

6. 하지만 부족하다. 일차원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소비자로서의 자족에 머물지 않고, 미디어의 이미지에 즉자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더 다각의 통로로, 더 개별적이면서, 더 깊이 들어간 '자연과의 만남'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사이키델릭 네이처 Psychedelic Nature>는 이 질문에 대한 여섯 개의 응답이었고, 솔직히 말한다면, 전시의 결과물들보다 내 마음을 더 움직인 것은 이 기획 자체였다. 이 기획 자체를 하나의 퍼포먼스이자, 퍽 의미있는 작업으로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9. 12. 8.

오늘자 이유만


촬영은 정선년






2019. 12. 7.

아날리아 사반, 김유정, 요한한, 김희천 유람. 그리고


1. 머리를 자르고 집으로 돌아와 사진기를 챙겨서 종각역엘 갔다. 하늘엔 박근혜 석방을 기원하는 헬륨공과 현수막이 날고 있었다. 어느 목사님의 열변이, 거대한 앰프의 힘을 빌려 육중히, 또한 되도록 멀리 붉은 피처럼 쏟아지고 있었고, 집회 참가자들은 카니발의  참가자들처럼 들뜨고 광기어린 표정을 교환하며 문재인 타도, 박근혜 석방을 외치고 있었다. 뭔가 살아 꿈틀대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에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다. 정치의 편을 떠나 이 에너지는 과연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인간 존재의 (초월적 힘에 대한) 거대한 항변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신화적인 풍경이었다.

2. 아라리오 갤러리, 갤러리 조선, 아트선재센터 순으로 돌며 네 개의 전시를 관람하였다.

3. 김희천의 <탱크>에 완전히 사로 잡히고 말았다. 들어서기 전까진, 영상 설치 작업 한 점이 전부인데, 입장료 5천원을 받길래, 얼마나 대단한 놈이고 작업인지 한 번 보자는 심산이었다.

4. 가장 좋은 예술이란 가장 면밀히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을 응시함과 동시에, 가장 긴밀히 그가 살아 숨쉬(어야만 하)는 이 세계와 조응-관계맺기를 하고 있는 예술이다, 라는 명제를 다시한 번 깊이 곱씹어 보도록 이끄는 작업이었다.

5. 아라리오에서는 아날리아 사반의 <입자이론>이 전시되고 있었고, 갤러리 조선에서는 김유정의 <교차들의 비>와 요한한의 <공명동작>이 전시되고 있었다.

6. 전시장 입구에 비치된 작가의 말 내지 비평가 글을 관람 전후로 꼼꼼히 읽어보았고, 전시를 집중하여 들여보았고, 관람 후에도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이 내게 있었다. 

7. 그러나 김희천의 <탱크>에서 받은 감흥에 비한다면, 앞선 세 개의 전시는 그냥 (미안하지만) 갖다버려도 아무 상관이 없을 그런 감흥이었다.

8. 김희천에 관해서는 선생님과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9. 집에 돌아와 아까 낮에 신나게 먹(고 제껴둔)은 계란북엇국, 깻순 나물, (홈플러스) 양념닭갈비의 잔여물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핑크 플로이드를 들으며 타이완 맥주를 한캔 들이켜고 있으며, 현재 기분은, 좋은 편이다. 


















2019. 12. 2.

'온주길 프로젝트' 중 사진, 영상 작업


1. 2015년 시작하여 현재까지 진행중인(실은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온주길 프로젝트' 중 사진, 영상 작업.

2. '온주길 프로젝트'는 '죽은 집이 말을 한다'는 인상, 감정,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였음. 


3. 영상 작업포맷 : <온주길>, 스테레오 영상, 단채널, 약24분, 2015













2019. 12. 1.

강지윤 [얼음의 언저리를 걷는 연습] 개인전



1. 수업을 마치고 빗길을 걸어 상수동 '탈영역 우정국' 갤러리를 찾았다. 강지윤의 <얼음의 언저리를 걷는 연습> 개인전이 진행 중이었다. 설치 네 점, 영상 두 점, 드로잉 다섯 점이 전시되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고,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한 점 한 점 찬찬히 작품들을 들여볼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몇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잠깐 멍을 때리기도 하면서, 그 고요와 풍요의 시간을 만끽했다.








2. 탈영역 우정국에서 광흥창 역으로 빠져나오는 골목을 지나다 잠시 휴대폰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섰는데, (전시는 아니지만) 전시 같은 풍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실내 골프 연습장이었고, 지하에 위치한 것이었는데, 내려가는 계단 참마다 (낡은 골프를 주제로 한) 누군가의 설치 혹은 사진 작업, 벽화 작업이래도 좋을 만한 것들이 있었다. 재밌어서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