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22.

섭은낭 칸 프리미어 상영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섭은낭]이 칸에서 상영되었다. 트위터에 속속 단평들이 올라오고 있다. 호평이 우세하다. 얼마나 기다려왔나. 처음 이 기획을 들은 지가 십년이 넘었다. 올해 부산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슴이 설렌다. 장철, 호금전의 무협과 또 다른, 아주 시적이고 우아한 무협이 탄생했을거라 기대한다. 라이브로 포토콜과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밝고 자신에 찬 표정들이 보기 좋다. 어서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덧붙임.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 영화의 대사는 다 해서 스무 개 밖에 되지 않는단다. 또한 흑백의 1:1.33 화면비로 시작해 점차 컬러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로 확장해 나간단다. 몇 차례 암전과 묵음으로 장면을 잇고 감정의 추이를 따른단다. 이 70세 감독의 실험은 어디까지인가. 서사의 정형을 그리기보다 마음의 작은 진폭을 담는데 더 깊은 관심을 가져온 거장의 새로운 세계가 정말 그립다.




2015. 5. 20.

여자친구


  보름 전 여자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벼운 것이었고 그래서 우선 감사해했다. 병실에서 그녀는 곧잘 웃었다. 밥도 씩씩하게 잘 먹었다. 산책도 매일 했다. 어느새 마음을 내려놓고 함께 재잘댔다. 언제나처럼 같아서 그곳이 병원이었음을 까먹은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독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중이다. 퇴원한 지 나흘째 극심한 두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다시 입원을 시켜야 할까.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짐짓 그 쾌활함이 얼마간 나와 가족들을 배려한 가장됨이었음을.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온 몸이 부어 링겔을 꽂고 있으면서도 구성안을 넘겨야 한다며 밤을 새는 사람이다. 충분히 가져왔는데도 내가 갈아입을 속옷을 몰래 장바구니에 넣는 사람이다. 책임감 많고 사려 깊은 사람. 그러면서도 꼬인 데 없이 맑은 사람.

  충분한 휴식 뒤에도 통증이 계속되니 한없이 마음이 무겁다. 재입원을 권유하지만 순순히 받아 들지 않는다. 무엇이 그녀에게 최선일까.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차라리 그 편이 좋겠다.

2015. 5. 13.

계속해보겠습니다


  살아보니까 (헐.. 꼰대스러움?) 사람은 결국 저마다의 방식으로 ‘견디며'들 살아가는 것 같다. 끊임없이 상처 주고, 또 입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여하간 삶이 지속되고 있는 건 나름의 기제들이 각자 그런대로 버텨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 이를테면 당신에겐 종교가, 나에게는 음악이, 또 누군가에겐 여성/남성 편력이, 그도 아니면 술이, 약이, 맛있는 음식이, 여행이, 쇼핑이, 권력욕이, 창작열이, 정의감이, 부채감이, 일상의 소소함들이…등등등. 대부분이 공허하나 스치듯 반짝이는 충만의 시간이 있으므로, 어떻게든 살아들 가는 게 아닌가 한다. (오 세상에 저는 너무나 행복해서 그런 생각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데요,라고 하신다면, 뭐 죄송합니다ㅜ) 나도 그 순간들이 있어 산다.

  결국 존재감이 문제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이 한 생을 투쟁하며 사는 것이다. 세상에 오롯이 내 존재 하나 바로 설 수 있다면, 그만큼의 영토만 허락될 수 있다면 우리의 고통은 이처럼까진 아닐 것이다. 사정이 물론 모두 같지는 않다. 지구 저 편에는 미음을 삼킬 힘도 없어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또 어디엔가는 끊이지 않는 포격과 총성으로 피눈물을 삼켜야 하는 이들이 있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까지 참혹하지 않다고 해서, 그게 그 즉시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 행복으로 직행해야 하는 당위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어른들은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과 가난은 우리가 다 겪어냈으니 너희들은 마음껏 번영의 세상을 살라고, 그러지 못하는 자들은 문제가 있는 거라고 말한다. 당신들의 노고에는 감사를 드린다. 하지만 각자의 삶에는 저마다의 장소와 시간이 고이게 마련이다. 그것이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서로 다른 모양의 짐을 짊어 지운다.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수고를 하며 살고 있고, 따라서 함부로 말해질 수 없다. 모든 인간이 결국은 안타깝고, 처연하게 아름답다.

  황정은 작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좋아한다. 특히 이 문장,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며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한편 생각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다시 읽어도 마음이 동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아무 의미가 없는 텅 빈 기표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며, 맛있는 것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며, 이따금 싸우기도 하며, 화도 내며. 이 모든 풍경들을 떠올리면 문득 그 자체로 벅차 오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이 한마디 작은 읊조림은 그러니까 얼마나 숭고한 건가. (2015)

2015. 5. 2.

산책. 2015년 봄. 폴 매카트니


산책. 2015년 봄. 폴 매카트니




  







2015. 5. 1.

산책. 2015년 봄


 2015년 봄











2015. 4. 26.

유감


네팔에선 이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는데,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아플지 헤아릴 수도 없다는데, 나는 오늘 거리의 꽃을 보았고, 여자친구의 자전거를 닦아 주었고, 불고기 버거를 맛있게 먹었고, 종로에서 필름 몇 롤을 샀고, 모리스 피알라의 영화를 보고 흠뻑 취한 기분으로 걸어 나왔다.

2015. 4. 19.

1주기


2015년 봄





2015. 4. 12.

5 년의 고독




  그날도 소동이 있었다. 아버지 품엔 작은 고양이가 있었다. 길냥이 임이 분명해 보였다. 어머니는 기함을 하며 말했다.
  ”당장 내보내세요. 아님 함께 나가시든가”
  아버지는 물러서지 않았다. 엄마에겐 막아낼 힘이 없었다. 최선의 저항은 그저 ’이혼 불사’를 연신 외치는 것 뿐. 나는 돌아서서 무심한 방문을 닫았다. 그러든가 말든가. 내 삶의 짐 하나도 버거운 때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극렬한 애정과 반대 속에, 그리고 무관심 속에, 녀석은 용케도 5년이란 세월을 견뎌냈다. 그 시간은 어쩔 수 없게도 녀석을 향한 우리 각자의 마음에 변화를 가져왔다. 일정한 시간을 통과하며 살아남은 모든 것은 그것으로 이미 얼마간 아름다운 향이 된다. 이제 녀석에게서도 향기가 난다.

  얼마 전엔 녀석이 내 발 사이로 들어왔다. 이리저리 뒹굴며 몸을 부비다 숫제 스르르 잠에 들기까지 했다. 너는 어쩔 수 없는 길냥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친해질 수 없는 거라고, 그런 주제에 감히 방 한 칸을 떡하니 차지하다니 너 참 파렴치하다고. 그렇게 냉담해했던 지난 시간들을, 그 장면은 떠오르게 했다. (2014)

2015. 4. 11.

산책. 2015년 봄


2015년 봄










2015. 4. 1.

엄마


영원한 숙제이자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 엄마에 관한 다큐를 찍기로 했다. 저 구석장에서 10년은 넘게 방치해 둔 캠코더를 꺼냈다. 중1 때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온 집안을 들었다 놨다 하다시피해서 산 캠코더다. 먼지를 불어내고 면봉솜으로 약을 발라 구석구석 닦아내니, 작동이 된다. VDSLR이다 뭐다 영상 찍을 수 있는 장비들이야 요즘 많다.(하다못해 스마트폰 카메라도 엄청난 퀄리티.) 하지만 이 다큐는 이 카메라로 찍어야 할 것만 같다. 그냥, 왠지. DV테잎 한 박스를 주문했다. 언제까지 찍게 될 지 알 수 없다. 수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긴 시간을 담고 싶다. 가와세 나오미나 왕빙 처럼 어떤 소명으로 찍는 것은 아니다. 그저 엄마를 더 잘 알고 싶다. 지나온 삶에 대해,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

2015. 3. 29.

산책. 2015년 봄


안녕, 낙원아트시네마
2015년 봄



















2015. 3. 27.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는 말을 나는 아직도 믿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성주의자이자 환경운동가인 페트라 켈리의 말이다. 나는 저 말을 20대 중반에 들었다. 몸담던 사회운동 단체에서 한 선배가 전해준 말이다. 이후 늘 맘에 품고 살았다. 누군가는 이론과 제도를 정교히 생산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힘을 얻으려 싸우고 끝내 얻어내 세상에 뜻을 펼쳐야 할 것이다. 그렇게 공적 영역이 중심이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조차 출발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타인도 이해할 수 없고 자연과 세상에도 결코 다다를 수 없다. 내가 제일 두려워 하는 사람은 자기 생활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정치인이든 학자든 생활인이든 예술가든 블로거든 그 누구건. 가령 헤겔, 아도르노, 벤야민은 그렇게 줄줄 읊을 줄 알면서(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놀랍도록 무지한 사람들. 박근혜가 어떻고 유신이 어떻고 가자지구 폭격이 어떻고에는 열변이면서 정작 자기 반경 내 폭력엔 깜깜한 사람들. 그런 이들에 신뢰를 놓은지 오래됐다. 오로지 자기 삶에서 길어올린 말들만을 믿는다. 자기에 대한 이해만큼이 세상에 대한 이해만큼임을 나는 굳게 믿는다. 비평도 역시. 반부르주아적 카메라가 어떻고, 아도르노적 편집이 어떻고 하는 말들이 도무지 무슨 외계어들이란 말인가. 그건 자기 존재감 때문이라 볼 수 밖에 없는데, 그렇게 벌충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가장 쉽고 가장 간결하게, 자기 자신을 느릿이 돌아보는 일에서 출발하면 된다. 가장 공적이고 가장 논쟁적인 것들은 이미 내 삶 속에 모두 들어와 있다.

2015. 3. 15.

산책. 2005년 봄


문학과 사상 조원들과
2005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