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30.

인생영화 2015


  해마다 새로 작성하던 인생영화 리스트를 올해부터 5년 주기로 한 번씩 작성하기로 했다. 목록에 큰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데다가, 그 해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연말 올해의 영화 리스트로 충분한 거 같아서다. 이미 지난 봄에 한 차례 올린 바 있지만 5년 주기를 맞추기 위해 2015년이 가기 전 구태여 한 차례 더 정리했다.

  저 영화들은 내 영화사 최고 걸작 목록이 아니다. 나는 그만큼의 방대한 이해와 깊이를 갖추지 못했다. 다만 저들은 특정한 시기 또는 일정한 세월 동안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거나 깊은 반성과 각성으로 이끈 작품들, 또는 아주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작품들이다. 어딘가 막혔다는 기분이 들 때마다 다시 꺼내보고 재차 곱씹는 작품들. 생활의 계속적인 영감과 실천으로 나를 끌어 당기는 목록들이다.

  해가 거듭될수록 내가 나고 자란, 나를 품어준 공간과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세계화란 말조차 빛바랜 듯 광속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오늘,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딛고 선 이 땅, 내가 생활하고 감각하는 지금 이곳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아닌가 싶다. 아시아 영화 카테고리를 새로이 추가해 집어 넣은 까닭이다. 서구 영화의 문법과 전통에서 비껴나 아시아에서 아시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거기에만 자리하는 어떤 불가피한 태도에 관해 말하고 있는 영화들이 주로 포함되었다.






2015. 11. 28.

허우 샤오시엔 감독에 관한 짧은 생각



“열네 살, 카오슝에 살던 때다. 점심을 먹고 나면 걸어서 높은 관리들이 사는 관저로 갔다. 담을 넘어 망고나무 위로 올라가 열매를 훔쳤다. 우선 배불리 먹고 나서, 열매를 주머니에 넣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오지는 않는지 뒷길로 누가 다니지는 않는지 무척 긴장이 되었다. 이제 바람이 불 것이고 매미가 울 것인데 그 소리는 과연 어떻게 들려올까. 그렇게 주의를 모은다는 게 이미 하나의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영화란 건 하나의 주어진 상황, 분위기, 정서를 확대시키고 응집시키는 일이 아닐까.”
                                                                                           
- 허우 샤오시엔, 서울아트시네마 마스터클래스(2005. 8. 27) 중에서


1. 씨네필로서의 자의식이 없었던 사람. 생활과 삶, 그로부터 감각되는 세계가 오직 중요했던 사람. 그 안에서 세상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발견하고, 질박한 응시의 예술을 길어 올려온 사람. 더 다가갈 수도 없고,(’내게 그만큼의 권리가 있을까?’) 더 물러날 수도 없었던 자리.(’이들에 혹여 무감해지는 건 아닐까?’) 딱 그만큼의 거리. 그는 그곳에서 무엇보다 바람을, 햇빛을, 소리를, 사람을, 마음을, 지나간 것을 느껴보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오랜 필름을 볼 때도, 가장 근작을 볼 때도,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지난 풍경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그래왔다. 우리도 그래왔다.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다.

2. 평자들은 [남국재견] 이후 그의 세계가 변모했다 지적한다. ‘완벽히’ 달라졌으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정성일)고까지 한다. 일견 사실이다. 정처없는 인물들, 떠다니는 카메라, 불균질의 시점숏 등이 등장했으니. 시네마의 측면이라면 그렇게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형식 비평을 위한 수사일 뿐, 감독 자신의 내적 동기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보인다. 허우 샤오시엔은 (도약을 갈망하는 여타 예술가처럼) 허물기 위해 허문 일이 없다.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단지 그를 따라 함께 흘러 다녔을 뿐이다. ‘해체'니, ‘비인칭 시점'이니 하는 심오한 결단 같은 것이 거기에 자리했을까.(허우 감독의 주관적·정서적 시점숏은 초기 작품부터 일관되어 온 것이다. 영화적 방법론이라기보단 그의 생활감각에서 빚어진 한 태도라 보는 것이 더 근접할 것이다. 그는 늘 자신의 자리서 주변의 사람과 세계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이 세계의 진실을 포착해 낼 수도 있다는 엷은 믿음을 품었다. 그는 자신의 시선이 혹 시네마의 전통이나 혁신 따위서 이탈되든 그렇지 않든 그다지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 그의 눈에, 이미 세계는 여러 굴절 속에 있다. 사람들도 따라 부유하고 있다. 그는 이들-가령 [남국재견], [밀레니엄 맘보], [쓰리 타임즈] ‘청춘몽(靑春夢)‘의 유령 같은 청춘들-에 합류해 다만 자신도 함께 움직여야한다 생각했을 것이다.(허우 감독은 [밀레니엄 맘보] 인터뷰에서  2011년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영화의 나레이션에 대해 “나이를 먹은 내가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위치이자 현대 3부작이 완성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빨간 풍선] 인터뷰에서는 풍선이라는 기호에 대해 "소년의 곁을 따라다니며 세상을 둘러보고 싶은 내 마음의 시선"이라고 말했다. 성장 4부작에 관해서는, "그건 마치 사진과 같은 기억의 풍경이므로, 보다 정적이고 먼 거리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에게는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판단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그렇다고 ‘지금, 이곳’을 외면하지도 못한 채 그저 그들을 따르는 일. 그것 말고는 그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 ‘무력한 이끌림’. ‘판단없는 응시’. 온전히 허우 샤오시엔의 것이라 부를만한 건 혹여 이것들이 아니었을까.

3. 그의 영화에서 쇼트와 쇼트가 붙지 않고 튀는 순간을 특히 좋아한다.([밀레니엄 맘보]에서 비키의 거실을 비출 때, [카페 뤼미에르]에서 요코가 노면전차를 타고 도쿄 시내를 흐를 때, [섭은낭]에서 은낭의 목욕물을 채우기 위해 시중들이 일을 할 때, 그리고 전계안이 그의 아들과 겨루기 비슷한 장난을 칠 때 등.) 여타의 감독들이라면 그런 연결은 당장 폐기해내고 말 것이다. 편집의 가장 기초를 무시한 연결. 영화과 학생들도 저지르지 않을 실수. 그렇다고 고다르, 트뤼포 식의 의도된 소격효과도 아닌 것. 허우가 그걸 모를까. 천만에. 허우는 그걸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그렇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중이다. 자기 영화에 완전무결이란 필요도 없고, 가능할 수도 없다는 일종의 체념-받아들임. 할 수 있는 만큼만을 해내겠다는 태도인 것이다.(“중요한 건 인물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거다. 구조나 스토리는 좀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인물이며, 또 공간이다.”) 그건 예술에서도, 또한 생활에서도 그가 줄곧 견지하려 애써 온 어떤 자세였다. 생활을 지켜냄으로 예술을 빚는 사람. 이런 예술가와 한 시대의 대기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매우 축복한 일이다. 이어질 배움을 기다린다. (2015)


2015. 11. 23.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나는 이분들이 그냥, 아무런 조건없이, 너무너무너무×100만 좋다. 많은 돈 없이, 대단한 지위 없이, 넓은 인맥 없이도, 당신 삶의 위엄을 나직이 일구고 지켜오신 분들. 하실 수 있는 만큼만 행동하고 늘 행함보다 적은 말씀만 뱉어오신 분들. 존재만으로도 그저 눈물겨운 등불이 되어주시는 분들. 언젠가 저런 내음을 나도 풍길 수 있을까. 글쎄. 아마도 힘들것 같다.


2015. 11. 16.

결혼은 미친 짓


저 철부지 녀석이 저렇게 작품같은 웨딩사진과 신혼사진들을 잊을만하면 보내와 놓고선, “친구. 결혼은 미친 짓이라네. 잊지 말게나.“라고 당부해온다.








2015. 11. 14.

술김에


술김에 올리는 포스팅.

1. 응팔의 저 우정의 공동체가 부럽다. 내 주변에도 물론 좋은 사람들이 많지만 대개 그만큼 각자의 벽도 높은 사람들이라 종종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고 못났으면 얼마나 못났을까. 사랑, 우정, 환대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나란 존재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태어난다. 절대 저 홀로 사람이 되는 길은 없다. 더럽고 치사하고 ㅈ같더라도 결국 사람 속에서 이룩해야 한다.

2. 파리 테러는 수습중이고 진행중이며 전면적으로 닥쳐올 근미래의 일이기도 하다. 죄없이 운명을 달리한 이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천국이 있다면 그곳으로 향하시길 깊이 바란다. 그러나 이 사건이 무차별적인 이주민 혐오와 특정 종교 혐오로 증폭되는 건 안될 일이다. 필사적으로 구분지어야 한다. 저들은 이미 진실한 신도가 아니다. 어떤 종교든 진실하게 믿는 이들은 그러는 법이 없다. 교조적 추앙이 아니라 신과의 대화 속에 자신을 돌아보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교지만 이따금 이태원 이슬람 모스크에 들어가 평온을 느낀다. 그곳의 친구들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결한 사람들이다. 극히 일부의 망태를 전체로 오인하지 말자.

3. 광화문의 시민들. 오늘 수고 많으셨다. 나는 오늘 무력했다. 신문을 읽었고 운동을 했고 책을 읽었고 약간의 일을 했다. 당신들은 얼마나 따가웠을까.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싶진 않지만, 팩트TV를 보고 있자니 한진 중공업 2차 희망버스 때가 생각났다. 김진숙을 보기 위함 단 그것 하나 뿐이었는데 캡사이신을 온 구멍으로 맞아들여야 했다. 결국 김진숙은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한가지 할 말이 있다. 그 운동은 필요하지만 그 운동만으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차벽을 부술 생각 하지 마시라. 청와대로 진격할 생각 마시라. 우리만 다친다. 그냥 그 목소리를 보여주는 거면 족하다. 나머지는 각자의 생활에서 자신만의 작은 혁명을 이룩하시라. 그 편이 훨씬 급진적이다.


2015. 11. 13.

산책. 2015년 가을


안녕 씨네코드 선재
2015년 가을














2015. 11. 12.

에밀 졸라의 글



게다가 그녀는 로랑의 생활에 균형을 잡아주었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편안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유익하고 필요한 물건처럼 그녀를 받아들였다. 로랑은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는지는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또 그녀에게 충실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전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전부였다.
                                                               
         - 에밀 졸라, [테레즈 라캥] 중에서 

2015. 11. 4.

영화보다 생활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한 꼬마가 계단을 걸어 내려 오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 조그맣지만 단단해보이는 체구. 눈인사를 나눴다. 계기판 숫자를 바라보았다. 17층에서 오래 멎고 있다. 젠장 또 17층이다. 저 집엔 대체 누가 사는 걸까. 그때 뒤에서 폴짝폴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그 꼬마였다. 팔벌려 뛰기를 하듯 허공으로 양팔을 휘젓고 있었다. 벌써 호흡이 거칠었다. 뭐하고 있는 걸까. 그제서야 센서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공동 현관 유리문이 드르륵 열렸다. 꼬마는 초원처럼 밖을 달려 나갔다. 앗! 올해 본 어떤 영화보다도 귀엽고 사랑스런 장면이었다. 영화보단 역시 생활이고 삶이 먼저 아닌가 생각했다.

2015. 11. 3.

5 년

  2011년 3월 내전이 시작되었다. 벌써 5년의 세월이다. 8만여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그중 7000명은 아이들이었다. 정부비판 낙서로 시작된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은 아랍의 봄기운을 빌어 타고 삽시간 화마처럼 온나라를 집어삼켰다. 연일 이어진 폭격, 방화, 공습들. 자유의 거리는 지워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득했던 골목길도 사라졌다. 폐허의 잔해 더미와 피로 흥건한 죽음의 냄새만이 남았다. 2013년 여름, 이스마엘은 마지막 메일을 보내왔다. “지금 이곳엔 죽음의 기운밖에 없어. 저번달엔 에븐시장 한복판에 TNT폭탄이 떨어졌다니까. 준비되는대로 여길 뜰거야. 우린 정부군도 반군도 서방 지원 세력도 아무도 믿지 않아. 모두 다 적일 뿐이야.“ 그가 살아 남았는지 그랬다면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이후 소식은 모른다. 의사가 되겠다던 알레포 시장의 요거트 소년과, 컴퓨터 공학도가 되겠다던 홈즈의 소년과, 성직자가 되고 싶다던 라타키아의 소녀도 역시 어찌됐는지 모른다.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 운명은 어째서 아직까지도 저들에게만 그토록 무거운 짐을 내려 지우는 것일까.












2015. 11. 2.

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2015 비공식 트레일러 (남국재견 버전)




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2015 비공식 트레일러
(남국재견 버전)

Hou Hsiao-Hsien Retrospective 2015 in Seoul Unofficial Trailer
(Goodbye,South Goodbye Version)

Shifen(十分). 2015

2015. 11. 1.

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2015 비공식 트레일러 (밀레니엄 맘보 버전)



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2015 비공식 트레일러
(밀레니엄 맘보 버전)

Hou Hsiao-Hsien Retrospective 2015 in Seoul Unofficial Trailer
(Millennium Mambo Version)

Keelung(基隆). 2015

2015. 10. 23.

산책. 2015년 가을


2015년 가을

















2015. 10. 22.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1. 전 여자친구를 우연히 만난 일이 있다. 몇 년 전 일이다. 그냥 지나치기 모한 상황이었다. 그이도 나도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일로 함께 시간을 제법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카페에 들어갔다. 이런저런 근황을 묻고 대답했다. 차를 다마시고 일어나려는데, 불쑥 그이가 말했다. “난 오빠가 불행해졌으면 좋겠어.” 나는 말문을 잃고 말았다. 그이는 내 정지된 얼굴에 쐐기를 박듯 한 번 더 또렷이 말했다. “난 오빠가 정말 불행해졌으면 좋겠어.”

2. 좀 다르지만 비슷한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익명의 분으로부터, 전혀 예상치못한 순간에. 내 메일주소는 어떻게 아셨는지. 그분은 철저히 장막 뒤에 숨어 계셨다. 이 메일을 위해 급히 만든 계정인 듯 했다. 텀블러를 타고 오신 건지 현실 속 내 아는 분인지 혹은 전혀 다른 세계의 분인지 가늠할 길이 없었다. 다만 문체로 보아 남성분은 아닌 듯 싶은데 그 역시 확실치는 않았다. 덕분에 기분이 유쾌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괘념할만한 성질도 아니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하루를 시작했다.

3. 그분 말씀의 요지는 (워낙 횡설수설이라 겨우 파악했는데) 그냥 내가 싫다는 것이었다. 내 사진도, 글도, 영상도. 잘난 척 하지 말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4. 피드백은 감사한 일이다. 귀담아 듣겠다. 다만 당신도 태도가 좀 정중했으면 좋겠다. 성인이라면. 비판을 할 땐 논리와 예의를 갖춰야 한다. 당신 같은 식이라면 응석으로 밖에 받아들일 수가 없다. 덧붙여 꼭 알아주셨으면 하는 점이 있다. 여기는 공개된 공간이지만 내 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글은 나를 위해 쓰여졌다. 다만 익명의 장에도 열어둠으로써 스스로 다짐을 강화하려는 데 목적을 두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연예인도 아니고 비평가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다. 일개 생활인이다. 내게 무엇을 기대하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읽어봐도 그 메일은 무례했다. 당신도 알리라 믿는다.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다시 메일 한 번 주시길 바란다. 언제든 당신과 대화하고 싶고 또 그럴 수 있다.

2015. 10. 19.

대리사회


  스스로 해낸 만큼이 결국 자기 자신일텐데 우린 너무 많은 것을 박탈당하고 있다. TV와 스마트폰만 열면 모든 일이 대신 일어난다. 누군가가 대신 여행을 하고, 대신 뷰티를 하고, 대신 연애를 하고, 대신 요리를 하고, 대신 노래를 하고, 대신 농사를 짓고, 대신 군대에 가고, 대신 학교에 가고, 대신 아이를 키운다. 심지어 대신 먹어주기까지 한다. 말하자면 대리 사회. 저 세계로 흡수되면 흡수될수록 우리 손발의 감각은 퇴화하고 꼭 그만큼 각자의 세계들도 축소한다. 존재감이 희미해 갈 밖에. 무력감에 바둥거릴 밖에. 스스로 만지고, 걷고, 느끼고, 보고, 들을 능력도 힘도 한 줌 남지 않게 되어버린 오늘. 우리에겐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능력만 남았다. 전방위적으로, 완전하게. 그저 돈만 있으면, 본래 스스로 만들고 일구고 쌓던 것들을 모두 상품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됐다. 세상 참 편해졌다. 그래서 돈이 필요한데 돈이 잘 벌리지 않는다. 때가 되면 저절로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니 그런 생각조차 없었는데. 누굴 원망해야 하나. 한낱 소비자로 전락한 내 자신이 먼저 부끄럽다. 수치스럽다. 그러나 화도 난다. 이런 삶을 스스로 택한 것만은 아니다. 억울하다. 이제라도 손발의 감각을 다시 회복하고 싶다. 그 감각으로 호흡하고 싶다. 스스로 해내고 싶다. 아마도 브랜드 권력, 공인 권력, 엘리트 권력은 비웃을 것이다. 한낱 아마추어 주제에 쯧쯔. 맞는 말씀이다. 비브랜드, 비공인, 비엘리트 아마추어의 발버둥이다. 그러나 더 이상 소비로만 정체감을 찾는 바보로 남진 않으려 한다. 가깝고 작은 것들을 세심하게 자주 살피며 퇴화된 감각을 하나씩 회복하는 일에 열을 기울이겠다. 그렇게 조용히, 나 자신 하나 생활의 혁명을 일구어 가겠다.

추신. 인천 모백화점에서 일어난 일을 방금 뉴스로 보았다. 안타까운 일이나 드문 사건은 아니다. 이미 여러차례 우리는 목격한 바 있다. 소비자의 정체감 밖에 남지 않은 이들은 오로지 그 수단으로서만 자기존재증명을 할 밖에 모르기에 저렇게 종종 인간의 선을 이탈한다.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괴물은 태어나는 중이다. 서글픈 일이다.

2015. 10. 17.

채플린


1. 연주와 함께이던 채플린 상영은 정말 꿈결 같았다. 한 시간 반여 애써 주신 강현주 피아니스트님께 감사를! 그 손이 너무 잡아보고 싶어 악수를 청했다. “실례지만 악수 한번 청할 수 있겠습니까?” “아 네 물론이죠. 제가 영광입니다.” 오래 잊을 수 없는 상영이 될 것 같다.

2. 여자친구는 종각역 지하상가서 귀걸이를 샀다. 정말 잘 어울렸다. 가격도 좋았다. 귀걸이 바늘이 살을 뚫고 예쁘게 자리잡히는 장면을 나는 신기하게 바라봤다. “헐 아프지 않아?” 어찌보면 쓸데없는 질문인데 그 순간엔 정말 그렇게 보였다. 저 두꺼운 바늘이 어떻게 저렇게 쉽게 쑥하고 들어갈 수 있을까. 놀라운 일이었다.

2015. 10. 15.

산책. 2015년 가을


산책. 2015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