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5.

2015 대만 여행.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10주년 및 자객 섭은낭 대만 개봉 기념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10주년 및
자객 섭은낭 대만 개봉 기념

2015년 여름







































2015. 9. 4.

차이밍량, 아피찻퐁




1. 저리들 시원하게 한 번 밀어보고 싶다. 태어나 한 번도 저 길이여 본 적이 없다. 군에서 마저도.

2. 저기가 차이밍량이 운영한다는 그 카페인가?

3. 어젯밤엔 [징후와 세기]를 다시 보았다. 여전히 안개같다. 병원 한공간을 자욱이 채우던 그 안개. 겨우 진공관으로 빨려 나가던 안개. 짧지만 강렬한 질식감을 주던 그 안개.

4. 아피찻퐁에게 정글만큼 중요한 공간은 병원인 듯싶다. 그의 인물들은 늘 어딘가 아프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그 둘 모두가 아프거나.

5. 차이밍량과 아피찻퐁은 ‘마술적 리얼리즘'을 공유하지 않나 싶다. 마르케스 문학과는 다른 의미에서. 그들은 매우 사실적으로 인물과 로케와 사물을 그린다. 그런데 결국엔 원시성과 환상성으로 퍼져 나가고 만다. 아피찻퐁이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노는 방식은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르게 한다. 보는 이가 오인하도록 유도한 다음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방향을 확 틀어버린다. 차이밍량은 그의 인물들을 자꾸만 사람이기보다 유령처럼 그리려 한다. 밥을 먹게하고 눈물을 흘리게하고 섹스를 하게 하고 잠을 재우는데도. 그 기이함을 도무지 모르겠다.

6. 어릴적 할머니 손을 붙잡고 동굴로 들어가는 배를 탔던 기억이 난다. 그 어두컴컴한 속에서 조잡한 인형들이 야한 빛을 받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모형 동물들은 녹음된 울음소리를 기묘히 울어댔다. 호랑이의 눈에서 빛이 새나오는 것만 같았다. 밤에 홀로 숲길을 산책할 때면 그때 그 기억으로 붙들려 간다. 아피찻퐁의 정글을 볼 때도 어김없이 그런다.

7. 검열을 피해 더는 태국에서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아피찻퐁은 선언했다. 남미로 갈거라고. 안타까우면서도 한편 다른 차원으로의 도약이 기대된다. 그의 앞날에 행운을 빈다.

2015. 9. 2.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4


1.
  그녀의 이름은 수잔. 스팟에서 영화 교육과 각종 부대행사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다. 올해로 벌써 12년 째. 그녀는 친절히도 그간 내 일을 돌봐주었다. (여름 방학과 가을 학기 개강 준비 탓에) 눈코 뜰새없이 바쁠 것임에도. 너무 감사했다. 타이페이에 이른 뒤 그녀부터 방문했다. 파리바게트 엿 상자를 선물로 건넸다, ‘코리안 트레디셔널 캔디’라 이름을 꾸몄다.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였다. 고마운 사람은 나였다. 민망했다. [섭은낭] 첫 상영이 시작될 참이었다. 티켓을 받아들고 극장에 들어섰다. 100명 남짓 수용 가능한 공간이었다. 자리를 찾아 앉고 눈을 감았다.얼마나 기다려왔나.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녀였다. 좌석까지 좇아 와 이런 저런 선물을 건넸다. 허우 감독 특집호 잡지, 뱃지, 파일, 노트, 엽서 등등. 실례지만 그 장면은 엄마 같았다. 신경을 모아 하나하나 건네던 그 두툼한 손. 깊은 푸근함을 느꼈다.

  다시 만나기로 한 건 나흘 뒤. (스팟 안에 있는)‘카페 뤼미에르’에서였다. 벌써 두 시간 째 그녀의 퇴근을 기다렸다. 어쩌면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그만큼 바빠 보였다. 여자친구는 오랜 기다림의 짜증 반, 그녀에 결례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 반으로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그러기도 난처한 일이었다. 금방 마무리하고 나오겠다 한 얼마 뒤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십수분여 뒤 그녀가 헐레벌떡 뛰어 나왔다. 얼마나 서둘렀는지 백도 잊은 채였다.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내뱉는 제스처를 해보였다. 우리는 객쩍은 미소를 지었다. 우산을 펴고 비가 쏟아지는 거리로 뛰어들었다.

  타이완 전통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다 했다. 그녀는 저를 믿고 따라오라는 눈치를 했다. 골목골목을 한참 지나 한 허름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허우 감독의 [펑쿠이에서 온 소년]이나 [연연풍진]에 나올 법한 식당이었다. 메뉴판을 봐도 내가 읽을 수 있는 한자는 ‘고기 육’자 뿐이어서, 주문은 그녀에게 맡겼다. 생각보다 다채한 음식들이 나왔다. 맛도 좋았다. 나는 그녀에게 여행 기간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대개가 허우 감독 촬영지 순례사진이었다. 그녀는 하나하나 미소 지으며 넘겨 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봤을 땐 너 좀 미친 거 같아” “뭐라고?” “너 혼자 이러는 건 상관없는데 여자친구는 엄청 힘들었을 거 아냐.” 여자친구는 반색을 하며 그녀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물었다. “너 같은 사람은 처음 봐. 왜 이토록 감독님한테 열정적인 거야?”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생각을 고른 뒤 대답했다.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었어. 어렸을 때 많은 아이들을 괴롭히기도 했고, 싸움도 곧잘 일으키고 다녔어. 지금이라고 썩 좋은 인간은 못 되지만 감독님 영화가 아니었다면 더 걷잡을 수 없었을 거야.” 그녀는 고기 한 점을 입으로 가져 갔다. “그건 허우 감독님하고 닮은 점이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허우 감독은 어린 시절 소문난 양아치였다. 대입 낙방은 물론 고등학교도 진학 못했을 만큼 성적 또한 형편없었다.(군에 다녀온 뒤 예술대학에 진학했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도둑질을 하거나, 싸움을 벌이거나, 당구장 또는 도박장을 전전하는 일 따위가 그의 소년 시절의 거의 전부라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그의 자전적인 초기작들과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찍은 헌정 다큐 [HHH : 허우 샤오시엔의 초상]을 보면 그가 그 시절 얼마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언젠가 허우 감독이 택시기사와 정치적인 견해 차이로 말다툼을 했단다. 내내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소용없었다. 다툼이 깊어진 그들은 결국 차를 도로 한 가장자리에 세웠다. 급기야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그 일은 언론에 보도되었다. 우리는 깔깔 웃었다. 역시 허우 감독다운 에피소드다 싶었다.

 자리를 옮겨 건너편 빙수 가게로 갔다. 나와 여자친구는 망고 빙수를 시켰고 그녀는 팥이 들어간 밀크티를 시켰다. 몇 대째 물려 내려오는 집인 모양이었다. 낡았으면서도 기품이 흘렀다. 창 밖에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상점의 불빛들이 젖은 바닥에 어른거렸다. 그녀는 허우 감독이 내 편지를 개봉하던 날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었다. 동봉했던 폴라로이드 카피 사진과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 사진을 함께 겹쳐 보시면서, “이 친구 알 것 같다.”고 한마디 남겼다고 한다. 듣기 좋으라고 꾸며낸 말 같진 않았다. 그는 사람을 잘 기억하기로 유명하다. 스텝의 몇 째 아이 학교 생활 소식도 먼저 물어오고, 심지어는 누구네 집 강아지 아픈 건 다 나았느냐 식의 마음도 먼저 내비치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파행적 운영과 그로 인한 서울아트시네마 존립 위협, 부산 국제 영화제의 재정적 어려움에 관해서도 반대 성명을 통해 이미 입장을 전한 바 있다. 가슴과 발이 늘 함께 움직이는 사람.

  수잔의 고향은 딴수이였다. 부모님은 현재 딴수이에 살고 계시고 그녀 역시 얼마 전까지 본가에서 출퇴근을 했단다. 스팟 인근에서 독립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일년 남짓이라고 했다. 퇴근 후나 쉬는 날에 무엇을 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한국 드라마, 한국 예능 보는 게 유일한 취미이자 낙이라 했다. “정말?” 여자친구와 나는 놀라 물었다. 방송 일에 종사하는 여자친구가 질려할만큼(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아 대화에 낄 수 없었다) 그녀는 정말 많은 한국 프로그램을 알고 있었다. 뿐아니라 연예계 소식이며 음악, 뉴스까지 두루 꿰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이 되었다. 그 천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우편과 메일로 안부를 계속 나누기로 했다. 다시 빗속으로 뛰어 들었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계속 바라봐 주었다. 우리는 계속 손을 흔들었다.



2.
  그녀의 이름은 클로이. 스무 살의 앳된 소녀. 스팟에서 파트타임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1년 반 째라고 했다. 그녀는 한 달 전쯤 내게 [섭은낭]의 상영 스케줄과 정보에 관해 전화로 알려준 바 있다. 그게 첫 인연이었다. 전화 목소리와 얼굴 첫인상은 사뭇 달랐다. 나는 그녀가 꽤 연륜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스무 살이었을 줄이야.) 처음 도착해 수잔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클로이는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마침 그녀는 이날 휴무였고, [섭은낭]을 보러 왔다. 나는 그녀의 바로 뒷 열에 앉았다. 너무도 아름다운 영화였고, 내내 탄식을 내뿜으며 보느라 나는 자세를 자주 고쳐 앉았다. 그러나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상영이 끝나고 우리는 함께 걸어 나왔다. 그녀는 우리를 ‘스팟 디자인’으로 안내했다. 거긴 별천지였다. 허우 감독의 초기작 DVD들, 섭은낭 한정판 화보집, 허우 감독 전작 자료집들. 뿐만 아니라 상당히 팬시하게 디자인된 갖가지 생활 소품들이 시네필들을 유혹했다. 나는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리고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하며 구경했고, 그 시간이 자꾸 길어지자 함께 있던 여자친구는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그 사이 클로이는 사무실에서 뭔가를 들고 왔다. 섭은낭 스텝 한정 포스터였다. 자기에게 두 개가 생겼다며, 내게 하나를 건넸다. “웰컴 투 타이완 앤 허우 샤오시엔스 하우스”라는 인사와 함께. 쉽사리 받아 들지 못했다. 그녀가 직접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그녀와 저녁을 먹고 싶었다. 갓 스물이 된 소녀답게 타이페이의 이런저런 맛집을 훤히 꿰고 있었다. 그 중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꽤나 유명한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딤섬 비슷한 걸 시켰고, 쌀국수에 자장 소스를 끼얹은 요리를 시켰다. 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영어가 유창했다. 할머니의 남다른 교육열 덕분이라며 웃어 젖혔다. 영화 이론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곧잘 했는데, 과학도 싫고, 수학도 싫고, 법도 싫었단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하다, 불현듯 영화를 해야겠다 생각했단다. 아무래도 현장 체질은 아니지 싶어 이론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그녀는 참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천천하고 정확한 발음이었고, 거기엔 어떤 자신감이 실려있었다. 그러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부드러움까지 섞였다. 허나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저 이지적인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나는 몇 차례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뭐랄까. 그녀에겐 상대를 매혹하는 힘이 있었다. 꾸며진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물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비에 돌란”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해맑은 얼굴이 되어, 돌란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열 몇 가지쯤 말했다. 나는 아직 그의 영화에 유보적인 입장이기에(절대 질투 아니다), 다소 무례를 범하고 말았다. 그녀의 말이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대뜸, “됐고, 그냥 잘 생겨서 좋아하는 거지?”라고 농을 쳤다. “물론 그 이유도 있지.” 그녀가 재치 있게 받았다. 비평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앞길은 자기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쉬는 날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고 했다. 소설은 그리 많이 읽지 못하고, 이론서나 역사서를 많이 읽는 편이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를 유명한 망고 주스 집으로 이끌었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줄이어 서 있었다. 비는 참 질기게도 내렸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와 나는 스팟에서 최근 개봉한 [리틀 포레스트 : 겨울과 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나는 그 영화를 못 봤지만 연작인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은 아주 감명 깊게 본 터였다. 최근 몇 년간 ‘힐링 푸드 무비’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오기가미 나오코의 [카모메 식당], 존 파브로의 [아메리칸 셰프], 부지영의 [키친], 샤오야췐의 [타이페이 카페스토리] 등등. 열거하자면 퍽 긴 리스트가 된다. 그 중에서도 [리틀 포레스트]는 단연 돋보이는 영화였다. 한 여인이 도망치듯 시골로 흘러 들어 농사를 짓는다. 그녀가 하는 일은 밥을 지어먹고 차를 마시고 친구와 수다를 떠는 일이다. 엄마와의 묘한 관계라는 서브플롯이 끼어들긴 하지만 그닥 중요해 보이진 않는다. 이게 영화의 전부다. 클로이는 말했다. “나는 이 영화가 고성장시대 이후의 어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지향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리틀 포레스트] 속 여인은 단지 농사를 짓고 밥을 지어 먹는 것이 아니다’, ‘희망이 거세된 시대에 되려 그 작은 몸으로 희망을 일구어가는 어떤 작은 활기에 관한 영화다.’ 우리는 입을 모아 대충 저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우리는 쭝산 역 앞에서 헤어졌다. 그녀는 걸음걸이조차 느릿하고 분명했다. 형광색 옷을 입은 덕에 그녀는 꽤 오래 어둠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3.
  그녀의 이름은 저스틴. ‘스팟 디자인’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친구였다. 나이를 묻진 않았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그녀를 만난 곳은 스팟 2층 빈 강의실이었다. 그녀는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데워 온 인스턴트 파스타였다.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대답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색함을 달래려 괜히 이 건물의 역사에 대해 물었다. 그녀가 아이폰을 뒤적이며 내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뭐랄까. 굉장한 천재 같아 보였다. 말을 이따금 더듬거렸고, 어떤 대목에선 알아듣지 못할 만큼 빠르게 말하기도 했다. 나와 눈을 잘 마주치려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경계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외동딸이고 타이페이에 살며 몇 년전 대학을 졸업했다고 했다. 아직 꿈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을 차이밍량의 광팬이라고 소개했다. 한 달에 두어번쯤은 그의 얼굴을 본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었다. 차이밍량 감독이 타이페이 어딘가서 커피숍을 운영하는데, 거기 가면 가끔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을 했다. 귀여웠다. 그 카페에서 일해볼까도 했지만 이력서를 다 써놓고도 내지 못했단다. “왠지 망설여지더라고.” 광팬은 아니지만 역시 나도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여행 전 마침 [떠돌이 개]를 다시 본 참이었다. 우리는 그 영화에 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제일 궁금했던 건, 그렇게 어두운 영화에서 아이들 연기가 어떻게 저리 생기로울 수 있었는지였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걔네들은 이강생(주연배우) 조카들이야. 삼촌이니까 아무래도 편하고 그래서 더 자연스러울 수 있었겠지.”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비전문 배우의 전격적인 기용이다. 대자본이 투입된 영화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허우 감독도, 차이밍량도, 에드워드 양 감독도 적극 비전문 배우를 그들의 영화에 등장시켰다. 그럼으로써 독특한 인상과 질감의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길거리를 지나다 인상이 좋은 사람을 발견하면 뒤따라가서 영화 출연을 대뜸 제안하는 식으로 그들은 비전문 배우를 섭외했다.(그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배우는 [연연풍진], [비정성시]의 신수펜이다.) 우리는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떠돌이 개]에서 제일 의아했던 건, 이강생이 맡은 인물의 직업이었어. 어떻게 오늘 날에도 저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저건 판타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어.(이강생은 이 영화에서 피켓을 들고 비바람을 맞으며 신축 아파트를 홍보하는 일을 한다. 그는 사람이라기보다 차라리 아무 인격도 감정도 없는 사물처럼 보인다.) 근데 신베이터우 역에서 정말 그런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본 거야. 와, 사실이구나. 판타지가 아니었구나. 눈 앞의 사람과 영화 속 이강생을 겹쳐 떠올리면서 굉장히 묘한 기분이 되었어.” 그녀는 내 말을 귀기울여 들어주었다. “맞아. 그런 직업이 대만엔 아직 있어. 그건 네 말마따나 차라리 판타지적이라고 불러야 할 장면이지.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맡길 수 있을까. 온갖 풍요로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 이 세상은 도대체 뭘까. 이런저런 의문을 품게 하지.” 그녀는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와 차이밍량의 영화를 비교하는 코멘트도 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는 보다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면이 있는 거 같아. 열 사람이 영화를 본다면, 열 사람 모두 똑같은 걸 느끼진 않겠지만 아마 대체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 왜냐하면 허우 샤오시엔이 가장 중요시하는 건 사실주의이기 때문에. 그리고 섬세한 결의 생활 묘사이기 때문에. 하지만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는 열 사람이 본다면 아마 열 사람 모두 다른 생각과 감정을 품게 될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사실적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너도 느꼈듯 한편으론 굉장히 판타지적인 풍경이거든? 분명 어떤 특수효과를 쓴 것도 아니고 편집으로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아주 이상한 판타지처럼 보이지. 그게 차이밍량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 그녀의 열변에 나는 구구절절히 공감했다. 정말로 또렷한 감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며칠 전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함께 찍은 아이폰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섭은낭] 개봉 기념 리셉션 파티 현장이었다. 나는 품에서 허우 감독과 찍은 사진을 꺼냈다. 우리는 10년 전 찍은 내 사진과, 3일전 찍은 그녀 사진을 나란히 탁자 위에 놓고 보았다. “허우 감독 얼굴 달라진 거 봐. 역시 시간은 흐르게 마련이네.” 그녀는 시처럼 이렇게 말했다.




4.
  그녀의 이름은 정선년. 나의 오랜 연인이자, 벗. 서울에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을 만났을 때, 언젠가는 대만에서 허우 감독의 흔적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확히 10년 만에 그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될 줄이야. 애초 나는 올 부산 영화제에서 [섭은낭]을 보려고 했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대만으로 이끌었다. 대뜸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그건 그녀가 자주 쓰는 방식이었다. 상대를 깊이 배려하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 무심히 선물을 내밀거나 이벤트를 벌이는 것. 이번에도 그 수법이었다. “너 대만 가고 싶어했잖아.” 속수무책 감동할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대만에서의 시간이 흐르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나에게 토라지고 말았다. 허우 샤오시엔의 흔적을 향한 나의 순례는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러다못해 비장하고 엄숙하기까지 했다. 숫제 그녀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잊기라도 한 듯 행동한 시간들이 있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렇게 독단적이고 이기적으로 나도 모르게 굴고 말았다. 그녀는 충분히 인내했다. 하지만 더 참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나를 멈춰 세웠다. 내 얼굴을 똑바로 보고 물었다. “유만아. 너는 여기서 뭘하고 싶은거야?” 나는 뭐라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글쎄다.. 미안해.“라는 대답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무책임한 대답에 그녀는 화가 많이 났다. 그날 저녁 우리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우리는 모든 여행을 함께 해왔다. 터키에서도 함께였고, 중동에서도 함께였다. 아프리카에서도 함께였고, 남미에서도 함께였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도 함께다. 돌이킬수록 나의 이기심 밖에는 짚이는 바가 없었다. 나는 늘 내가 원하는 여행을 하려했고 그녀는 적지 않은 시간을 묵묵히 따라와주었다. 그 이기심과 무책임함을 알면서도. 속으로 매우 서운했을 것이었으면서도. 남미 어느 나라에서, 지도에도 없는 인디오 마을을 찾아 들어가겠다고 그녀를 이끌고 저 깊은 고산 정글 숲 속을 헤칠 때에 그 이기심은 절정이었다.(지금 생각하면 정말 위험천만한 미친 짓이었다.) 정말 나는 그랬구나. 작은 탄식이 나왔다. 처음한 각성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잊고 말았다. 나를 어쩌면 좋을까.

  그녀는 내가 어떤 노력을 한다해도 그 인간적 깊이에 이를 수 없을 그런 사람이다. 지난 7년의 시간을 빌어 감히 확신 한다. 이미 화가 누그러져 있었다. 숫제 이해한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더듬더듬 엊그제 받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았다. “허우 감독은 내가 많이 부족해서, 따르고 싶은 어떤 그런 인격을 가진 사람이야. 너는.. 내가 따르고 싶은 사람이면서, 또한 그 어떤 길이든 함께 하고 싶고 또 해나갈 사람이고.” 스스로도 이 대답이 참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그 대답이 공허했겠지만, 모른체하며 넓은 품으로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고맙고 미안했다. 다시 큰 사람이라고 느꼈다. (2015)

2015. 9. 1.

촬영지 순례 여행 #2. 허우 샤오시엔 감독 만남 10주년 기념



1. 우리로 치면 명동쯤 될 이곳에서 여자친구는 먹거리 위시리스트를 지워내느라 여념없었고, 나는 대만 최초의 극장(이지만 멀티플렉스로 개축된)을 비롯한 또다른 멀티플렉스들의 분위기를 살피러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정신 없었다. 개봉 사나흘차를 맞은 [섭은낭]은 초반 스코어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대부분은 속아서 온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후에 SPOT의 수잔에게 들은 바로는, [섭은낭]을 보고 뿔난 관객들이 포털 평점 테러를 신나게 하는 중이라고, 적어도 [와호장룡] 정도는 되는 고급지고 신나는 무협영화일 줄 알고 찾아왔다가 기대완 전혀 다른 엉뚱한 영화라 짜증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아마도 곧 내려질 간판들을 돌아다니면서 찍었다. (시먼띵.2015)



2. 처음 타이페이 시내에 당도했을 때,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거리 제례의식이었다. 그날따라 무슨 일이었는지 가게마다, 가정마다 작은 제단을 마련해놓고는, 향초와 지방을 태우며 기도를 외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종교는 없지만 종교인들이 제각기 관례에 따라 의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중동을 여행할 때, 하루 꼬박 다섯번 나라 전역에 울리는 코란 소리에 취해들곤 했었다. 무슬림들은 길을 걷다 말고 등짐에서 작은 카펫을 꺼내 바닥에 깔았다. 메카를 향해 전심으로 기도를 바치는 모습에서 풍기던 그 엄숙함, 정결함을 잊지 못한다. 이따금 제 종교에 교조적으로 빨려들어 타 종교를 억압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무섭다. 하지만 어떤 종교든 진실하게 믿는 사람들은 그러는 법이 없다. 신을 무조건 숭앙하는 대신 신과의 대화 속에 무엇보다 자신을 뒤돌아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비정성시] 첫장면은 임문웅의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아내의 진통과 비명이 시작되자 안절부절못하며 향초를 집어올린다. 양손에 모아 허공에 몇번 휘두른 뒤 기도를 올린다. 나도 그 방법대로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평온을 기도해보았다. (용산사.2015)



3.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잠깐 쉬러 들어간 카페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그녀는 17세의 학생이었다. 싸인, 코싸인, 탄젠트 등의 기호가 복잡히 적힌 문제지를 풀고 있었다. 그 시끄러운 틈에서 괜찮겠냐 물었더니 상관없단다. 그녀는 허우 샤오시엔을 알고 있었다. 반면 장첸과 서기는 모른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 눈이 참 예뻤고 말씨가 고왔다. 그녀도 나도 더듬거리는 영어로 서로의 생활을 물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21살이고 그녀를 많이 예뻐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수줍게 보여준 휴대폰 사진이 그걸 말했다. 그녀는 이곳 딴수이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여행 비지니스 학과에 들어가고 싶단다. 멋진 여행 기획자가 되는 것이 꿈이란다. 그녀의 행복과 꿈이룸을 빌어주었다. 아직 키스를 못해봤다기에 얼른 해보라고 농섞어 충고해줬다. 인생에 진짜 좋은 몇가지 중 하나라고. 수줍게 붉어진 볼이 참 예뻤다. (딴수이.2015)



4.[비정성시]와 [연연풍진]의 촬영지, 지우펀. 저 첫 번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향한 이유는 충분히 채워진 셈이었다. 저 습한 장면은 비정성시에 인서트로 두어차례 삽입된다. 그 무심한 쇼트를 바라볼 때마다 정말 가슴이 아려오곤 했었다. 우리는 한 정자 안으로 들어갔다. 길다란 의자에 걸터 앉아 습기 가득한 바람을 맞았다. 한 쪽 귀에 씩 이어폰을 나눠 꽂고 비정성시 사운드 트랙을 들었다. 그녀가 내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긴 시간 함께 귀기울여 들어주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지우펀.2015)

촬영지 순례 여행 #1. 허우 샤오시엔 감독 만남 10주년 기념



1. 클로이가 긴 시간 구글링을 해낸 끝에 [밀레니엄 맘보] 오프닝 촬영지를 알아냈다. 찾아 가는 길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곳은 오랜 세월 탓에 곳곳이 훼손 되어 있었고, 이 참에 지자체는 쇼핑몰과 연계하여 다리 전체를 새로 짓는 리모델링을 할 계획인 모양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무지 소음 때문에 오래 있기가 어려웠다. 이를 무릅쓰고 여자친구가 기꺼이 서기 역할을 맡아주었다. 그 덕에 거기서 밀레니엄 맘보 오프닝을 비슷하게(?) 따라 찍을 수 있었다.




2. 루이팡에서 핑시시엔 열차를 갈아 타고 시펀에 갔다. [연연풍진]과 [남국재견]의 촬영이 이루어진 곳이다. 수년전부터 관광이 활성화되어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파를 뚫고 잠시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연연풍진의 소년이 살았을 법한 가옥들이 이어져 있었다. 습하고 조용했다. 깡마른 고양이를 보았고 우산처럼 넓은 잎을 가진 식물을 보았다. 다시 철로 변으로 나왔다. 한 풍등 가게에서 풍등을 샀다.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바람을 적어 넣었다. 한 면에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10주년을 자축, 감사하는 문구를 적었다. 풍등 안에 종이를 말아 불을 붙이자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저 멀리로 날아가는 모습이 참 예뻤다.




3. 열차는 언제나 나의 영화적 로망이었다. 히치콕의 서스펜스한 열차. 오즈의 아이들이 걷던 철로길. 사트야지트 레이의 꿈결 같은 열차. 어떤 서부극은 아예 열차의 이미지를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 역시 나는 좋아했다. 그래도 허우 샤오시엔의 열차만큼 내 마음을 달뜨게 하는 것은 없었다. [연연풍진]과 [남국재견]의 저 철로라니. 그저 차창 밖을 바라볼 뿐인데도 깊은 곳에서 아련한 감격이 올라왔다. 흡사 시간을 잇는 선과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4. 실제 [비정성시] 촬영이 이루어진 가게에서 이날 저녁을 먹었다. 맛은 없었다. 대신 임문웅과 그의 가족들이 둘러 앉았던 식탁이 있었다. 역사가 진행되면서 자리를 차지하던 사람들 또한 변해갔던 그 식탁이다. 영화가 끝난 뒤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식탁을 흘러 지나 갔을까. 벽 한 켠엔 허우 감독이 남기고 간 싸인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2015. 8. 28.

[자객 섭은낭] 짧은 소감




[자객 섭은낭] 짧은 소감





  섭은낭을 보았다. 꼭 10년의 세월이다. 스물 되던 해 이 기획을 처음 들었다. 앞으로 또 무엇을 이렇게 기다릴 수 있을까. 더없이 깊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무협영화지만 어떤 전통에서도 비껴선다. 온 육신이 너절해질 때까지 불사르는 비장한 결투도 없고, 정교한 합 아래 곡예를 펼치듯 빠르고 화려한 무술도 없다. 그 대신 이 영화가 공들여 다루는 건 ‘망설임’, ‘기다림’, ‘비어있음'의 시간이다. 죽여야 하지만 차마 죽일 수 없는 남자를 바라보는 어떤 여인의 이야기. 그녀는 자객이라기보다 흡사 배회하는 유령같다. 그 지연과 공백의 틈을 채워내는 건 무심한 풍경과 그 풍경을 감각하는 시네마틱한 시간이다.(군데군데 무성영화의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섭은낭]의 인물들은 격렬히 쟁투하지 못하고 종종 이상한 리듬으로 멈춰선다. 기량과 법도만으로는 앞지르거나 감당해낼 수 없는 어떤 성정이 그들의 운명을 자유롭게 풀어두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시간의 흔적-옥결, 금가면, 종이인형-이 여전히 남아있고, 그 궤적과 소용돌이 가운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이들 중 아무도 없다. 섭은낭은 끝내 실패한다. 그리고 어디론지 알 수 없을 먼 길을 떠난다. 허우 샤오시엔은 다른 어떤 이보다 ‘무엇'에 ‘얼마만큼 다가가야 하는가'(혹은 '얼마만큼 멀어져야 하는가')를 깊이 고뇌한 작가다. 카메라가 선 자리로, 쇼트의 지속시간으로, 인물 감정과 생활감각에 대한 섬세한 결의 묘사로, 말하자면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온갖 수단으로 그 거리를 표현해왔다. 그 거리만큼이 이 세계에 대한 자신의 방도이며 그곳이 자신이 이를 수 있는 마지막 자리라는 듯. 이 영화 역시 그 거리감을 잊지 않는다. 그 결과 어딘가 기이하면서도 말로 모두 형용할 수 없는 그런 시적인 무협이 탄생한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생활을 살아낸다. 영화는 단지 그 방편일 뿐이다. 지난 기록들이 이 작품에 이르러 한 숭고한 결정을 맺은 느낌이다. 정식으로 수입되어 개봉하면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다. 그리고 밖을 걷고 싶다. 

2015. 8. 28.
Spot Taipei (光點台北)




덧붙임1.

[자객 섭은낭] 대담



  서울아트시네마서 열린 감독님과의 대담행사(16.1.28)에 참석했다. 2005년 낙원동에서 있었던 마스터클래스 이후 10년 만에 뵙는 자리다. 무척 설렜다. 이창동 감독이 특별히 함께 했다. 김영진 평론가가 사회를 진행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 대담이 이어졌다. 허우 감독에 대한 이창동 감독의 애정이 컸다. 10년을 기다려왔다고 입을 떼었다. 이 영화에선 서사의 인과성이나 인물 관계의 명료함이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고. 알 듯 모를 듯한 감정들과 그를 둘러싼 풍경들, 소리들에 감각을 여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동스러운 영화였다고 말했다. 과연 허우 감독님의 작품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영화였다고. 당이라는 시대적 외피, 무협이라는 장르적 외피를 둘렀을 뿐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어떤 마음 관한 영화가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깊이 공감했다.

  Q&A 시간엔 으레 나올 법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으셨습니까.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히 여기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렇게 봤는데 이 감상이 맞는 것입니까. 허우 감독은 그 모든 질문들에 성심껏 답변을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빈틈을 남겨두는 듯한 인상이었다. 과잉 해석과 현학의 분석을 슬며시 경계하고 있었다. 특유의 유머와 익살어린 제스쳐로 대신 그 틈을 채워냈다. 답변은 전작들을 마치고 했던 그간의 인터뷰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자신은 줄곧 사실주의를 강조해왔다는 말. 함께 자주 작업하게 되는 이들은 결국 그이의 품성과 사람됨이 아주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말. 가장 자연스럽고 만족스러운 순간을 필름에 담기 위해 먼저 그런 상황과 환경,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말. 머리로 하는 대화가 있고 가슴, 발바닥으로 하는 대화가 있다. 허우 감독과의 대화는 언제나 명명한 후자였다. 그는 씨네필로서의 자의식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영화로 영화를 배운 사람이 아니다. 삶과 생활이 먼저였고 영화는 언제나 방편이었던 사람. 생활을 감각하고 세계를 살아내는 데 다만 영화가 필요했던 사람. 가신공주는 섭은낭에게 말한다. “너의 검술엔 적수가 없으나 마음은 사람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구나.” 허우 감독의 영화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할 ‘거리감'은 인간의 불가피한 어떤 성정으로부터 빚어진 것이다. 이뤄내야 하지만 이뤄낼 수 없음을 자각하는 일. 전해야 하지만 끝내 전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일. [카페 뤼미에르]의 아버지는 딸 요코에게 ‘어떤 방법으로 네가 아이를 낳아 혼자 기르며 살 것인지'에 대해 끝내 묻지 못한다. 그는 정종을 들이켜거나 뒤돌아 앉아 함께 우동을 먹는 일밖에 할 수가 없다. 그 거리감과 생활묘사는 그저 많은 영화를 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담이 끝났다. 관객들은 로비에서 허우 감독을 기다렸다.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아갔다. 나는 그의 보좌 직원(SPOT 직원이라고 했다)에게 작은 선물을 남긴 후 밖으로 걸어 나왔다. 여자친구가 허기를 호소했다. 종로3가 앞에 늘어선 한 포장마차로 향했다. 막 반죽을 부은 붕어빵과 계란빵이 익기를 기다렸다. 저편에서 허우 감독과 통역사, 스팟 직원이 향해 오고 있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꾸벅 전했다. 허우 감독이 밝게 화답해주었다. 선물에 고마워하신다고 통역사는 전했다. 붕어빵 가게 앞에서, 그들은 후미지고 어두운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역으로 갔다. (2016)






덧붙임2.

허우 샤오시엔 감독에 관한 짧은 생각



“열네 살, 카오슝에 살던 때다. 점심을 먹고 나면 걸어서 높은 관리들이 사는 관저로 갔다. 담을 넘어 망고나무 위로 올라가 열매를 훔쳤다. 우선 배불리 먹고 나서, 열매를 주머니에 넣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오지는 않는지 뒷길로 누가 다니지는 않는지 무척 긴장이 되었다. 이제 바람이 불 것이고 매미가 울 것인데 그 소리는 과연 어떻게 들려올까. 그렇게 주의를 모은다는 게 이미 하나의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영화란 건 하나의 주어진 상황, 분위기, 정서를 확대시키고 응집시키는 일이 아닐까.”                                                                                              
- 허우 샤오시엔, 서울아트시네마 마스터클래스(2005. 8. 27) 중에서


1. 시네필로서의 자의식이 없었던 사람. 생활과 삶, 그로부터 감각되는 세계가 오직 중요했던 사람. 그 안에서 세상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발견하고, 질박한 응시의 예술을 길어 올려온 사람. 더 다가갈 수도 없고,(’내게 그만큼의 권리가 있을까?’) 더 물러날 수도 없었던 자리.(’이들에 혹여 무감해지는 건 아닐까?’) 딱 그만큼의 거리. 그는 그곳에서 무엇보다 바람을, 햇빛을, 소리를, 사람을, 마음을, 지나간 것을 느껴보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오랜 필름을 볼 때도, 가장 근작을 볼 때도,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지난 풍경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그래왔다. 우리도 그래왔다.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다.

2. 평자들은 [남국재견] 이후 그의 세계가 변모했다 지적한다. ‘완벽히’ 달라졌으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정성일)고까지 한다. 일견 사실이다. 정처없는 인물들, 떠다니는 카메라, 불균질의 시점숏 등이 등장했으니. 시네마의 측면이라면 그렇게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형식 비평을 위한 수사일 뿐, 감독 자신의 내적 동기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보인다. 허우 샤오시엔은 (도약을 갈망하는 여타 예술가처럼) 허물기 위해 허문 일이 없다.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단지 그를 따라 함께 흘러 다녔을 뿐이다. ‘해체'니, ‘비인칭 시점'이니 하는 심오한 결단 같은 것이 거기에 자리했을까.(허우 감독의 주관적·정서적 시점숏은 초기 작품부터 일관되어 온 것이다. 영화적 방법론이라기보단 그의 생활감각에서 빚어진 한 태도라 보는 것이 더 근접할 것이다. 그는 늘 자신의 자리서 주변의 사람과 세계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이 세계의 진실을 포착해 낼 수도 있다는 엷은 믿음을 품었다. 그는 자신의 시선이 혹 시네마의 전통이나 혁신 따위서 이탈되든 그렇지 않든 그다지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 그의 눈에, 이미 세계는 여러 굴절 속에 있다. 사람들도 따라 부유하고 있다. 그는 이들-가령 [남국재견], [밀레니엄 맘보], [쓰리 타임즈] ‘청춘몽(靑春夢)‘의 유령 같은 청춘들-에 합류해 다만 자신도 함께 움직여야한다 생각했을 것이다.(허우 감독은 [밀레니엄 맘보] 인터뷰에서  2011년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영화의 나레이션에 대해 “나이를 먹은 내가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위치이자 현대 3부작이 완성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빨간 풍선] 인터뷰에서는 풍선이라는 기호에 대해 "소년의 곁을 따라다니며 세상을 둘러보고 싶은 내 마음의 시선"이라고 말했다. 성장 4부작에 관해서는, "그건 마치 사진과 같은 기억의 풍경이므로, 보다 정적이고 먼 거리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에게는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판단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그렇다고 ‘지금, 이곳’을 외면하지도 못한 채 그저 그들을 따르는 일. 그것 말고는 그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 ‘무력한 이끌림’. ‘판단없는 응시’. 온전히 허우 샤오시엔의 것이라 부를만한 건 혹여 이것들이 아니었을까.

3. 그의 영화에서 쇼트와 쇼트가 붙지 않고 튀는 순간을 특히 좋아한다.([밀레니엄 맘보]에서 비키의 거실을 비출 때, [카페 뤼미에르]에서 요코가 노면전차를 타고 도쿄 시내를 흐를 때, [섭은낭]에서 은낭의 목욕물을 채우기 위해 시중들이 일을 할 때, 그리고 전계안이 그의 아들과 겨루기 비슷한 장난을 칠 때 등.) 여타의 감독들이라면 그런 연결은 당장 폐기해내고 말 것이다. 편집의 가장 기초를 무시한 연결. 영화과 학생들도 저지르지 않을 실수. 그렇다고 고다르, 트뤼포 식의 의도된 소격효과도 아닌 것. 허우가 그걸 모를까. 천만에. 허우는 그걸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그렇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중이다. 자기 영화에 완전무결이란 필요도 없고, 가능할 수도 없다는 일종의 체념-받아들임. 할 수 있는 만큼만을 해내겠다는 태도인 것이다.(“중요한 건 인물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거다. 구조나 스토리는 좀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인물이며, 또 공간이다.”) 그건 예술에서도, 또한 생활에서도 그가 줄곧 견지하려 애써 온 어떤 자세였다. 생활을 지켜냄으로 예술을 빚는 사람. 이런 예술가와 한 시대의 대기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매우 축복한 일이다. 이어질 배움을 기다린다. (2016)





덧붙임3.

허우 샤오시엔에게서 배운 것들



결국 실패하고 마는 일. 인간의 양태를 벗지 않으려 애를 쓰는 일. 머뭇거리는 일. 속수무책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지나간 시간을 돌이키는 일. 불현듯한 무력감. 어찌해볼 수 없는 회한에 젖어드는 일. 다시 그게 삶이라고 고개를 꾸벅이는 일. 매선 눈으로 먼 풍경을 바라보는 일. 응시. 긴 응시. 뛰어들지 못하고, 바꿔내지 못하고 그저 한없이 바라보는 일. 저 긴 호흡, 느린 걸음. 그 속도만이 자신의 것임을 도리없이 수긍하는 일. 허우 샤오시엔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2016)




덧붙임4.

영화는 영화가 아닌 곳에서 길어져야 한다




지난 봄 새해 선물을 보내 오셨다. 올 봄엔 결혼 선물을 보내 오셨다. 이국의 작은 이에게도 그는 구태여 이런 성가신 일을 한다. 그는 늘 현장에 있다. 풍경과 사람 속에 발딛고 있다. 느긋이 바라보다가도, 긴요한 일엔 재지 않고 뛰어든다. 그렇게 문화 공간을 일구고, 긴 시간 후학들과 토론하고, 억울한 이들과 나란히 서 불복종운동을 한다. 창작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두려워 않는 사람처럼, 작품은 짧은 회차에 하나를 찍거나 오래 간격을 두고 공들인 하나를 겨우 내놓는다. 기회 때마다 그는 말한다. "영화는 영화가 아닌 곳에서 길어져야 한다". 칠십 노인의 뜨거움이다. 나도 그때 그럴 수 있을까. 이런 어른으로 늙어가고 싶다. (2017)






2015. 8. 27.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3




  첫 여행은 터키였다. 누리 빌제 세일란의 [우작]을 보고서였다. 흑해, 보스포러스 해협, 아나톨리아 고원. 그 풍경 속에서라면 한없이 많은 계단이 놓여있는 것만 같았던 당시의 막막함을 얼마라도 위안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울림을 준 영화의 촬영지를 찾아 다니는 건 이후 모든 여행에서의 가장 중요한 일정이 되었다. 대만은 언제고 가야 할 나라였다.(허우 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차이밍량, 이안의 나라!😮) 그러나 어쩐지 자꾸 미뤄져 왔다. 올해는 꼭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오직 10주년이라는 저 의식을 치르기 위해. 시간도 돈도 넉넉지 않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떠나게 되었다. 이해심 많은 여자친구가 경비 일부를 돕고 동행까지 한다. 고맙다. 이 시간 역시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오늘은 ‘SPOT TAIPEI'에서 허우 감독의 [섭은낭]이 첫 상영을 하는 날이다. 또한 우연하게도 10년전 서울에서 허우 감독과 처음 만났던 그날이다. 운이 닿는다면 다시 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0년 전 그 한 번 만남의 기억으로 간직되는 편이 실은 내겐 더 좋다.(2007년 부산에 [빨간 풍선]을 들고 오셨을 때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부러 귀찮게 해드리지 않았다.)  타이페이에 내리면 가장 먼저 허우 감독이 실현한 꿈, 'SPOT TAIPEI'를 방문할 것이다. 그곳에서 [섭은낭]을 보고, [연연풍진], [비정성시]와 [남국재견]의 촬영지를 차례로 순례할 것이다.

2015. 8. 20.

허우 샤오시엔 집 회고전 2015 상영 리스트


허우 샤오시엔 집 회고전 2015 상영 리스트
Retrospective Of HHH At Home 2015 Screening Lists
2015. 8. 1 ~ 2015. 8. 20

1. 고향의 푸른 잔디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 (1983)
2. 펑쿠이에서 온 소년 The Boys From Fengkuei (1983)
3. 동동의 여름방학 A Summer At Grandpa’s (1984)
4. 샌드위치 맨 The Sandwich Man (1983, 단편)
5. 동년왕사 The Time to Live and the Time to Die (1985)
6. 연연풍진 Dust In The Wind (1986)
7. 비정성시 A City Of Sadness (1989)
8. 나일의 딸 Daughter Of The Nile (1987)
9. 황금시대 La Belle Epoque (2010, 단편)
10. HHH : 허우 샤오시엔의 초상
      HHH : Un portrait de Hou Hsiao-Hsien (1997, 다큐)
11. 희몽인생 The Puppetmaster (1993)
12. 호남호녀 Good Men, Good Women (1995)
13. 남국재견 Goodbye South, Goodbye (1996)
14. 해상화 Flowers Of Shanghai (1998)
15. 밀레니엄 맘보 Millennium Mambo (2001)
16. 일렉트릭 프린세스 하우스
      The Electric Princess House (2011, 단편)
17. 카페 뤼미에르 Cafe Lumiere (2003)
18. 쓰리 타임즈 The Three Times (2005)
19. 빨간 풍선 Flight Of The Red Balloon (2007)















2015. 8. 16.

적당한 소비는 건강에 이롭다


  오늘은 사랑하는 나의 여자친구님 생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급하지도 않은 대본을 어서 써내라고 채근하는 선배작가 덕에 일찍 사무실로 들어가보아야 했다. 맛있는 걸 사 먹였으면 그나마라도 덜 섭섭했을 텐데 하..음식마저 별로였다.(차이나팩토리, 저주한다.) 이른 시간에 홀로가 되었다. 뭘 할까 하다가, 서두르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호금전의 [협녀]를 볼 수 있겠구나 싶어 얼른 달려갔다. 근데 여자분들 노출에 잠깐 정신이 혼미해진 탓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열차를 잘못 타고 말았다. 영화도 놓쳐버렸다. 하늘도 먹먹한 색깔이어서 오늘은 뭔가 안 되려나 보다 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저기 알라딘 중고서점이 보였다. 꽤 많은 사람이 들락거리기에 한번 들어가보았다. 별천지였다. 많은 책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구경하고 구경했다. 종류도 양도 생각 외로 방대했다. 기가 찰 정도로 값이 저렴한 책들도 있었고, 이 가격이라면 새 책을 사보는 게 낫겠다 싶은 책들도 있었다. 솔직히 그 시간 동안은 대형 서점에서 운영하는 이런 중고책방이 동네 작은 헌책방들에 얼마나 피해를 끼치고 있는지에 대핸 생각하지 못했다. 소설 몇 권을 샀고 디비디 몇 장을 샀다. 그 중 가장 뿌듯한 건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의 수확이다.(그렇게 찾아 다녀도 없더니만!) 폴커 슐렌도르프의 [양철북]과 비스콘티의 [강박관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샀다.(천원대!) 조금 기분이 풀렸다. 적당한 소비는 건강에 이롭다고 생각했다.


2015. 8. 13.

위선


1. 여인의 아름다움은 30대 후반, 40대에 이르러서야 만개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생각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의 생각이다. 남성의 멋스러움도 역시. 싱그럽고 풋풋한 미도 있지만 더 깊은 미는 역시 삶의 두께가 어느정도 쌓인 뒤에라야 배어나는 거 같다.

2. 위선이더라도 친절한 사람이 좋다. 이건 요즘 생각이다. 예전엔 겉이 위악스러워도 속마음만 따뜻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허나 갈수록 아니다. 겉으로 선하려 애쓰는 사람은 속으로도 얼마간 그 선함이 따라온다. 반면 겉이 사나운 사람은 아무리 본성이 따뜻해도 결국 어떤 선이 그어지고 만다. 내가 느끼는 바 그렇다는 것이다.

2015. 8. 10.

여자친구


여자친구가 부쩍 다시 두통을 호소한다. 사고 후유증도 남은 거 같고, 격무의 피로 탓도 있는 거 같고. 두통의 원인이야 워낙 다양한데, 주치의 선생님은 목 뒤 근육뭉침이 뇌로 가는 혈류를 방해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특별한 병변이 있는 건 아니니 안심하라고 하신다. 다행한 말씀이지만 아파하는 걸 계속 지켜보는 마음이 그렇다고 편해지진 않는다. 얼마 전부터 그간 야심차게 준비해 온 모창과 성대모사를 선보이고 있다. 신승훈, 조성모, 전도연, 오광록, 이순재 선생님까지 했다. 그녀는 머리가 더 아파온다고 그만하라고 한다. 그럼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어니.


2015. 8. 8.

자끄 러끌레르끄의 말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옛 이야기꾼들이 전해주는 광야나 숲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며, 여러분의 아이들도 더 이상 원시적인 것을 경험해 보고, 자기들의 기분에 따라 몸을 풀거나 환상적 느낌에 몸을 달려보는 기회를 가지지 못합니다. 문명의 이기에 익숙한 아이들은 저희들 생각대로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고 ‘놀이 프로그램'이란 교육을 통해서 배우며, 시간이 조금 지나면 경기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모든 게 규격화되어 있어서, 달리고 싶은 곳에서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줄지어 놀이터까지 이끌려 가서, 자격증 소지자의 행동에 따라 체계적으로 몸을 단련하게 됩니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졸업장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한 '자리'가 필요하고 이 자리는 졸업장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이를 믿고 있고, 누누히 강조하며 이 생각을 널리 전파하는데, 이래서 졸업장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겨납니다. 
  이 시대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 가운데 하나는 창조적 노력이 없이 교육을 받아들인 졸업장 인생들 자신입니다. 인간이란 자기가 해낸 것만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오늘의 인간은 그저 졸업장 인간일 뿐 그것으로 그가 박식하고 많은 이들이 말한 바를 알고 있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러나 남들이 말한 바를 그가 모두 모아들인다 한들, 그 자신이 무엇을 말할 수 있기를 어떻게 더 바랄 수 있겠습니까? 
  안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지식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좋은 것인데 인간은 지식의 노예, 졸업장의 노예, 혹은 계획의 노예, 방법의 노예가 될 위험을 안고 삽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고, 바로 인간은 무엇보다도 인간성을 의미하고, 이 인간성은 무엇보다도 정신의 생기요 창조력이며, 노력의 의미이며, 그 개성 자체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 자끄 러끌레르끄, [무지의 찬양]중에서

2015. 8. 4.

걷는 듯 천천히




1. [걷는 듯 천천히]를 달리는 듯 빠르게 읽었다. 그렇게 넘길 책이 아닌데. 다시 돌아가 읽어야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짧은 글 모음집이다. 문체가 너무 좋다. 귀엽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중하다. 사유와 통찰이야 이미 그의 영화들이 말했지만 글에서도 역시 멋지게 묻어난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이런 눈과 마음을 닮고 싶다. 쉽게 읽히면서도 사람과 세상을 깊이 존중하는 마음이 담긴 글. 특히 후쿠시마 사태와 그 이후의 일본을 바라보는 그의 글들에선 여러번 감탄했다. 문명사적 사건 앞에 그 책임자들에 대한 분노와 함께, 그 체제를 또한 유지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지 않는다. 역시 멋진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나저나 모 형님이 아니었다면 출간 소식도 몰랐을 것이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에 이어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라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었는데. 조금 민망했다. 그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번역기 돌려가며 봤던 글들을 이렇게 묶인 책으로 만나게 되니 너무 반갑다. 곁에 두고 자주 읽을만한 책이다. 맘 같아선 한 30부쯤 사서 주변에 돌리고 싶다.

2. 수년전 사회단체에 있었을 때, 내가 처음 맡은 일은 레퍼런스 책 구하기였다. 연구와 활동에 도움될만한 책의 목록을 작성하고 저자에 영향 주었거나 관련지어질 법한 책들의 연결고리를 찾은 다음 그 책들 역시 목록으로 작성하는 일이었다. 사무실이 광화문 근처여서 교보문고를 제 집 드나들 듯 했다. 어느 날인가 크게 경악했던 일이 있다. 아동 코너를 지나고 있는데, 내 눈을 의심케하는 장면이 거기 있었다. 모 출판사에서 나온 [2세 국어], [2세 영어], [2세 수학]. 이름하여 ‘2세 시리즈'였다. 한 귀퉁이에 차곡이 진열되어 있었다. 미친 거 아니야? 2세부터 저 짓거리를 해야해? 같이 갔던 동료와 그런 말을 주고 받았다. 수년이 지난 지금, 2세 시리즈는 참 종류도 다양해졌고 숫제 입구부터 비치되어 있을만큼 인기도 좋은 모양이다. 집단적 광기와 불안의 풍경이다. 부모들이라고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게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모르는 부모라면 그야말로 답없는 거고.) 남들이 시키니까, 내 아이만 뒤쳐지면 안되니까, 나처럼 자라선 안되니까, 나중에 원망들어선 안되니까, 그 불안 때문에들 저러는 걸꺼다. 그리고는 마음 한 구석의 불편감(내 아이에게 이런 일을 시켜도 좋은걸까?)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왜곡 치환하고 애써 덮어버리는 중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알자. 학대는 학대다. 사랑이 아니다.

  도대체 이 사회에서, 이 집단적 광기와 불안과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나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 결혼도, 출산도 참 망설여진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현재 자기가 처한 경제사회적 상황에 더해, 이런저런 사회문화적 고민에다 문명사적 고민까지 짊어지느라 참 수고가 많다. 나 역시 그 중 하나다. 이 피로와 불안의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할 지는 철저히 각자의 몫으로 치환되어버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2세부터 수학을 영어를 국어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그렇게 태초부터 합리적으로 기획되고 찍어내듯 생산된 아이들이 세상에, 자연에, 사람에 벌일 일은 과연 어떤 광경일까. 개인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공동체의 문제고 따라서 제도적으로 (해결은 어렵겠지만) 고쳐나가야 할 일이다. 똑똑한 아이들 몇 명이 이 세상을 이끌고 나머지는 기계와 첨단기술로 채워지는 풍경은 끔찍하다. 나머지 아이들은 허드렛일이나 담당하거나 그도 아니면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할 것이고, 그 똑똑한 몇 사람을 위해 굽신거리며 멸시받는 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정말 그런 세상을 바란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건 그 똑똑한 아이들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3. 걷는 듯 천천히 살아가는 아이들이 더 많아질 세상을 꿈꾼다. 허우 감독과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속 아이들처럼.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지아장커의 영화를 가장 우선 챙기려 하는 건 내가 무슨 대단한 영화광 행세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얼마나 내가 나약한지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언제고 금방 부식되고 말아버릴 인간인지 잘 알기 때문에. 나를 붙잡으려고 그러는거다. 이런 책은 반갑다. 아직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니까. 그가 계속 영화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책도 이따금씩 내주었으면 좋겠다.

2015. 8. 2.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2



1.
  십 년전에 썼던 허우 샤오시엔에 관한 글. 당시 감독론이랍시고 감히 몇 편 끄적였던 것들 중 일부 발췌했다. 다시보니 좀 많이 오글거리나 큰 견해엔 변함이 없다.

“허우 샤오시엔은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결코 세계의 이러저러한 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생활을 그려낼 때에조차 그는 결코 서사를 순서정연히 축조해 나가는 법이 없다. 그런 일엔 애당초 관심이 없는 것이다. 쇼트와 쇼트의 연결ㅡ몽타주를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그의 관심과 전통이 아니다. 그는 하나의 쇼트가 이미 하나의 세상을 품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전체를 구석구석 보여주는 것보다 하나의 결을 천천히 그려내는 것이 훨씬 깊고 진실한 방법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바라본다. 그리고 감각한다. 그것은 어찌할 바 없이 한자 문화권에서 나고 자라 온 자신의 뿌리와 궤적을 수긍해내려는 태도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그의 카메라는 사람과 사물, 세계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긴 시간 공들여 느릿느릿 그들을 느껴본다. 마치 거기가 다가갈 수 있는 마지막 자리이며 그 응시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듯. 그의 영화엔 늘 실내가 있고 실내와 연결된 바깥 창이 있다. 인물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 머문다. 열려진 창 밖에선 역사가 벌어지고 그 창을 통해 생의 불가피한 진물들이 하나 둘씩 집 안으로 침윤해 들어온다. 인물들은 묵묵히 세상의 변화를 살아낸다. 그 풍경을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적막하고 준엄한 관조이다. 감히 나는 그것을 동시대의 가장 윤리적인 시선이라 생각한다.“ (2005.12) 




2.
  8월은 허우 샤오시엔의 달이다. 십 년전 8월 낙원아트시네마에서 그를 만난 이래 그냥 내가 그렇게 정했다.😐 매해 이맘때면 허우 샤오시엔을 다시 꺼내 본다. 마침 타이페이에선 14일부터 그의 회고전이 열린다. 그 기간엔 갈 수 없으므로 집 회고전을 열고자 한다. 이름하여 ’허우 샤오시엔 집 회고전 2015’. DVD로 보유한 열한 편의 작품과 도무지 DVD를 구할 수 없었던 (그래서 파일로 보유한) 여덟 편의 작품, 총 열아홉 편으로 이달을 날 것이다. 어느 씨네마테크나 영화제가 부럽지 않다.




3.
  8월 28일 타이페이서 개봉 예정인 8년 만의 신작 [자객섭은낭] 포스터.





4.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믿는다면 수상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상을 받거나 받지 않거나와 상관없이 내 영화들은 전세계에서 상영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에 심사위원들이 [섭은낭]에 상을 주지 않았다면 우린 돌을 던졌을 것이다. 물론 농담이다.”   (올해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소감 중에서)





5.
  2008년 대만 당국의 싼닝마을(三鶯部落) 개발 계획에 맞서 주민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 삭발 투쟁까지 했던 허우 감독. 집회 현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싼닝 공동체는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패주해오기 훨씬 이전부터 주민들이 고유의 생활 문화를 일구며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다. 납득할 수 없는 명분과 졸속 행정으로 하루 아침에 이주 결정을 내려버리는 건 도무지 말이 안될 일이다.” 그러나 무자비한 이주 및 파괴는 결국 당국의 의지대로 집행되고 말았다. 그의 새로운 영화는 타이페이의 수로 시스템 개발자와 강의 여신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나는 이 영화가 일종의 위무의 형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짐작한다. 진심으로 이런 어른으로 늙어가고 싶다.


2015. 8. 1.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 #1





  10년 전 8월 27일, 허우 샤오시엔 감독을 만났다.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서 열린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에서였다. 이날은 영화 상영 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예정되어 있었다.(상영작은 [펑쿠이에서 온 소년]이었다.) 나는 상영시간 보다 좀 늦게 도착했다. 입장이 불가한 시간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극장 밖 공터로 나와야 했다. 쭈뼛쭈뼛 맴돌고 있는데 저 편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향해 왔다. 허우 감독과 차이밍량 감독이었다.((지금은 고인이 되신) 에드워드 양 감독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어찌나 가슴이 쿵쾅거리던지. 손과 발까지 다 부르르 떨었던 거 같다. 그들은 저쪽 구석진 곳으로 가 담배를 나눠 물었다. 지는 해를 등진 채로 무슨 이야기인가를 한참 서로 주고 받았다. 역광을 받은 그들은 신비로운 느낌마저 자아냈다. 기자들은 그 장면을 더 잘 담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나는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저만치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날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내겐 유독 이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조조는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리게 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내가 세상에 지겠다. 세상에 내가 복종하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나에게 복종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실 그때 나는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어렸고, 뜨거웠다. 세상에 맞서고 사람에 맞설 때였다. 나이 든 어른의 다소 비겁한 변명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조금씩 저 말의 속뜻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건 결국 사람과 세상에 예의를 지키겠다는 말이었다. 세상을 바꾸거나, 나서서 누군가를 가르치지 않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뜨겁게 응시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스스로만을 훈계하겠다는 다짐 같은 거였다. 그의 모든 영화들이 이미 그걸 소리없이 웅변하고 있었다.

  마스터클래스가 끝나고 관객들이 다 빠져나간 뒤에,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마침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있었다.(단편 연출부 촬영 헌팅 중이었다.) 어렵사리 사진 촬영을 부탁드렸다. 그는 빙긋 웃었다. 뽑힌 인화지에 사인을 해준 뒤 내 두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내 모습이 아무래도 가여웠던 모양이었다. 뭉툭하고 작았지만 매우 따뜻하고 단단한 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저 사진을 보고 또 들여 보았다. 그리고 아직 내 손에 남은 온기를 되짚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그때까지도 얼얼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