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7.

우연의 마법




인간 이성의 촘촘한 기획을 신뢰하는 대신 우연과 운명과 욕망의 거대한 장난을 신뢰하는 편이 삶의 진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가 무엇보다 우연의 마법을 그려내는 사람이라 좋다. 그 우연의 연쇄 속에 밥 먹고, 취하고, 섹스하고, 다투고, 삐지고, 외롭다가, 텅 빈 거리에 불시착하는 것. 다시 속을 줄 알면서도 또 살아보는 것. 그게 사실 우리 삶의 거진 전부 아닌가? 그렇게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언제나 “예쁘다"고 말하는 이 사람이 좋다.

추신. 이날 강연에서 어떤 여성 청중이 대뜸 마이크에 대고 요청했다. “감독님, 이따 저하고 술한잔 해주실 수 있나요?” 그가 대답했다. “네..뭐 그러죠.”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두 사람은 한 우산을 쓰고 어디론가 향해 갔다.

2015. 7. 19.

산책. 2015년 여름


산책. 2015년 여름









희망 타투


저런 모양으로 새겨보고 싶습니다만..
(점 두 개는 원래 내꺼임)


2015. 7. 17.

있을 유(有), 늦을 만(晩)


  있을 유(有)에 늦을 만(晩)자를 쓴다. 풀이하자면 ‘천천히 살아라’쯤 된다. 흔한 이름이 아니어서였을까. 놀림도 참 다양하게 들었다. 최초의 별명은 만보계, 만세, 만두 따위였다. 퍽이나 유치하다 생각하면서도 어쩌다 분식집에 가거나 급식에 만두가 나오는 날이면 괜시리 내가 먼저 움츠러들고 그랬다.(그렇다고 만두를 싫어해 본 적은 없습니다.😂) 만원권, 만득이로 이어지던 별명은 중학교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표의형으로 진화했다. 뭘해도 좀처럼 서두르는 법이 없었기에(군대에서 마저도!) 친구들과 선생님 양 편으로부터 ‘네 이름 참 자알 지었다'는 비아냥을 듣는 일이 왕왕 있었다. 그건 억울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이었고 그닥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못했기에. 그러나 ‘(결과는 없고) 이유만있다’ 식의 통사형 별명은 가장 오래 들어야 했으면서 가장 수긍할 수 없는 놀림이었다. 결과는 없었을지 몰라도 변명을 많이 하며 살진 않았다. 주관이 특별나서가 아니라 그냥 귀찮아서였다. 그건 그저 내 이름을 활용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굳이 말한다면 만두나 만득이와 다를 바 없는 유치함으로 회귀한 거다. 하여간 나는 내 이름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하며 살아온 거 같다. 아주 어렸을 땐 왜 내 이름을 이따위로 지은거냐며 자주 툴툴거렸다. 공동 책임자인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신문이나 야구중계 따위로 애써 눈을 돌리셨다. 그러나 할머니는 늘 내 두 눈을 바로 보며 힘주어 말씀하셨다. “네 이름은 아주 유명한 작명소에서 매우 많은 돈을 주고 지은 귀한 이름이란다. 그러니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단다.“ 할머니에겐 유명하고 비싼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좋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 ‘유명하고 비싼 부적들'도 집안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어야 했던건가 보다. 흡사 만신 집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었다. 그것은 엄마의 베갯잎 속에도 아빠의 양복 속주머니에도 내 유치원 가방에도 곱게 접혀 들어 있었다. 우리가 할머니 집을 나와 독립하게 된 결정적인 사연이 되어 주었다.

  시간이 적이 흘렀다. 할아버지는 지금 저기 하늘나라에 계시다.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십 년 넘는 세월을 침상에 누워계신다. 그때 그 단호하고 우렁찼던 할머니 모습은 이제 없다. 이따금 할머니 허리 맡에 앉아 잠든 할머니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내 이름의 귀함을 역설하시던 그 눈빛이 떠오른다. 지금은 할머니가 구태여 그리 강조하시지 않아도 스스로 내 이름을 아끼게 되었다. 있을 유(有), 늦을 만(晩). 천천히 살아가라는 뜻이다. 조금 돌아 가듯 사는 것, 그게 순리란다. 앞서가는 놈이나 뒤쳐져 따르는 놈이나 결국 긴 시간의 풍경 안에선 고만고만한게 아니겠냐, 질끈 그저 제 갈길 가다보면 뭐라도 되어있지 않겠냐. 나직이 내 이름을 발음해 볼 때면 어디쯤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해오는 것만 같다.

2015. 7. 15.

산책. 2015년 여름


2015년 여름












2015. 7. 14.

잊지 않는다는 것





  수년 전, 사회운동단체에 몸을 담았었다. 소위 ‘21세기적 새로운 운동 방향'에 대한 세미나와 열띤 토론이 거의 매일 있었다. 나는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종종 침묵했다.(그러면서도 2년을 있었다). 그들의 단호함, 확실함, 주저없음이 난 그저 신기하게만 보였다. 그 운동은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분명 세상에 얼마간 기여를 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은 아니었다.

  여느 날과 같은 날이었다. 맑은 차 한 잔씩이 각자의 앞에 놓였다. 그날의 텍스트는 조성오 씨의 [철학 에세이]였다. 한 원로 선배(?)가 잠시 동석했다. 그 선배는 이런 말을 남기고 갔다. “가장 중요한 운동의 무기는 ‘기억'이다. '기억'의 힘은 짱돌보다도, 대자보 한 장 보다도 강하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것에 각자 어떻게 반응했는지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기억 투쟁'이다” 나는 저 장엄한 수사에 탄복했다. 놓칠세라 노트에 꼼꼼히 적어두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다시 읊조려 보았다.

  지금도 이따금 저 말을 되짚는다. 기억. 잊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저항이 될 수 있다는 것. 삶의 테가 더해갈수록 그 말의 무게도 더해간다.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살면서, 부대끼면서 느껴가고 있다.

2015. 7. 12.

한여름의 판타지아


  어언 10여년 전 일이다. 나는 학교를 따분해하는 학생이었다. 상업 영화판 막내로 들어갈 기회가 찾아왔고, 덥썩 그 제안을 안았다. 영화 창작의 비밀이 도무지 궁금해서이기도 했지만 역시 무엇보다 주연을 맡은 여배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팬이었다.(지금도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새얼굴들 또한 눈에 들어온다.) 그녀와 함께 작업 할 수 있다니. 이건 뭐 꿈에서나 있을 (요즘 말로) 개이득이었다. 우리 팀의 첫인상은 좋았다. 사람 좋게 웃으며 나를 앉히고 갈비를 뜯겼다. 당시만해도 막내는 거의 인간 취급을 못 받았더랬는데(요즘은 어떨까?) 이들은 달랐다. 청소도 각자, 빨래도 각자, 어렵고 복잡한 건 선배들이, 야식 결제도 선배들이(아 얼마나 아름다운 원칙인가!). 내가 무슨 호사를 누리고 있는 건가 싶었다. 흠모란 말이 모자라던 여배우에, 평소 좋아하던 감독님에, 이토록 인격적인 선배들이라니. 그러나 그것은 첫 한 달 동안의 이야기였다. 문턱을 넘어서자 비극은 곧바로 시작되었다. 차마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시절 내가 당했던 모욕과 죽어라 내달렸던 뺑이질(이런 표현을 용서하시길. 다른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은 지금 생각해도 저릿저릿하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날이 많아 그 좋아하던 여배우 얼굴도 선명히 본 일이 드물었다. 나는 아직 미필이었는데, 이때의 경험들 덕인지 군생활은 수월하게 한 편이다.(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첫 한 달만은 그러니까, ‘한여름의 판타지아’였던 셈이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첫 전체 회식자리였다. 내성적인 성격이던 그 여배우는 스텝들의 성화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고 갈채가 이어졌다. 그녀는 수줍게 푹 고개를 떨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가볍게 살랑거리는 몸짓과 함께 그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 그녀가 내 맘에 들어오는 것이 육체적으로, 물리적으로 느껴졌다. 심히 요동치는 가슴을 어쩌지 못했다.(여자친구, 안보고 있지?) 인생의 베스트 장면 중 하나로 아주 잘 간직 중이다. 퍽 고달팠으나 또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덧1 : 그 여배우는 최근에 꽤 잘 생긴 남자배우와 함께 통속 멜로를 하나 찍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덧2 : 다섯 달 동안 그렇게 혹사 당하던 나는 백 만원도 채 받지 못하고 군에 입대해야 했다. 지금도 한국 영화는 엔딩 크레딧을 아주 꼼꼼히, 유심하게 살피는데, 그들의 이름은 여전히 오르고 있다. 잘 들 살아가는 모양이다.  (2015)

2015. 7. 4.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글


“나는 사물을 보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으므로 이제 무엇인가 자신의 일에 착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물 여덟이다. 그런데도 나의 스물 여덟 해는 거의 텅 비어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카르파치오에 대해서 논문을 썼고 그것은 형편없는 것이었다. <결혼>이라는 희곡을 시도해 보았으나, 그릇된 관념을 애매한 수단으로 증명하려고 한 데 지나지 않았다. 나는 시도 몇 편 썼다. 그러나 어린 나이로 시를 쓰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은 없었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우선 꿀벌처럼 꿀과 의미를 모아야 한다. 그래야만 마침내 마지막에 겨우 열 줄 정도의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갯짓을 느껴야 하고, 아침에 피어나는 작은 풀꽃의 고개 숙인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또 미지의 나라들의 길, 뜻밖의 해후,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보이는 이별, 또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남겨 둔 어린 날의 추억, 모처럼 기쁨을 가져다주었는데도 그것을 잘 몰랐기 때문에 잔혹하게 마음을 슬프게 해드린 양친에 대한 행동, 온갖 중대한 변화를 가지고 이상한 발작을 보이는 소년 시절의 병, 물을 뿌린 듯이 고요한 방에서 보낸 하루, 바닷가의 아침, 바다 그 자체의 모습, 저쪽 바다, 이쪽 바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함께 덧없이 사라진 여로의 밤들, 그런 것들을 시인은 회상할 수가 있어야 한다.
   아니, 그저 모든 것을 회상할 뿐이라면 사실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추억이 많아지면 다음에는 그것을 망각할 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추억이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커다란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어느 시인의 고백] 중에서

2015. 7. 2.

산책. 2015년 여름


산책. 2015년 여름












2015. 6. 17.

뽀미


어머님이 누구니
널 어쩌면 좋니


  



2015. 6. 16.

6주년


나의 여자친구. 천문학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새로운 행성이 발견되고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모를까, 그 전까지 당신은 내가 아는 지구상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6주년 진심으로 축하해. 앞으로도 잘해보자.

2015. 6. 3.

엄마


카메라에 대한 엄마의 저항은 완강하다. 사진 찍히기도 어려워하지만 다큐 작업에는 더 거부감을 드러낸다. 엄마는 아름다운 여자다. 외모도 마음도. 다만 당신이 그걸 모를 뿐이다. 그렇게 지난 세월을 사셨다. 좁은 세계 속에. 낮은 자존감 속에. 다 늙어서 뭐하는 일이냔다. 일단은 카메라를 내려 놓는다. 대상이 원하지 않을 때, 혹은 찍는 이가 더는 다가갈 수 없다고 느낄 때, 카메라를 내려 놓는 것이라고, 나는 [송환]의 김동원 감독에게서 배웠다. 그래야 할 것이다. 대체 왕빙은 어떻게 그 무지막지한 근접조우를 한 것일까. [철서구]의 노동자들은 마치 자신이 찍히고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한다는 양, 날 것의 모습이다. 고추를 덜렁거리며 무심한 남자들이 카메라 앞을 지나가고, 욕설과 음담패설도 내키는대로 흘러 들려온다. 유치한 싸움에 뛰어드는 장면은 숫제 카메라가 완벽한 목격자가 되기라도 해야 한다는 양 따라 붙는다. 흡사 투명인간이 된 왕빙은 달랑 소형 DV 한 대를 들고 사라져가는 공장과 마을 이곳저곳을 거침없이 누빈다. 2년 간 촬영 없이 관계 맺기에만 몰두했다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신기한 일이다. 왕빙에 관해선 하여간 요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허우 샤오시엔과 정반대의 자리에서 카메라의 윤리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다시 엄마의 이야기.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을 담아낼 생각인데, 벌써 제목을 고민하고 앉아 있다. 시작할 땐 [나의 어머니]로 정했다. 허나 왠지 심심한 거 같기도 하고, 또 왠지 난니 모레티 근작을 따라한 거 같아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알모도바르를, [친애하는 당신]은 아피찻퐁을 떠오르게 하므로 역시 후보서 삭제.(정말 괜찮은 제목인데.) 옆에서 보고 있던 여자친구가 답답했는지 하나를 제안해왔다. [뜨거운 모자]. 듣자마자 뿜었다. 아니 무슨 저질 삼류 포르노 제목 같잖아. 나도 그녀도 객쩍게 웃었다.

2015. 6. 2.

농담


이 지독한 세계에서, 우리는 꺼질듯 결코 꺼지지 않는 작은 불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용이 무엇이든 하는 말마다 네거티브한 사람들과 있다 보면 참 기가 빨린다. 짐짓 위트와 포지티프함으로 방어 해보려 해도 번번이 쉽지 않다.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라고 쉬워서 농이나 치며 사는 거 아니다. 농담이 얼마간 우리를 구원한다고 믿기에 그러는 거다. 그게 할 수 있는 한편의 저항이라 믿으므로 그러는 거다.

2015. 5. 22.

섭은낭 칸 프리미어 상영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섭은낭]이 칸에서 상영되었다. 트위터에 속속 단평들이 올라오고 있다. 호평이 우세하다. 얼마나 기다려왔나. 처음 이 기획을 들은 지가 십년이 넘었다. 올해 부산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슴이 설렌다. 장철, 호금전의 무협과 또 다른, 아주 시적이고 우아한 무협이 탄생했을거라 기대한다. 라이브로 포토콜과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밝고 자신에 찬 표정들이 보기 좋다. 어서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덧붙임.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 영화의 대사는 다 해서 스무 개 밖에 되지 않는단다. 또한 흑백의 1:1.33 화면비로 시작해 점차 컬러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로 확장해 나간단다. 몇 차례 암전과 묵음으로 장면을 잇고 감정의 추이를 따른단다. 이 70세 감독의 실험은 어디까지인가. 서사의 정형을 그리기보다 마음의 작은 진폭을 담는데 더 깊은 관심을 가져온 거장의 새로운 세계가 정말 그립다.




2015. 5. 20.

여자친구


  보름 전 여자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벼운 것이었고 그래서 우선 감사해했다. 병실에서 그녀는 곧잘 웃었다. 밥도 씩씩하게 잘 먹었다. 산책도 매일 했다. 어느새 마음을 내려놓고 함께 재잘댔다. 언제나처럼 같아서 그곳이 병원이었음을 까먹은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독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중이다. 퇴원한 지 나흘째 극심한 두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다시 입원을 시켜야 할까.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짐짓 그 쾌활함이 얼마간 나와 가족들을 배려한 가장됨이었음을.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온 몸이 부어 링겔을 꽂고 있으면서도 구성안을 넘겨야 한다며 밤을 새는 사람이다. 충분히 가져왔는데도 내가 갈아입을 속옷을 몰래 장바구니에 넣는 사람이다. 책임감 많고 사려 깊은 사람. 그러면서도 꼬인 데 없이 맑은 사람.

  충분한 휴식 뒤에도 통증이 계속되니 한없이 마음이 무겁다. 재입원을 권유하지만 순순히 받아 들지 않는다. 무엇이 그녀에게 최선일까.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차라리 그 편이 좋겠다.

2015. 5. 13.

계속해보겠습니다


  살아보니까 (헐.. 꼰대스러움?) 사람은 결국 저마다의 방식으로 ‘견디며'들 살아가는 것 같다. 끊임없이 상처 주고, 또 입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여하간 삶이 지속되고 있는 건 나름의 기제들이 각자 그런대로 버텨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 이를테면 당신에겐 종교가, 나에게는 음악이, 또 누군가에겐 여성/남성 편력이, 그도 아니면 술이, 약이, 맛있는 음식이, 여행이, 쇼핑이, 권력욕이, 창작열이, 정의감이, 부채감이, 일상의 소소함들이…등등등. 대부분이 공허하나 스치듯 반짝이는 충만의 시간이 있으므로, 어떻게든 살아들 가는 게 아닌가 한다. (오 세상에 저는 너무나 행복해서 그런 생각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데요,라고 하신다면, 뭐 죄송합니다ㅜ) 나도 그 순간들이 있어 산다.

  결국 존재감이 문제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이 한 생을 투쟁하며 사는 것이다. 세상에 오롯이 내 존재 하나 바로 설 수 있다면, 그만큼의 영토만 허락될 수 있다면 우리의 고통은 이처럼까진 아닐 것이다. 사정이 물론 모두 같지는 않다. 지구 저 편에는 미음을 삼킬 힘도 없어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또 어디엔가는 끊이지 않는 포격과 총성으로 피눈물을 삼켜야 하는 이들이 있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까지 참혹하지 않다고 해서, 그게 그 즉시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 행복으로 직행해야 하는 당위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어른들은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과 가난은 우리가 다 겪어냈으니 너희들은 마음껏 번영의 세상을 살라고, 그러지 못하는 자들은 문제가 있는 거라고 말한다. 당신들의 노고에는 감사를 드린다. 하지만 각자의 삶에는 저마다의 장소와 시간이 고이게 마련이다. 그것이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서로 다른 모양의 짐을 짊어 지운다.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수고를 하며 살고 있고, 따라서 함부로 말해질 수 없다. 모든 인간이 결국은 안타깝고, 처연하게 아름답다.

  황정은 작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좋아한다. 특히 이 문장,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며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한편 생각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다시 읽어도 마음이 동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아무 의미가 없는 텅 빈 기표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며, 맛있는 것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며, 이따금 싸우기도 하며, 화도 내며. 이 모든 풍경들을 떠올리면 문득 그 자체로 벅차 오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이 한마디 작은 읊조림은 그러니까 얼마나 숭고한 건가. (2015)

2015. 5. 2.

산책. 2015년 봄. 폴 매카트니


산책. 2015년 봄. 폴 매카트니




  







2015. 5. 1.

산책. 2015년 봄


 2015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