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22.

산책. 2015년 가을


산책. 2015년 가을











2015. 9. 6.

기적


한 손엔 채집통을 들고 어깨엔 잠자리채를 걸친 채 설렌 발걸음을 걷는 소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나무 작대기 하나씩을 나눠 들고 힘껏 카페트 먼지를 털어내며 깔깔 거리는 한 가족을 보았다. 서로의 입에 방울 토마토를 넣어주고 볼록해진 볼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장난치는 남매를 보았다. 공사장 한켠에서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며 담배에 불을 붙이는 일꾼들을 보았다. 그들 중 한사람 어깨의 문신이 맘에 들었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이젠 제법 가벼워진 바람을 맞으며 지나가는 연인들, 가족들, 혼자들을 바라봤다. 저마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쳇 베이커의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문승욱의 [망대]라는 영화를 보았다. 신비롭고 슬프고 아름다웠다. 삶은 기적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했다.

2015. 9. 5.

같이 늙어가자


장마철이면 책과 사진들이 쭈글해지는 게 맘에 걸리곤 했었는데(정작 볼 땐 험하게 다루면서!), 올해도 제습기 구입의 망설임을 잘 떠나 보냈다.😉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가을, 겨울엔 다시 펴지니까 여름엔 좀 쭈글해져도 괜찮겠지. 흔적이야 남겠지만 나도 나이 먹으며 변해가는데 아끼는 물건들이라고 언제나 그 모양일 필요는 없지 않겠나. 되려 그게 이상할 것 같다. 같이 늙어가자.💤

2015 대만 여행.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10주년 및 자객 섭은낭 대만 개봉 기념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10주년 및
자객 섭은낭 대만 개봉 기념

2015년 여름







































2015. 9. 4.

차이밍량, 아피찻퐁




1. 저리들 시원하게 한 번 밀어보고 싶다. 태어나 한 번도 저 길이여 본 적이 없다. 군에서 마저도.

2. 저기가 차이밍량이 운영한다는 그 카페인가?

3. 어젯밤엔 [징후와 세기]를 다시 보았다. 여전히 안개같다. 병원 한공간을 자욱이 채우던 그 안개. 겨우 진공관으로 빨려 나가던 안개. 짧지만 강렬한 질식감을 주던 그 안개.

4. 아피찻퐁에게 정글만큼 중요한 공간은 병원인 듯싶다. 그의 인물들은 늘 어딘가 아프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그 둘 모두가 아프거나.

5. 차이밍량과 아피찻퐁은 ‘마술적 리얼리즘'을 공유하지 않나 싶다. 마르케스 문학과는 다른 의미에서. 그들은 매우 사실적으로 인물과 로케와 사물을 그린다. 그런데 결국엔 원시성과 환상성으로 퍼져 나가고 만다. 아피찻퐁이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노는 방식은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르게 한다. 보는 이가 오인하도록 유도한 다음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방향을 확 틀어버린다. 차이밍량은 그의 인물들을 자꾸만 사람이기보다 유령처럼 그리려 한다. 밥을 먹게하고 눈물을 흘리게하고 섹스를 하게 하고 잠을 재우는데도. 그 기이함을 도무지 모르겠다.

6. 어릴적 할머니 손을 붙잡고 동굴로 들어가는 배를 탔던 기억이 난다. 그 어두컴컴한 속에서 조잡한 인형들이 야한 빛을 받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모형 동물들은 녹음된 울음소리를 기묘히 울어댔다. 호랑이의 눈에서 빛이 새나오는 것만 같았다. 밤에 홀로 숲길을 산책할 때면 그때 그 기억으로 붙들려 간다. 아피찻퐁의 정글을 볼 때도 어김없이 그런다.

7. 검열을 피해 더는 태국에서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아피찻퐁은 선언했다. 남미로 갈거라고. 안타까우면서도 한편 다른 차원으로의 도약이 기대된다. 그의 앞날에 행운을 빈다.

2015. 9. 2.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4


1.
  그녀의 이름은 수잔. 스팟에서 영화 교육과 각종 부대행사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다. 올해로 벌써 12년 째. 그녀는 친절히도 그간 내 일을 돌봐주었다. (여름 방학과 가을 학기 개강 준비 탓에) 눈코 뜰새없이 바쁠 것임에도. 너무 감사했다. 타이페이에 이른 뒤 그녀부터 방문했다. 파리바게트 엿 상자를 선물로 건넸다, ‘코리안 트레디셔널 캔디’라 이름을 꾸몄다.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였다. 고마운 사람은 나였다. 민망했다. [섭은낭] 첫 상영이 시작될 참이었다. 티켓을 받아들고 극장에 들어섰다. 100명 남짓 수용 가능한 공간이었다. 자리를 찾아 앉고 눈을 감았다.얼마나 기다려왔나.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녀였다. 좌석까지 좇아 와 이런 저런 선물을 건넸다. 허우 감독 특집호 잡지, 뱃지, 파일, 노트, 엽서 등등. 실례지만 그 장면은 엄마 같았다. 신경을 모아 하나하나 건네던 그 두툼한 손. 깊은 푸근함을 느꼈다.

  다시 만나기로 한 건 나흘 뒤. (스팟 안에 있는)‘카페 뤼미에르’에서였다. 벌써 두 시간 째 그녀의 퇴근을 기다렸다. 어쩌면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그만큼 바빠 보였다. 여자친구는 오랜 기다림의 짜증 반, 그녀에 결례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 반으로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그러기도 난처한 일이었다. 금방 마무리하고 나오겠다 한 얼마 뒤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십수분여 뒤 그녀가 헐레벌떡 뛰어 나왔다. 얼마나 서둘렀는지 백도 잊은 채였다.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내뱉는 제스처를 해보였다. 우리는 객쩍은 미소를 지었다. 우산을 펴고 비가 쏟아지는 거리로 뛰어들었다.

  타이완 전통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다 했다. 그녀는 저를 믿고 따라오라는 눈치를 했다. 골목골목을 한참 지나 한 허름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허우 감독의 [펑쿠이에서 온 소년]이나 [연연풍진]에 나올 법한 식당이었다. 메뉴판을 봐도 내가 읽을 수 있는 한자는 ‘고기 육’자 뿐이어서, 주문은 그녀에게 맡겼다. 생각보다 다채한 음식들이 나왔다. 맛도 좋았다. 나는 그녀에게 여행 기간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대개가 허우 감독 촬영지 순례사진이었다. 그녀는 하나하나 미소 지으며 넘겨 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봤을 땐 너 좀 미친 거 같아” “뭐라고?” “너 혼자 이러는 건 상관없는데 여자친구는 엄청 힘들었을 거 아냐.” 여자친구는 반색을 하며 그녀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물었다. “너 같은 사람은 처음 봐. 왜 이토록 감독님한테 열정적인 거야?”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생각을 고른 뒤 대답했다.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었어. 어렸을 때 많은 아이들을 괴롭히기도 했고, 싸움도 곧잘 일으키고 다녔어. 지금이라고 썩 좋은 인간은 못 되지만 감독님 영화가 아니었다면 더 걷잡을 수 없었을 거야.” 그녀는 고기 한 점을 입으로 가져 갔다. “그건 허우 감독님하고 닮은 점이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허우 감독은 어린 시절 소문난 양아치였다. 대입 낙방은 물론 고등학교도 진학 못했을 만큼 성적 또한 형편없었다.(군에 다녀온 뒤 예술대학에 진학했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도둑질을 하거나, 싸움을 벌이거나, 당구장 또는 도박장을 전전하는 일 따위가 그의 소년 시절의 거의 전부라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그의 자전적인 초기작들과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찍은 헌정 다큐 [HHH : 허우 샤오시엔의 초상]을 보면 그가 그 시절 얼마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언젠가 허우 감독이 택시기사와 정치적인 견해 차이로 말다툼을 했단다. 내내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소용없었다. 다툼이 깊어진 그들은 결국 차를 도로 한 가장자리에 세웠다. 급기야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그 일은 언론에 보도되었다. 우리는 깔깔 웃었다. 역시 허우 감독다운 에피소드다 싶었다.

 자리를 옮겨 건너편 빙수 가게로 갔다. 나와 여자친구는 망고 빙수를 시켰고 그녀는 팥이 들어간 밀크티를 시켰다. 몇 대째 물려 내려오는 집인 모양이었다. 낡았으면서도 기품이 흘렀다. 창 밖에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상점의 불빛들이 젖은 바닥에 어른거렸다. 그녀는 허우 감독이 내 편지를 개봉하던 날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었다. 동봉했던 폴라로이드 카피 사진과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 사진을 함께 겹쳐 보시면서, “이 친구 알 것 같다.”고 한마디 남겼다고 한다. 듣기 좋으라고 꾸며낸 말 같진 않았다. 그는 사람을 잘 기억하기로 유명하다. 스텝의 몇 째 아이 학교 생활 소식도 먼저 물어오고, 심지어는 누구네 집 강아지 아픈 건 다 나았느냐 식의 마음도 먼저 내비치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파행적 운영과 그로 인한 서울아트시네마 존립 위협, 부산 국제 영화제의 재정적 어려움에 관해서도 반대 성명을 통해 이미 입장을 전한 바 있다. 가슴과 발이 늘 함께 움직이는 사람.

  수잔의 고향은 딴수이였다. 부모님은 현재 딴수이에 살고 계시고 그녀 역시 얼마 전까지 본가에서 출퇴근을 했단다. 스팟 인근에서 독립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일년 남짓이라고 했다. 퇴근 후나 쉬는 날에 무엇을 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한국 드라마, 한국 예능 보는 게 유일한 취미이자 낙이라 했다. “정말?” 여자친구와 나는 놀라 물었다. 방송 일에 종사하는 여자친구가 질려할만큼(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아 대화에 낄 수 없었다) 그녀는 정말 많은 한국 프로그램을 알고 있었다. 뿐아니라 연예계 소식이며 음악, 뉴스까지 두루 꿰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이 되었다. 그 천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우편과 메일로 안부를 계속 나누기로 했다. 다시 빗속으로 뛰어 들었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계속 바라봐 주었다. 우리는 계속 손을 흔들었다.



2.
  그녀의 이름은 클로이. 스무 살의 앳된 소녀. 스팟에서 파트타임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1년 반 째라고 했다. 그녀는 한 달 전쯤 내게 [섭은낭]의 상영 스케줄과 정보에 관해 전화로 알려준 바 있다. 그게 첫 인연이었다. 전화 목소리와 얼굴 첫인상은 사뭇 달랐다. 나는 그녀가 꽤 연륜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스무 살이었을 줄이야.) 처음 도착해 수잔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클로이는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마침 그녀는 이날 휴무였고, [섭은낭]을 보러 왔다. 나는 그녀의 바로 뒷 열에 앉았다. 너무도 아름다운 영화였고, 내내 탄식을 내뿜으며 보느라 나는 자세를 자주 고쳐 앉았다. 그러나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상영이 끝나고 우리는 함께 걸어 나왔다. 그녀는 우리를 ‘스팟 디자인’으로 안내했다. 거긴 별천지였다. 허우 감독의 초기작 DVD들, 섭은낭 한정판 화보집, 허우 감독 전작 자료집들. 뿐만 아니라 상당히 팬시하게 디자인된 갖가지 생활 소품들이 시네필들을 유혹했다. 나는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리고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하며 구경했고, 그 시간이 자꾸 길어지자 함께 있던 여자친구는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그 사이 클로이는 사무실에서 뭔가를 들고 왔다. 섭은낭 스텝 한정 포스터였다. 자기에게 두 개가 생겼다며, 내게 하나를 건넸다. “웰컴 투 타이완 앤 허우 샤오시엔스 하우스”라는 인사와 함께. 쉽사리 받아 들지 못했다. 그녀가 직접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그녀와 저녁을 먹고 싶었다. 갓 스물이 된 소녀답게 타이페이의 이런저런 맛집을 훤히 꿰고 있었다. 그 중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꽤나 유명한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딤섬 비슷한 걸 시켰고, 쌀국수에 자장 소스를 끼얹은 요리를 시켰다. 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영어가 유창했다. 할머니의 남다른 교육열 덕분이라며 웃어 젖혔다. 영화 이론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곧잘 했는데, 과학도 싫고, 수학도 싫고, 법도 싫었단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하다, 불현듯 영화를 해야겠다 생각했단다. 아무래도 현장 체질은 아니지 싶어 이론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그녀는 참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천천하고 정확한 발음이었고, 거기엔 어떤 자신감이 실려있었다. 그러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부드러움까지 섞였다. 허나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저 이지적인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나는 몇 차례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뭐랄까. 그녀에겐 상대를 매혹하는 힘이 있었다. 꾸며진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물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비에 돌란”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해맑은 얼굴이 되어, 돌란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열 몇 가지쯤 말했다. 나는 아직 그의 영화에 유보적인 입장이기에(절대 질투 아니다), 다소 무례를 범하고 말았다. 그녀의 말이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대뜸, “됐고, 그냥 잘 생겨서 좋아하는 거지?”라고 농을 쳤다. “물론 그 이유도 있지.” 그녀가 재치 있게 받았다. 비평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앞길은 자기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쉬는 날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고 했다. 소설은 그리 많이 읽지 못하고, 이론서나 역사서를 많이 읽는 편이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를 유명한 망고 주스 집으로 이끌었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줄이어 서 있었다. 비는 참 질기게도 내렸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와 나는 스팟에서 최근 개봉한 [리틀 포레스트 : 겨울과 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나는 그 영화를 못 봤지만 연작인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은 아주 감명 깊게 본 터였다. 최근 몇 년간 ‘힐링 푸드 무비’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오기가미 나오코의 [카모메 식당], 존 파브로의 [아메리칸 셰프], 부지영의 [키친], 샤오야췐의 [타이페이 카페스토리] 등등. 열거하자면 퍽 긴 리스트가 된다. 그 중에서도 [리틀 포레스트]는 단연 돋보이는 영화였다. 한 여인이 도망치듯 시골로 흘러 들어 농사를 짓는다. 그녀가 하는 일은 밥을 지어먹고 차를 마시고 친구와 수다를 떠는 일이다. 엄마와의 묘한 관계라는 서브플롯이 끼어들긴 하지만 그닥 중요해 보이진 않는다. 이게 영화의 전부다. 클로이는 말했다. “나는 이 영화가 고성장시대 이후의 어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지향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리틀 포레스트] 속 여인은 단지 농사를 짓고 밥을 지어 먹는 것이 아니다’, ‘희망이 거세된 시대에 되려 그 작은 몸으로 희망을 일구어가는 어떤 작은 활기에 관한 영화다.’ 우리는 입을 모아 대충 저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우리는 쭝산 역 앞에서 헤어졌다. 그녀는 걸음걸이조차 느릿하고 분명했다. 형광색 옷을 입은 덕에 그녀는 꽤 오래 어둠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3.
  그녀의 이름은 저스틴. ‘스팟 디자인’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친구였다. 나이를 묻진 않았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그녀를 만난 곳은 스팟 2층 빈 강의실이었다. 그녀는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데워 온 인스턴트 파스타였다.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대답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색함을 달래려 괜히 이 건물의 역사에 대해 물었다. 그녀가 아이폰을 뒤적이며 내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뭐랄까. 굉장한 천재 같아 보였다. 말을 이따금 더듬거렸고, 어떤 대목에선 알아듣지 못할 만큼 빠르게 말하기도 했다. 나와 눈을 잘 마주치려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경계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외동딸이고 타이페이에 살며 몇 년전 대학을 졸업했다고 했다. 아직 꿈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을 차이밍량의 광팬이라고 소개했다. 한 달에 두어번쯤은 그의 얼굴을 본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었다. 차이밍량 감독이 타이페이 어딘가서 커피숍을 운영하는데, 거기 가면 가끔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을 했다. 귀여웠다. 그 카페에서 일해볼까도 했지만 이력서를 다 써놓고도 내지 못했단다. “왠지 망설여지더라고.” 광팬은 아니지만 역시 나도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여행 전 마침 [떠돌이 개]를 다시 본 참이었다. 우리는 그 영화에 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제일 궁금했던 건, 그렇게 어두운 영화에서 아이들 연기가 어떻게 저리 생기로울 수 있었는지였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걔네들은 이강생(주연배우) 조카들이야. 삼촌이니까 아무래도 편하고 그래서 더 자연스러울 수 있었겠지.”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비전문 배우의 전격적인 기용이다. 대자본이 투입된 영화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허우 감독도, 차이밍량도, 에드워드 양 감독도 적극 비전문 배우를 그들의 영화에 등장시켰다. 그럼으로써 독특한 인상과 질감의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길거리를 지나다 인상이 좋은 사람을 발견하면 뒤따라가서 영화 출연을 대뜸 제안하는 식으로 그들은 비전문 배우를 섭외했다.(그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배우는 [연연풍진], [비정성시]의 신수펜이다.) 우리는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떠돌이 개]에서 제일 의아했던 건, 이강생이 맡은 인물의 직업이었어. 어떻게 오늘 날에도 저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저건 판타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어.(이강생은 이 영화에서 피켓을 들고 비바람을 맞으며 신축 아파트를 홍보하는 일을 한다. 그는 사람이라기보다 차라리 아무 인격도 감정도 없는 사물처럼 보인다.) 근데 신베이터우 역에서 정말 그런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본 거야. 와, 사실이구나. 판타지가 아니었구나. 눈 앞의 사람과 영화 속 이강생을 겹쳐 떠올리면서 굉장히 묘한 기분이 되었어.” 그녀는 내 말을 귀기울여 들어주었다. “맞아. 그런 직업이 대만엔 아직 있어. 그건 네 말마따나 차라리 판타지적이라고 불러야 할 장면이지.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맡길 수 있을까. 온갖 풍요로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 이 세상은 도대체 뭘까. 이런저런 의문을 품게 하지.” 그녀는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와 차이밍량의 영화를 비교하는 코멘트도 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는 보다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면이 있는 거 같아. 열 사람이 영화를 본다면, 열 사람 모두 똑같은 걸 느끼진 않겠지만 아마 대체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 왜냐하면 허우 샤오시엔이 가장 중요시하는 건 사실주의이기 때문에. 그리고 섬세한 결의 생활 묘사이기 때문에. 하지만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는 열 사람이 본다면 아마 열 사람 모두 다른 생각과 감정을 품게 될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사실적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너도 느꼈듯 한편으론 굉장히 판타지적인 풍경이거든? 분명 어떤 특수효과를 쓴 것도 아니고 편집으로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아주 이상한 판타지처럼 보이지. 그게 차이밍량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 그녀의 열변에 나는 구구절절히 공감했다. 정말로 또렷한 감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며칠 전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함께 찍은 아이폰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섭은낭] 개봉 기념 리셉션 파티 현장이었다. 나는 품에서 허우 감독과 찍은 사진을 꺼냈다. 우리는 10년 전 찍은 내 사진과, 3일전 찍은 그녀 사진을 나란히 탁자 위에 놓고 보았다. “허우 감독 얼굴 달라진 거 봐. 역시 시간은 흐르게 마련이네.” 그녀는 시처럼 이렇게 말했다.




4.
  그녀의 이름은 정선년. 나의 오랜 연인이자, 벗. 서울에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을 만났을 때, 언젠가는 대만에서 허우 감독의 흔적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확히 10년 만에 그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될 줄이야. 애초 나는 올 부산 영화제에서 [섭은낭]을 보려고 했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대만으로 이끌었다. 대뜸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그건 그녀가 자주 쓰는 방식이었다. 상대를 깊이 배려하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 무심히 선물을 내밀거나 이벤트를 벌이는 것. 이번에도 그 수법이었다. “너 대만 가고 싶어했잖아.” 속수무책 감동할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대만에서의 시간이 흐르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나에게 토라지고 말았다. 허우 샤오시엔의 흔적을 향한 나의 순례는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러다못해 비장하고 엄숙하기까지 했다. 숫제 그녀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잊기라도 한 듯 행동한 시간들이 있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렇게 독단적이고 이기적으로 나도 모르게 굴고 말았다. 그녀는 충분히 인내했다. 하지만 더 참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나를 멈춰 세웠다. 내 얼굴을 똑바로 보고 물었다. “유만아. 너는 여기서 뭘하고 싶은거야?” 나는 뭐라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글쎄다.. 미안해.“라는 대답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무책임한 대답에 그녀는 화가 많이 났다. 그날 저녁 우리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우리는 모든 여행을 함께 해왔다. 터키에서도 함께였고, 중동에서도 함께였다. 아프리카에서도 함께였고, 남미에서도 함께였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도 함께다. 돌이킬수록 나의 이기심 밖에는 짚이는 바가 없었다. 나는 늘 내가 원하는 여행을 하려했고 그녀는 적지 않은 시간을 묵묵히 따라와주었다. 그 이기심과 무책임함을 알면서도. 속으로 매우 서운했을 것이었으면서도. 남미 어느 나라에서, 지도에도 없는 인디오 마을을 찾아 들어가겠다고 그녀를 이끌고 저 깊은 고산 정글 숲 속을 헤칠 때에 그 이기심은 절정이었다.(지금 생각하면 정말 위험천만한 미친 짓이었다.) 정말 나는 그랬구나. 작은 탄식이 나왔다. 처음한 각성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잊고 말았다. 나를 어쩌면 좋을까.

  그녀는 내가 어떤 노력을 한다해도 그 인간적 깊이에 이를 수 없을 그런 사람이다. 지난 7년의 시간을 빌어 감히 확신 한다. 이미 화가 누그러져 있었다. 숫제 이해한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더듬더듬 엊그제 받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았다. “허우 감독은 내가 많이 부족해서, 따르고 싶은 어떤 그런 인격을 가진 사람이야. 너는.. 내가 따르고 싶은 사람이면서, 또한 그 어떤 길이든 함께 하고 싶고 또 해나갈 사람이고.” 스스로도 이 대답이 참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그 대답이 공허했겠지만, 모른체하며 넓은 품으로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고맙고 미안했다. 다시 큰 사람이라고 느꼈다. (2015)

2015. 9. 1.

촬영지 순례 여행 #2. 허우 샤오시엔 감독 만남 10주년 기념



1. 우리로 치면 명동쯤 될 이곳에서 여자친구는 먹거리 위시리스트를 지워내느라 여념없었고, 나는 대만 최초의 극장(이지만 멀티플렉스로 개축된)을 비롯한 또다른 멀티플렉스들의 분위기를 살피러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정신 없었다. 개봉 사나흘차를 맞은 [섭은낭]은 초반 스코어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대부분은 속아서 온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후에 SPOT의 수잔에게 들은 바로는, [섭은낭]을 보고 뿔난 관객들이 포털 평점 테러를 신나게 하는 중이라고, 적어도 [와호장룡] 정도는 되는 고급지고 신나는 무협영화일 줄 알고 찾아왔다가 기대완 전혀 다른 엉뚱한 영화라 짜증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아마도 곧 내려질 간판들을 돌아다니면서 찍었다. (시먼띵.2015)



2. 처음 타이페이 시내에 당도했을 때,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거리 제례의식이었다. 그날따라 무슨 일이었는지 가게마다, 가정마다 작은 제단을 마련해놓고는, 향초와 지방을 태우며 기도를 외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종교는 없지만 종교인들이 제각기 관례에 따라 의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중동을 여행할 때, 하루 꼬박 다섯번 나라 전역에 울리는 코란 소리에 취해들곤 했었다. 무슬림들은 길을 걷다 말고 등짐에서 작은 카펫을 꺼내 바닥에 깔았다. 메카를 향해 전심으로 기도를 바치는 모습에서 풍기던 그 엄숙함, 정결함을 잊지 못한다. 이따금 제 종교에 교조적으로 빨려들어 타 종교를 억압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무섭다. 하지만 어떤 종교든 진실하게 믿는 사람들은 그러는 법이 없다. 신을 무조건 숭앙하는 대신 신과의 대화 속에 무엇보다 자신을 뒤돌아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비정성시] 첫장면은 임문웅의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아내의 진통과 비명이 시작되자 안절부절못하며 향초를 집어올린다. 양손에 모아 허공에 몇번 휘두른 뒤 기도를 올린다. 나도 그 방법대로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평온을 기도해보았다. (용산사.2015)



3.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잠깐 쉬러 들어간 카페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그녀는 17세의 학생이었다. 싸인, 코싸인, 탄젠트 등의 기호가 복잡히 적힌 문제지를 풀고 있었다. 그 시끄러운 틈에서 괜찮겠냐 물었더니 상관없단다. 그녀는 허우 샤오시엔을 알고 있었다. 반면 장첸과 서기는 모른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 눈이 참 예뻤고 말씨가 고왔다. 그녀도 나도 더듬거리는 영어로 서로의 생활을 물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21살이고 그녀를 많이 예뻐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수줍게 보여준 휴대폰 사진이 그걸 말했다. 그녀는 이곳 딴수이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여행 비지니스 학과에 들어가고 싶단다. 멋진 여행 기획자가 되는 것이 꿈이란다. 그녀의 행복과 꿈이룸을 빌어주었다. 아직 키스를 못해봤다기에 얼른 해보라고 농섞어 충고해줬다. 인생에 진짜 좋은 몇가지 중 하나라고. 수줍게 붉어진 볼이 참 예뻤다. (딴수이.2015)



4.[비정성시]와 [연연풍진]의 촬영지, 지우펀. 저 첫 번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향한 이유는 충분히 채워진 셈이었다. 저 습한 장면은 비정성시에 인서트로 두어차례 삽입된다. 그 무심한 쇼트를 바라볼 때마다 정말 가슴이 아려오곤 했었다. 우리는 한 정자 안으로 들어갔다. 길다란 의자에 걸터 앉아 습기 가득한 바람을 맞았다. 한 쪽 귀에 씩 이어폰을 나눠 꽂고 비정성시 사운드 트랙을 들었다. 그녀가 내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긴 시간 함께 귀기울여 들어주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지우펀.2015)

촬영지 순례 여행 #1. 허우 샤오시엔 감독 만남 10주년 기념



1. 클로이가 긴 시간 구글링을 해낸 끝에 [밀레니엄 맘보] 오프닝 촬영지를 알아냈다. 찾아 가는 길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곳은 오랜 세월 탓에 곳곳이 훼손 되어 있었고, 이 참에 지자체는 쇼핑몰과 연계하여 다리 전체를 새로 짓는 리모델링을 할 계획인 모양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무지 소음 때문에 오래 있기가 어려웠다. 이를 무릅쓰고 여자친구가 기꺼이 서기 역할을 맡아주었다. 그 덕에 거기서 밀레니엄 맘보 오프닝을 비슷하게(?) 따라 찍을 수 있었다.




2. 루이팡에서 핑시시엔 열차를 갈아 타고 시펀에 갔다. [연연풍진]과 [남국재견]의 촬영이 이루어진 곳이다. 수년전부터 관광이 활성화되어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파를 뚫고 잠시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연연풍진의 소년이 살았을 법한 가옥들이 이어져 있었다. 습하고 조용했다. 깡마른 고양이를 보았고 우산처럼 넓은 잎을 가진 식물을 보았다. 다시 철로 변으로 나왔다. 한 풍등 가게에서 풍등을 샀다.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바람을 적어 넣었다. 한 면에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10주년을 자축, 감사하는 문구를 적었다. 풍등 안에 종이를 말아 불을 붙이자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저 멀리로 날아가는 모습이 참 예뻤다.




3. 열차는 언제나 나의 영화적 로망이었다. 히치콕의 서스펜스한 열차. 오즈의 아이들이 걷던 철로길. 사트야지트 레이의 꿈결 같은 열차. 어떤 서부극은 아예 열차의 이미지를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 역시 나는 좋아했다. 그래도 허우 샤오시엔의 열차만큼 내 마음을 달뜨게 하는 것은 없었다. [연연풍진]과 [남국재견]의 저 철로라니. 그저 차창 밖을 바라볼 뿐인데도 깊은 곳에서 아련한 감격이 올라왔다. 흡사 시간을 잇는 선과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4. 실제 [비정성시] 촬영이 이루어진 가게에서 이날 저녁을 먹었다. 맛은 없었다. 대신 임문웅과 그의 가족들이 둘러 앉았던 식탁이 있었다. 역사가 진행되면서 자리를 차지하던 사람들 또한 변해갔던 그 식탁이다. 영화가 끝난 뒤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식탁을 흘러 지나 갔을까. 벽 한 켠엔 허우 감독이 남기고 간 싸인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