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31.

Carved&Flow_3




Carved&Flow_3. 캔버스에 연필과 오일. 2020





2020. 3. 22.

아내 노트북, 아빠 면회, 라자스탄의 우물, 김민지 개인전


1. 아내의 노트북을 주문했다. 지출이 조금 있던 달이었는데, 때마침의 성과상여금이 숨통을 좀 틔웠다. 글로 벌어먹는 사람이 2013년식 중고노트북으로 퍽 오래 버텼다. 그 노트북도 응당 제 일과 쓰임을 다했다. 모두에게 아쉬움 없는 이별과 맞이라고 생각했다.

2. 아버지는 수술 후 조금씩 걷기 시작하셨다. 우리 모두 아빠의 움직임에 탄식을 보냈지만, 척추 고장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하게, 드라마틱한 결과와 만나게 되지는 못할 것이다. 하여도, 당장의 불안과 고통을 얼마간 덜어내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자식 도리를 약간분이라도 해낸 것 같아 뿌듯하고 다행한 마음이 찾아들었다.

3.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라자스탄의 우물]전을 보았고, 청와대앞길을 따라 삼청동을 걸은 다음 갤러리 조선에서 김민지 개인전 [문제적 장소]를 보았다.

4. 처음엔 알아채지 못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두 전시가 '멀어진 장소에 대한 아카이빙'이라는 테마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쪽이 '두고 온 것에 대한 그리움'을 좀 더 모아놓고 있었다면, 한쪽은 '잊혀지고 말 것을 붙들기로 한 결심의 흔적들'을 다만 좀 더 모아놓고 있었다.














2020. 3. 15.

카페



1. 북촌 쪽 갤러리들을 둘러볼까 나섰다가 바람이 너무 불어 동네 카페로 몸을 숨기듯 들어왔다. 

2. Flaming Lips의 [King's Mouth]를 오전부터 귀에 꼽고 있다. 세 바퀴째 돌고 있을까.

3. 아버지의 허리 수술과 무무의 중성화 수술이 공교롭게도 한 주에 있었다. 두 사건은 이후 우리 가정에 각기 얼마간의 변곡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4. 옆 테이블의 커플이 마주 앉아 각자의 독서를 하고 있는데, 저 장면을 흘깃 바라보노라니 괜스레 내 마음이 따뜻하고 노르스름한 것으로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5. 오랜만에 흑당의 맛이 그리워져 블랙슈가라떼를 시켰는데, 허 참, 에스프레소가 안에 안 든 거다. '카페'블랙슈가라떼를 시켰어야 했던 건데 평소 뜨아나 바닐라라떼 밖에 좀처럼 사먹질 않아선지, 카페에서라면 (곡물 라떼나 과일 음료가 아닌 한) 에스프레소는 기본으로 바탕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내게 자리했나보다. 전혀 의심없이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다가 메뉴판을 다시 돌아보고서야 이를 깨닫게 되었다.  



2020. 3. 12.

Carved&Flow_2



Carved&Flow_2. 캔버스에 목탄과 오일. 2020




2020.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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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ved&Flow_1. 캔버스에 오일. 2020


2020. 2. 25.

무무, 코로나 휴관


1. 나는 우리 무무를 너무나 사랑한다. 이 작고 여린 것이 세상에 바라는 것이라고는 오직 산책과 간식, 주인의 애정 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문득 눈물이 핑 돈다. 이 작은 생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한없이 추잡하고 간교하고 제멋대로인 채라는 생각이 든다.

2. 한국영상자료원,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씨알콜렉티브, 대안공간루프, 서울아트시네마, 아트선재센터, 송은아트큐브 등등과 같은 민의 영역에 있는 전시장들마저 코로나 탓에 모두 휴관이라고 하니, 이게 무슨 기이한 풍경인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전례없고 초현실적인 상황들의 연쇄가 퍽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일종의 길티플레져) 

3. 주말+당직휴무 뒤에 오랜만에 출근했더니, 이게 웬일인가. 일이 재밌다.(응?) 허허.

4. 다시 저 작은 생명체를 바라본다. 가진 것도 없지만, 약간 분이라도 있다면 그마저도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정말 없어서 그럴거야.)  



2020. 2. 23.

코로나19, 강박x강박(강박²)



1. 3년째 다니는 미용실인데 오늘 같은 한산함은 처음이었다. 두 명의 종업원과 한 명의 디자이너 겸 매니저 그리고 나의 머리를 만져주시는 원장님 사이에서, 침묵의 30여분을 보냈다. 코로나의 여파임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 이는 도구 트레이를 정리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스마트폰을 까딱이고 있었다. 모두 적당히 불안하고 적당히 무료한 얼굴들이었다. 원장님만이 특유의 힘 있는 가위질을 이어갔다. 가위날 부딪히는 쇳소리가 찹찹찹 유난히 크게 들렸고, 노르스름 익은 오후 두시 반의 햇살은 통유리를 통과하며 더 깊고 넓게 퍼져 실내를 적시고 있었다. 

2.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엘 갔다. 대한문 앞에도 사람이 없었고, 인근 상가엔 숫제 영업을 쉬는 점포들이 몇 군데 보였다. 손에는 마끼아또 한 잔이 들려 있었다. 우유 냄새가 너무 진했고, 결국 나는 다 마시지 못한 채로 그것을 휴지통에 던졌다.

3. [강박x강박(강박²)] 전을 보았다. 뉴 미네랄 콜렉티브, 우정수, 오메르 파스트, 차재민, 정연두, 김용관, 이재이, 김인배, 에밀리아 스카눌리터의 순으로 그들의 작업을 둘러보았다.

4. 가장 오래 발길을 머문 곳은 오메르 파스트의 영상 작업 [5,000 피트가 최적이다]에서 였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나는 이 작가가 미디어를 다루는 방식에 사로 잡히고 말았다. 여기에도 여느 미디어아트처럼 인터뷰가 있고, 작가의 언어가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달랐(다고 느꼈)던 것은, 이것이 철저하게 '극영화'의 논리와 문법을 따르고 있었던 부분이다.

5. 그러니까 사건이 있고, 인물이 있었다. 인물의 감정이 있었고, 그 감정을 (우리로 하여금) 살피도록 돕는 부수의 캐릭터들이 있었다. 쇼트를 잘게 나누었고(인터뷰이가 중간중간 휴식차 복도로 나와 담배를 태우는 장면은 정면-리버스-정면-리버스 쇼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운드의 활용도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데 복무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필름라이크'한 화면의 톤으로 찍혔다. 아마도 레드원 같은 기종으로 디지털 촬영을 하였을 테지만, 몇몇 장면은 필름으로 촬영하였다고 해도 전혀 의심하지 않을 만큼 어떤 특유의 물성과 질감이 보유되고 있었다.

6. 그래서 이것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라는 질문이 나 스스로에게 들었지만, (허무하게도) 이렇다 할 뾰족한 대답을 찾아내진 못했다.   

7. 다만 하나의 얇은 발견이라면, 근래의 미디어아트들에서 내가 줄곧 느꼈던 피로감을 이 작업에서는 거의 느낄 새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들어간 전시실에서 나는 30분짜리 극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온 기분이 들었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선명히 수용할 수 있었으며, 한동안은 그 질문을 받아들고 나름의 생각을 하느라 다른 작품, 작업들에는 건성의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8. 미디어아트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미디어아트 고유의 논리, 그러니까 (극적 구성을 뒤로 두고) 감각과 감정의 원체험으로 단도직입해 들어가는 그 방식이야말로 곧 순수 미술적이며 그것이 미디어아트의 본령과 같다는 생각에는 그다지 흔들림이 없다.

9. 내 안에는 줄곧 (나름의 논리와 근거로) 미디어아트와 시네마 사이의 어떤 구분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다만 이제 그것을 수호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이 작업에 발길을 두는 동안 무겁게 찾아들었다. 

10. 돌담길을 따라 시청역으로 되돌아 나왔다. 담벽에 묻은 햇살을 2g폰카로 찍었다. 요즘 카메라를 따로 들고 다니지 않고 2g폰카로 찍어두는 일이 늘었는데, 생각보다 이 느낌이 괜찮기 때문이다. 선예도가 떨어지고, 빛도 살짝 바랜듯한 화상이, 어쩐지 똑딱이 필름의 느낌을 닮은 것도 같다. 









2020. 2. 5.

부서 이동, 김하나 개인전, 19회 송은미술대상전



1. 부서 이동을 했다. 옮겨 온 부서와, 떠나 온 부서의 송환영식을 모두 마쳤다. 이젠 정말 친정집을 나선 기분이다. 

2. 이전 부서에서는 야근이 전무했다. 새로 옮긴 부서에서는 칼퇴가 전무하다. 그러나 그런대로 이 조건과 환경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3. 주말 숙직을 서고 당직 휴무를 얻었다. 월요일에는 갤러리들이 대개 문을 닫는다. 송은아트스페이스와 송은아트큐브는 월요일에도 나직한 꾸준함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19회 송은미술대상전을 아직 보지 못했던 터라, 다소 무거운 몸이긴 했으되 그곳으로 향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2호선을 잡아타고 삼성역으로 갔다.

4. 송은아트큐브에서 김하나의 개인전을 먼저 보았다. [Beau Travail]라는 제목이 붙은 전시회인데, 아마도 클레르 드니의 [아름다운 직업]에서 가져온 것일 터이나, 그 영화와 김하나의 작업 사이에 별 상관성은 없어 보였다. 

5. 하지만 김하나의 작업은 너무도 좋았다.

6. 구식 인간이라 그런가, 나는 스마트폰도 어지럽고, 전광판의 현란함도 어지럽다. 2g폰을 쓰고, 수첩을 들고 다니는 건 내가 대단한 탈스마트 철학의 수행자라서가 아니다. 그저 어지럽기 때문이다. 단순히, 나는 그냥 어지럽다.

7. 그래서, 작금의 범람하는 미디어아트 작업들을 둘러보다 보면, (나 스스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피로감 같은 것이 몰려드는 것이다. 차이밍량의 [서유]같은 작업이나, 위라세타쿤 아피찻퐁의 실험영화 같은 것들은 동시대 미디어아트임에도 (도리어!) 일종의 안정과 고요를 준다. 하지만 그런 작업은 드물다. 근래 만난 작가들 대다수의 작업들에서 나는 (종류도 다양한) 여러 피로감과 마주해야만 했는데(이상하게도 김희천 [탱크]는 예외다), 바로 이런 사정들 탓에 나는 다시금 평면회화의 자리로 이끌리는 것만 같다. 

8. 김하나의 작업은 평면회화의 원점과 미래를 동시에 탐구하려는 작가 자신의 고유한 투쟁으로 보였다. 총 열한 점의 작업들 사이를 천천히 오고 가며 나는 풍요의 시간을 만끽했다. 그리고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 같은 걸 얻었다.

9. 그 여운을 품고 송은아트스페이스로 걸음을 옮겨 19회 송은미술대상전을 보았는데, 미안하지만 하나도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수백 점의 포트폴리오 가운데서 엄정히 선별된 네 개의 작업들"이라는데, 전시장을 도는 내가 다 그 문구에 무안을 느낄 지경이었다. 

10. 다만 차지량의 솔직한 고백에는 약간 마음이 움직였다.

11.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하나의 전시장에서 받은 도록을 다시 펴 보았다.









아래는 차지량의 설치(고백글).


2020. 1. 27.

명절, 터미널, 골굴사, 횟집



1. 설 맞이 인사를 다녀왔다. 

2.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탔는데, 오래된 터미널의 풍취가 제법 좋은 느낌을 주었다.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달까. 이곳이 내 생활 터전이거나, 혹은 '언젠가 이곳을 벗어나리라' 하는 이의 입장이었다면 이런 감상은 아니었겠지. 하여간 외롭고 쓸쓸하면서 또한 든든하고 따뜻한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이맘때 이 같은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기분이 귀하게 느껴졌다.

3. 골굴사라는 곳에 다녀왔다. 장모님, 장인어른과의 유람에는 사찰이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나는 사찰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가장 큰 매력은 감히, 자연 그대로의 풍광과 인간이 남긴 오랜 흔적 사이에 발생하는 조화와 긴장이 아닌가 싶다. 골굴사의 구조는 독특했다. 부처의 부조상이 가장 높은 곳 깍아지르듯한 절벽에 새겨 있었고, 그 아래로 크지 않은 규모의 대웅전과, 그보다 더 작은 규모의 관음전이 삼각점을 형성하며 적당히 떨어져 위치하고 있었다. 그 위에 올라서 내려다 보니 하나의 온전한 세계 같은 느낌이 들어서 뭔가 설레는 기분이 되었다.

4. 회를 각별히 좋아하시는 장인 덕에 이번 명절에도 수년치 먹을 분량의 회를 한번에 '마시고' 왔다. 우리는 늘 같은 수산집과 같은 초장집엘 가는데(5년 전 처가 어르신 두 분 첫 대면도 이곳에서 했다), 처음의 낯선 문화와 놀라웠던 스케일에는 이제 확실히 적응한 듯하다. 
















2020. 1. 19.

백석의 시



수라修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디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갓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내가 무서워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백석, [사슴](1936) 중에서



2020. 1. 16.

몸살, 인사 시즌, 넷플릭스와 더 크라이테리온 채널, 손재곤



1. 며칠 몸살을 앓았다. 일 년에 한 번은 거치는 일인 것 같다. 그것도 꼭 이맘때. 사흘 안쪽으로 끊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이 정도 기간, 이 정도 강도라면 일 년에 한 번쯤 아파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 아닌가 싶다. 당연했던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게 되고, 가벼웠던 것을 가벼이 여기지 않게 되는 귀한 돌아봄의 시간을 준다.

2. 인사 시즌이다. 아주 관심이 없을 수야 없지만, 나에게 이 소란스런 연례행사는 솔직히 그러거나 말거나다.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나가는 사람이 있고, 올라가는 사람이 있으면 내려가는 사람이 있겠지. 부서 내엔 설레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아마 우리 시 전체에 불 것이다. 글쎄, 그러거나 말거나.

3. 넷플릭스 오리지널 [두 교황]을, 오늘은 끝까지 볼 수 있을까.

4. '넷플릭스'와 '더 크라이테리온 채널'을 구독한 이후 극장에 갈 동기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른바 시네마틱함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일 '집단 체험성'이란 것도 내 경우엔 진즉부터 그렇게 중요한 덕목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이 현상은 가속화되고 고착화되어가고 있다. '올해 가장 중요한 영화'일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 가운데, 넷플릭스를 경유하지 않거나, 개시되는 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 같은 몇몇의 작품들에만 (어쩌다) 극장을 찾고 있다.

5. 그런 의미에서 올해 첫 극장 유람(이번 주말!)은 손재곤의 [해치지 않아]가 될 것이다. 손재곤, 이 얼마만의 이름인가. 




2020. 1. 13.

미술은 어디에나 있다



1. 아내는 대학 선배와 약속이 있었다. 그곳에 바래다주었다. 원래 그 앞까지만 가려고 했는데, 약속 장소인 그 공간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한바퀴 둘러보았다. '연남장'이라는 곳이었다.

2. 어반플레이라는 스타트업 기업이 운영하는 곳인가 보았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였고, 과거 유리공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반만 리모델링하여(신생공간들의 트렌디한 방도) 역사성을 구태여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힙한 정서를 동시에 전시하는 모양을 취하고 있었다. 통의동 '보안여관'이 견줄만 한 대상일 것이나 내 얄팍한 감상으로는, '연남장'의 공간 정서가 더 유기적인 조화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3. 아내와 스스륵 헤어지고(그녀의 선배와 인사를 나누지 않고 먼저 나왔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씨알 콜렉티브'에 갔다. 윤주희의 [의지의 의지의 의지]가 전시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좋았다. '약한 것'에 대한 관심과 수행이 '연민'이나 '시혜'로 흐르지 않고, 그야말로 '의지'(will 혹은 lean 혹은 limb)로 발하고 있는 현장을 목도했다.

4. 이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말을 찾을 방도도 없다.

5. 하여간 '움직이려는 것', '결함을 수긍하고 일어서보려는 것', 그러다 정히 힘들면 그저 '기대버리는 것'. 이것에 관한 고백이었다. 너무 솔직하다고 느꼈고, 가능하다면 앞으로 있을 작가의 클라이밍 퍼포먼스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2020.1.18.)은 시간이 안될 것 같다.

6. 윤주희라는 작가의 이름을 꼭 기억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7. 길을 걷다가 '예쁘게' 끊어진 체인을 보았고, '전투적'으로 새겨진 생활 경고문을 보았다. 미술은 어디에나 있다,라고 생각했다.








2020. 1. 9.

[도래할 공동체](세종문화회관 미술관)를 보고, 짧은 생각



1. '민주주의자 故 김근태 선생 8주기 추모전' [도래할 공동체]라는 이름이 붙은 전시를 지난 주말 보고 왔다.

2. 백현주, 안규철, 안상수, 양아치, 니콜레타 마르코비치, 이은서, 안드레이 미르체프, 이부록, 임민욱, 임흥순, 정정엽의 작업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추모를 하는 중이었다.

3. 어느 한 작업에 꽃혀 오래 머물거나 가까이 들여다보진 못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각의 작업이 품고 있는 개별적 미적 지향이 아니었다. 이런 방식으로도 가능한 '추모의 형태'에 관한 것이었다.

4. '故 김근태 선생'이라는 표현으로 그 삶과 존재를 칭할만큼 나는 그에 대한 기억과 감정과 이해를 갖고 있지 않다. 전시를 보고 돌아와 인터넷 검색으로 글줄을 몇 개 따라 읽어 보았지만 거기까지가 내 의지가 뻗어 닿을 수 있는 전부였다. 따라서 나는 저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뭉뚱그려진 부채감, 그러니까 나와 내 주변 이들이 누리는 오늘날의 자유와 평화를 얻어내기 위해 피흘려간 이들에 대한 빚진 감정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이 날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5. 그것이 내가 이 전시를 보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일인 것 같았다.